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기록관리 전문성 포기가 정부가 말하는 규제개혁인가

opengirok 2010. 2. 3. 15:59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정진임 간사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 선조들의 기록을 보면, 먼저는 방대한 양에 놀라게 된다. 하지만, 정말로 놀라운 것은 그 다음에 있다. 한순간도 놓치지 않는 꼼꼼한 기록화와 철저한 기록관리 문화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 기록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혹은 남겨져있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렇게 풍성한 역사문화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우리의 후손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물려주지 못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했다. 대한민국의 기록관리 문화가 후퇴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한국기록학회 ▴한국기록관리학회 ▴투명사회를위한 정보공개센터 ▴기록관리학 전공 주임교수 협의회 ▴한국국가기록연구원 ▴기록관리 전문가포럼 ▴기록관리전공 학생연합 등 학계와 시민단체, 현직 기록연구사 등 각계각층의 단체에서는 2월 2일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이 토론회는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로 밤이 늦도록 발디딜 틈이 없었다.

현재 정부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기록물관리법 개악 움직임에 반대하는 의견을 모았던 이 토론회에서는 정부가 “행정규제 개혁”과 “기록관리 선진화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는 기록물관리법 개정 움직임이 실제로는 공공기관 기록관리의 기반을 흔들고 있으며, 이는 정부가 다시 “기록이 없는 시대”로 되돌아가려는 모습이라고 상정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에 대한 논의로 진행되었다.

최근 국무총리실과 행정안전부의 주도로 논의되고 있는 기록물관리법 개정 움직임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정부는 기록물관리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기록물 보존 및 관리절차를 정비하겠다고 한다. 언뜻 보면 업무 효율을 위해 복잡한 관리절차를 개선하자는 이야기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기록물 폐기절차를 간소화해 기록물을 쉽게 폐기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과거와 같이 행정기관 내에서 자의에 따라 임의로 기록을 폐기할 명분을 주게 될 뿐이다. 뿐만 아니다. 현재 기록물관리법에 따르면 비공개로 되어있는 기록은 5년마다 재분류하여 공개여부를 검토하도록 되어있는데, 이 절차마저도 삭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국민의 알권리를 확대하지 않겠다는 행정편의주의적 사고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들 모두 “기록을 기반으로 한 행정의 투명성 제고” 라는 기록관리 정신 자체에 역행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둘째,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이하 전문요원)의 자격조건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전문요원은 기록물관리법에 의해 기록관리학 석사학위 이상을 취득한 자 이거나 역사학, 문헌정보학 석사학위 이상을 취득한 자로서 행정안전부 장관이 정하는 기록물관리학 교육과정을 이수한 자만이 그 자격을 가질 수 있도록 되어있다. 기록물의 생산, 분류, 이관, 수집, 평가, 폐기, 공개, 활용 등 기록의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주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전문요원의 자격요건을 자격증제도를 따거나, 단기 교육을 이수면 자격을 가질 수 있도록 하향조정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기록관리가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업무가 아니라 아니라 기술과 기능 업무라고 여기는 정부의 시각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토론회를 통해 기록관리 현안 대책위원회(http://archivist.tistory.com)가 구성되었으며 기록관리 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현재 진행중인 정부의 기록물관리법 개악 움직임에 대한 강력한 대응의지를 천명하고 성명을 발표했다. 또한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의 자격 완화 ▴행정편의주의적인 기록 폐기 및 비공개기록 공개재분류 절차 폐지 계획 철회 ▴'국가기록관리 선진화방안' 이행 ▴정부의 일방적 법 개정이 아닌 기록학계 및 시민사회, 이해당사자와 함께 이 문제에 대해 논의 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 정부의 기록관리 법령 개악 관련 성명서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