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즐거운 명절? 괴로운 명절?

opengirok 2011. 2. 1. 11:57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사무국장

오늘부터 설 명절이 시작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가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겠군요. 전 어제 막내 아들이 탈장 수술을 하게 되어서 이번 명절은 집에서 보내게 됩니다. 막내 아들 덕분에 시골에서 어머님이 올라오기로 하셨습니다.

설 명절이다 보니, 명절에 대한 여러가지 추억들이 떠 오릅니다. 정보공개센터 블로그에 너무 딱딱한 글들만 있다보니, 오늘은 제 추억 얘기를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전 명절이 즐거웠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 습니다. 중고 시절에는 기독교에 심취해 제사 지내는게 너무 무서웠습니다. 어른 들 앞에서 기독교인이라고 과감히 선언 할 자신도 없어 제사를 억지로 지내긴 했지만 절을 하는 순간에 벼락이라도 치면 어떻할까 싶어 무서웠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제사는 집안에서 지내니까 이런 생각을 덜 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갈 때는 그 공포감이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날씨가 좀 흐리기라도 하면, 그 공포감이 더해져서 식은땀이 줄줄 흘릴 정도였습니다. 절을 하는 순간 뒷머리가 쭈삣 서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친척들은 제가 체한 줄 알고 약도 주고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왜 이런 공포를 갖게 되었을까요? 그 시절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쟁이가 우상을 섬기면 벼락이 내리 친다는 간증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상다리 뿌러졌다는 둥,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쳤다는 둥 하는 공포심 유발 간증이 많았는데 제가 유독 그얘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나 봅니다.

이런 공포가 사라지니, 입시공포가 다가왔습니다. 전 처음 대학 진학을 실패하고 설을 지낸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학력고사 시대였는데 전후기를 다 떨어지고 시골에 간 적이 있습니다. 친적 중 합격한 자식을 둔 어른들은 자식자랑에 밥 풀이 튀는 줄도 모르고 웃고 있었고, 그런 얘기를 씁쓸하게 듣고 있던 부모님 모습에 밥알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모두다 위로 해주는 척 하면서 자식 자랑은 왜 그리 하는지..... 제 주위에는 왜 그렇게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모릅니다.(알고 보면 대부분 뻥이었다는 것이 현재로 밝혀진 사실입니다) 돌아 오는 길에 서러워서 조용히 울던 기억이 나네요.

조금 더 나이가 드니, 취업 공포가 다가옵니다. 대학교 고학년 시절 시골에만 가면 저보고 어디 취직했냐고 물어봅니다. 전 항상 시민단체에서 일할거라고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바로 김대중 욕을 합니다. ㅎㅎㅎ 도대체 시민단체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제가 살던 고향은 시민단체, 좌파, 김대중, 북한 이런걸 구분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결혼을 하니, 마누라 공포가 다가왔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데 와이프가 임신 한 지 3개월만에 설이 다가왔습니다. 부모님 집도 아니고 할머니 집을 7시간만에 도착해서 갔는데, 좀 쉬라는 말도 없이 바로 일에 투입시켰습니다. 설겆이, 밥상, 설겆이, 밥상을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혹시나 배속에 있는 애가 어떻게 될까봐 큰 어머니 한테 살짝 말씀드려도 아무 말이 없습니다. 그렇게 2박 3일동안 일만 하다가 돌아왔습니다. 생전 처음 가는 집에서 자는 것도 불편할 텐데 일만 하다가 온 것이지요. 그 배속에 있던 애가 올해 초등학교를 들어가네요. ㅎㅎ

매년 명절을 왜 만들었을까 하는 고민을 했더랬습니다,,,,,그 뒤로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전 큰집을 찾고 있지 않습니다. 그냥 어머니한테만 가고 있지요. 명절이 무엇일까? 가족이 무엇일까? 많은 고민을 해봅니다. 어릴 적 친적들이 모여서 놀았던 기억보다 말싸움으로 보냈던 기억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모두다 불편한 걸 참으면서 견뎠기 때문입니다. 모여서 음식도 조금만 하고, 같이 술도 마시고 놀면 좋을 텐데 죽으라고 음식만 합니다. 그리고 적당히 모른척 해주면 좋을텐데 아픈데만 골라서 물어봅니다. 왜 그리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은 지 모릅니다. 가끔 보면 아픈데만 일부러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불만들이 모여서 집에 가서는 부부싸움으로 확산되기 쉽고, 아이들도 점점 지쳐 가는 것 같습니다.

이런 질문들을 좀 하는 어른들이 있으면 참 멋있을텐데,,,,

" 요즘 사고 싶은거 많지? 상품권 많은데 좀 줄까? "
" 요즘 젊은인들은 여행 좋아한다는데 어디 다녀온데 없니? 삼촌 믿고 한번 다녀와라 "
" 재수씨 시집 오시니까 힘드시죠? 저랑 와인이나 한잔 하시죠? "
" 좀 잃어 드릴테니 고스톱 한판,,,"
" 어머니 ,,음식 그만 하시고 좋은 횟집 문연데 있으니까 같이 가요"

이번 명절 서로 위로 하는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가족들 오면 집에서 부침개 만들지 말고 서울 구경 좀 시켜 드릴라 합니다. 좋은 데 가서 같이 밥도 먹고요. 어머니 옷도 하나 사드리고 싶은데,,,잘될지 모르겠네요.

오랜만에 형 집에 오는 동생하고 당구도 치고, 온 가족이 맥주 파티도 하면서 보내고 싶네요. 다들 즐거운 명절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