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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은 감춰진 유적 보고”
4대강 통신 ⑩
 
[120호] 2010년 01월 06일 (수) 10:36:09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잘 들어봐요. 조선시대 한성(서울)에서 가난한 남촌 사람 하나가 북촌의 부자마을에 가 도적질을 했어요. 줄행랑을 치는데 포졸이 코앞까지 쫓아오는 거라. 급히 증거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청계천 광통교를 지날 때 재빨리 물에 던져버려야지.”  

황평우 문화유산위원장(49)이 맛깔스럽게 말을 잇는다. 그래서 2003년 청계천 공사를 할 때 조사결과 바닥에서 노리개, 신발, 신라시대 토기까지 각종 유물이 나왔으리라는 것이다. 그의 추정대로라면 수백, 수천 년을 흐른 강바닥에는 헤아릴 수 없는 양의 사연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5.8km 청계천 구간의 213배쯤 되는 4대강 유역을 정비하겠다는 정부의 발상이 못마땅한 이유다.

   
황평우 위원장(위)은 “유물은 그대로 두는 것이 최고의 보존방법”이라고 말했다.
황 위원장에게 4대강 정비 사업은 역사 왜곡이나 마찬가지다. 문명의 보고라 할 수 있는 강 주변에는 아직 조사하고 발굴해야 하는 유적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특히 4대강 유역은 구석기 시대 유적이 매몰된 퇴적층이 지반을 이룬 곳이 많다. 정부는 공사 중 유물이 발견되면 그 지역 공사를 중단한다는 방침이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단순히 유적지를 피한다고만 해서 되는 게 아니다. 강물은 시간이 흐르면서 유역이 변하기 때문에 강 인근 20~30km는 모두 유적지로 봐야 한다.”

 4대강 사업 예정지인 경남 양산 증산리에서 최근 발견된 고려시대 건물지와 조선시대 제방도 마찬가지이다. 황 위원장은 “이번에 발견된 제방은 당시의 토목 기법을 알 수 있는 주요한 자료이기 때문에 사적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라고 말한다. 문화재청은 좀 더 조사를 진행해 이 지역을 역사공원으로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4대강 문화재 조사가 처음부터 부실과 편법으로 얼룩졌다고 비판한다. 문화재보호법은 개발 공사를 하기 전에 문화재 지표조사를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지표조사는 육상조사와 수중조사로 나뉘는데, 4대강 사업은 강과 관련한 사업이면서도 수중조사를 제대로 실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문화재보호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일자 문화재청은 “수중조사 방법은 선택적·탄력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라며, 강 바닥에서는 유물이 출토된 경우가 극히 희박한 만큼 유물·유구가 출토될 가능성이 높은 옛 나루터 유적을 중심으로 수중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부실 편법으로 얼룩진 문화재 조사

그러나 아파트 공사 현장 같은 데서는 문화재보호법을 엄격히 적용하는 문화재청이 4대강과 관련해서는 왜 이를 ‘탄력적으로’ 적용하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황 위원장은 말한다. ‘나루터를 어떻게 수중이라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을뿐더러 그나마 옛 나루터 140곳 중 수중조사를 실시한 나루터는 27곳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문화재 조사를 담당하는 기관들에 대해서도 황 위원장은 할 말이 많다. “대운하사업 계획이 흘러나온 이후 민간 조사발굴 업체가 100여 개 생겨났다. 이전에는 국립문화재연구소나 대학 연구소, 대학 발굴단 같이 비영리기관이 문화재를 다뤄왔다”라고 그는 말했다. 영리 목적으로 급조된 업체들이 문화재를 다룰 만한 자격이 되는지 의심스럽다는 뜻이다.

황 위원장은 어린 시절 만화방에 가서도 남들 안 보는 역사·위인 만화만 봤다고 한다. 국사 시간에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들 질문을 연구하다가 국사 상식에 해박해졌다. 그때 이후 죽 국사와  문화재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대학에는 입시 점수에 맞춰 관련 없는 학과에 들어갔지만 중간에 그만두었다. 독학을 통해 문화재 전문가로 이름을 얻은 후 뒤늦게 고고미술사학과 편입생으로 들어가 공부를 마쳤다.  

그는 한때 대학로에서 인문사회과학 서점 ‘논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때도 역사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다. 2005년에는 MBC <느낌표> ‘위대한 유산’에 출연해 프랑스에 있는 외규장각 환수운동을 벌여 유명해졌다. 지금도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였던 시절부터 운하반대 운동을 벌여 직함 하나를 더했다. 

그의 전화기는 쉴 틈이 없다. 요즘은 4대강뿐만 아니라 왕십리 철거 지역에서 발견된 마애불상 때문에 바쁘다. 환경재단에서는 얼마 전 이렇게 바삐 뛰는 그를 ‘2009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4대강 사업 유역의 문화재

‘투명사회정보공개센터’가 정보 공개를 청구한 결과 문화재청이 공개한 내역에 따르면 4대강 사업 예정지 주변에는 문화재가 총 243개 있다. 이 중 지정문화재가 94개, 매장돼 있는 문화재가 149개다. 강과 맞닿은 연접 지역의 문화재도 65개로 파악돼 당장 우려를 사고 있다.

평우 위원장은 4대강 사업이 시작되면 영향을 받게 될 주요 유적으로 7개 문화재를 꼽았다. 보가 설치돼 수위가 상승할 경우 직접적으로 문화재가 훼손되거나 주변 경관이 변해 유적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들이다. 유적지로 분류되지 않는 보의 경우도 문제다. 보는 대개 암반 사이에 설치되는데 이 암반이 기암괴석 등 명승지로서의 가치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2009년 12월 초 4대강 사업 예정지인 경남 양산 증산리에서 고려시대 건물지(위) 등이 발굴됐다.

한강 유역에는 유네스코에도 등록돼 있는 영릉(사적 제195호)이 있다. 문화재청은 여주보가 능 뒤쪽에 설치될 예정이어서 전체 경관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밝혔지만, 문화재 접근에 있어 앞뒤의 경관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황 위원장의 설명이다. 유네스코도 최근에 유적지 자체 못지않게 문화 경관을 중요시하는 편이다.

광주미사리선사유적(사적 제269호)과 신륵사(보물 제180호)도 물이 지반으로 침투하면 유적지의 보존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남한강 유역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유적인 중원탑평리7층석탑(국보 제6호)은 이미 훼손 상태가 심각하기 때문에 조금만 변화가 있어도 유적지로서의 권위를 잃을 수 있다.

낙동강 유역의 도동서원(대구 달성군 사적 제488호)은 조선시대 서원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유적지다. 수중보가 준설될 경우 인근 강물의 오염이 염려되는 지역에 자리잡고 있어 서원의 환경 보존 역시 장담하지 못한다.

 금강 유역의 공산성(사적 제12호) 역시 공주보가 설치되면 수위 상승으로 성벽과 전각에 영향을 끼칠 위험이 있다. 백제의 국찰로 이름난 왕흥사지(사적 제427호)는 입구가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물이 지층에 침투되면 제 모습을 지키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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