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너무나 잘 잊는 한국사회

opengirok 2011. 1. 28. 18:05
투명사회를위한 정보공개센터
하승수 소장

한 해가 지나고 새해가 밝았지만, 뭔가 찜찜한 것들이 있다. 작년 한 해 사람들의 관심이나 분노를 불러일으켰던 사건들이 많지만, 해를 넘기면서 흐지부지되고 있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건들 중에 몇 가지 생각나는 것들을 꼽아본다. 첫 번째 생각나는 것은 ‘전직 국회의원들에 대한 특혜지원금’ 문제다. 트위터를 통해 정보가 확산되면서 전국민적 분노를 일으켰던 이 문제는 아주 단순한 문제이다. 국회의원들이 ‘대한민국 헌정회 육성법’이라는 법률을 만들었고, 이 법률에 의해 만 65세 이상의 전직 국회의원들에게는 매월 120만원의 품위유지비가 지급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국회의원을 한 기간이 며칠 밖에 안 되어도 이 돈은 지급되고, 국회의원 직무와 관련해서 비리로 형사처벌을 받았더라도 이 품위유지비는 지급된다. 그래서 이 사실이 알려진 후에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다. 일반 회사원이 20년간 국민연금을 붓고도 월 77만원을 받는 데 비해 엄청난 특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법안에 찬성했던 국회의원들 중에 상당수가 잘못을 시인하고 작년 연말까지 법을 고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법은 아직 고쳐지지 않고 있다.

두 번째 생각나는 것은 ‘특채비리’ 사건이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특채비리에서 시작된 이 문제는 다른 공공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의 특채문제로 확산되면서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그렇지만 특채비리를 가능하게 했던 제도적 문제점들은 별로 고쳐지지 않은 채, 흐지부지되는 느낌이다. 그 당시에는 경쟁적으로 취재를 했던 언론들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관심을 끄고 있다. 특채비리 문제가 불거진 후에 일부 관련자들이 처벌받고 몇 사람의 임용이 취소되었지만, 중앙정부, 공기업, 지방자치단체 곳곳에 퍼져있을 특채문제는 여전히 은폐되어 있다. 정부가 후속 대책으로 내놓은 것도 곳곳에 퍼져있을 특채비리에 대한 대책으로는 미흡하기 짝이 없다.

유명환 장관의 딸 특채사건을 풍자한 비디오중 한 장면



수시로 나오는 전관예우 관련된 이야기도 그렇다. 고위공무원 후보자 임용 때면 단골 메뉴로 전관예우 문제가 터져 나온다. 중앙부처의 고위공무원 출신들이 퇴직 후에 로펌에 취직해서 고액의 급여를 받는 문제는 여러 번 거론되었던 문제이다. 고위 판ㆍ검사출신들이 로펌에 취직해서 억대의 월급을 받는 문제들은 최근에도 불거진 문제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이 나올 때마다 여론은 들끓지만, 정작 ‘전관예우’ 문제 자체는 고쳐지지 않은 채 잊혀진다.

사실 그동안 수많은 문제들이 이런 식으로 한때 사회적 관심을 끌다가 잊혀지곤 했다. 그리고 그 문제는 다시 똑같은 형태로 반복되곤 했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망각’을 잘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가 해결되도록 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건드리고는 말아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의 원인은 정치, 언론, 시민사회 모두에 있다. 우선 문제를 회피하기만 할 뿐, 진정으로 책임을 지지 않는 정치의 문제가 크다. 그리고 그런 정치인들이 계속 정치를 할 수 있도록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해주는 선거제도, 정치자금 제도가 있다. 최고 권력을 가진 집단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사안이 터지면, 그 사안을 해결하기보다는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방법을 택한다.


언론도 망각의 실행주체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이슈를 찾아다니는 것이 언론의 숙명이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언론이 사회적 소임을 다하려면, 이슈를 발굴하는 것 못지않게 이슈가 해결될 때까지 추적하고 기획보도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언론기사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정치탓, 언론탓만 할 것은 아니다. 문제를 잊어버리지 않는 시민이 있다면 그 문제를 계속 끌고 가면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시민사회는 허약하고 또 허약해지고 있다. 지식인들은 침묵하고 있고, 시민단체들은 열악한 조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대중적 기반도 사회적 영향력도 약하다. 그렇지만 푸념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새해에는 ‘기억할 것은 꼭 기억을 하는’ 그런 한국 사회를 다 같이 만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