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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언론인 전 한국일보 주필)

이명박 대통령이 ‘저탄소녹색성장’을 표방한 후 어디를 가나 ‘녹색’이란 단어가 난무한다. 정부기관은 물론이고, 지자체 관련기관도 모두 ‘저탄소’ 또는 ‘녹색성장’을 외친다.
과연 우리 사회는 녹색성장의 궤도를 향해 부지런히 준비를 하고 있는가? 나의 관찰이 피상적일지 모르지만, 한국은 ‘저탄소녹색성장’의 집을 설계하는 게 아니라 열심히 페인트칠만 하고 있다. 저탄소녹색성장이 본질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절대적으로 줄이는 일이다. 녹색성장은 여기서 시작되어야 한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라는 시민단체가 2월 10일 일부 정부기관의 2009년 전기 사용량을 공개했다. 정부중앙청사, 문화체육관광부, 국세청, 그리고 농촌진흥청 등이 공개한 전기 사용량을 보면 일견 에너지 절약의 흔적이 보인다.
예를 들면 정부청사는 2008년에 비해 2009년에 전기사용량을 1.5% 줄였다. 공개된 다른 정부기관도 모두 조금씩 전기 사용량이 줄었다. 팽창하기만 하는 정부지출의 관행으로 볼 때 이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라 생각한다.


지자체 에너지 과용 심각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시 “관공서의 타성이란 어쩔 수 없다”란 생각을 하게 된다. 이들 정부기관들은 2009년 전반기에는 전기 사용량을 상당히 줄였지만, 하반기엔 전년도에 비해 전기 사용량을 부쩍 늘렸다. 작년 연말의 이상 한파가 변명이 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파격적인 이산화탄소 감축을 국제회의에서 선포한 마당에 정부기관이 이렇게 전기를 무작정 쓴다면 어떻게 될까. ‘안되면 말고’식의 공약이 아니라면 공공기관부터 한해두해 불편함에 대한 내성을 길러가야 되지 않을까.


지자체의 에너지 과용은 더욱 심하다. 성남시를 비롯해서 전국 지자체의 청사 신축광경을 볼 때마다 에너지가 무지무지하게 많이 들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신축청사들은 대부분 어마어마한 규모의 ‘유리빌딩’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여름에는 냉방에, 겨울에는 난방에 전기가 더 들어갈 것은 뻔하다. 그런 신청사를 지을 당시에 고유가 시대에 접어들었으니 무슨 특수한 친환경 설계를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지식경제부와 행정안전부가 246개 지자체 청사의 2009년 에너지사용실태 조사결과를 발표한 것을 보니 신축 지자체 청사들이 에너지를 마구 먹어치우는 하마임이 증명되었다.
1인당 에너지 사용량 상위 30개 청사 가운데 10개가 2005년 이후 신축한 청사다.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이 가장 많은 청사는 용인시청으로 가장 적은 거제시청의 8배였다.
이들 지자체 청사는 국내 상업용 건물이나 선진국 공공건물보다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이 50%나 많았다니 낭비의 극치다. 호화청사 시비로 말이 많았던 용인시 청사와 성남시 청사는 건물에너지효율등급에서 등외판정을 받을 정도다.
246개 지자체 청사의 2009년 에너지 사용량은 2008년보다 5.6%가 늘어났다. 이명박정부가 ‘저탄소녹색성장’을 기치로 내걸고 녹색생활을 강조할 때 우리의 지방정부는 귀를 막고 있었던 셈이다. 이런 공직 의식을 갖고 ‘저탄소녹색성장’이 추진되겠는가.


지난 1월 29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환경성과지수(EPI)란 것이 발표되었다. 우리나라는 평가 대상 163개 국가 중에서 94위를 했으며, 실망스럽게도 경제선진국으로 분류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가운데 꼴찌였다.
EPI는 세계경제포럼과의 협력체제로 예일대와 컬럼비아 대학의 전문가들이 10개의 범주로 나눠 각국의 환경상태를 평가하고 종합해서 점수를 매긴다.


우리나라가 낮은 점수를 받게 된 것은 이산화탄소 등 대기오염물질 배출에서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산업부문 온실가스 집약도에서는 146위로 밑바닥을 헤매고 있다.

감축계획 구체적으로 제시를
정부 청사가 내뿜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전체 우리나라의 배출량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이 이산화탄소배출을 줄이는 노력은 매우 큰 파급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공직자의 마음자세가 나라 전체에 실핏줄처럼 전달되기 때문이다.
올해 정부는 공공부문 에너지 사용량을 지난해보다 10% 절감할 것이라고 한다. 솔직히 대담한 수치다. 그러나 뭔가 부족해 보인다. 숫자가 작은 것이 아니라 치밀하고 장기적인 계획성이 없다는 말이다.


‘저탄소녹색성장’을 제창한 것이 이명박정부인 만큼 기준년도를 임기 초인 2008년으로 정하고 정권이 끝나는 2012년까지 공공부분의 이산화탄소 감축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실천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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