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저 같은 사람도 청구할 수 있나요?

opengirok 2011. 11. 8. 11:22


광화문 광장 꽃을 가꾸는 데 도대체 얼마나 들까 의문 가졌다면 직접 알아내는 방법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도 활발하게 시행되는 제도,
모든 일반시민이 공공기관을 감시하는 도구


어느 날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보내온 우편을 열어보았다. 이대로 국민연금을 잘 넣으면 65세 이후 83만원이 연금으로 보장된다는 내용이었다. 내심 감격했다. 국가가 내 노후생활을 이렇게 신경 쓰고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했다. 하지만 이런 기분은 단 한건의 정보공개청구로 분노로 바뀌었다.


 내용은 이렇다. 국회사무처가 전직 국회의원들을 지원하는 헌정기념회라는 곳이 있다. 국회 사무처가 이 단체에 어떤 명목으로 돈을 지원하고 있는지를 청구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단 하루라도 국회의원이었던 전직 국회의원들에게는 65살 이후 종신토록 월 120만원을 지원하고 있었다. 그것도 국민의 세금으로 말이다. 그 국회의원들 가운데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던 사람도 있고,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사람도 있다. 심지어 재산이 2~3조 쯤 되는 정몽준 의원도 국회의원에서 낙선하면 바로 지원대상이 된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더욱 기가 막힌 사례를 보자. 작은 모임이나 단체 총무를 맡아 본 사람들은 안다. 행사 한 번에 수십 장의 영수증을 챙겨서 수입·지출을 맞추는 것이 얼마나 스트레스가 되는지 말이다. 영수증 한 장 잘 못 처리 했다가 인간관계가 파탄 나기도 하고, 심지어 경찰 조사 까지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영수증 없이 공금을 마구 쓸 수 있다면?


 공공기관이 영수증 없이 쓰는 돈 8,503억

공상만화에나 나올 법 한 일이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국정원, 국방부 및 경찰을 포함해 20개 공공기관에서 특수활동비라는 명목으로 연간 8,503억이라는 돈을 영수증 없이 쓰고 있다. 가끔 언론에서 그 사용내역이 나오기도 하는데, 기가 막힌다. 검찰총장이 출입기자들에게 게임을 통해 봉투를 돌리기도 하고, 문화관광부 차관이라는 사람은 특수활동비 1억 원으로 개인유흥비와 접대비로 사용했다가 장관인사청문회에서 들통이 나기도 했다. 이런 자금을 국민의 입장으로 감시해야 할 국회조차도 연간 85억씩 영수증 없이 쓰고 있다. 이런 실태가 정보공개청구로 조금씩 공개되고 있다.

 기왕 나간 김에 한 가지 예만 더 들어보자. 오세훈 전 시장 시절 광화문 광장을 걸어 걷다보니 온갖 화려한 꽃밭과 분수가 요동을 친다. 마치 놀이동산에 온 것 처럼 말이다. 그러나 필자의 눈에는 그것이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시민의 세금으로 치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광장이라는 것이 비어 있으면 되는 것이지 거기에 왜 분수와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꽃을 가득 심어 놨을까? 바로 사무실로 돌아와 두 달 간 관리비를 청구해보았다. 정보공개청구결과 두 달 간 관리비용으로만 3억 6천만원을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1년이면 20억이다. 저렇게 세금을 무개념으로 쓰면서 무상급식 못하겠다고 땡깡을 놓았던 것이다.

 이런 사례는 밤을 새워서 얘기해도 할 수 있다. 술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늘어놓다보면 사람들은 놀란 토끼 눈을 하며 쳐다본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 공공기관에는 수없이 많은 특혜와 특권이 있다. 그런 특권들을 꼼꼼히 들춰내고 감시해야만 한다. 다행히도 우리사회에 이런 공감대가 있어 법 제도적으로 감시를 보장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정보공개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정보공개청구권이다. 개인적으로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언론 정보공개론’ 이라는 이름으로 정보공개청구를 강의하고 있다. 청와대, 검찰, 경찰도 정보공개청구 대상이라고 강의하고 있는데 한 학생이 이런 질문을 한다.


  “교수님 저 같은 사람도 그런 곳에 청구할 수 있나요?”  

 학생들과 함께 웃고 넘겼지만 곰곰이 생각해 볼만한 질문이다. 아직도 일반 시민들은 공공기관에 대해 막연한 공포감을 가지고 있다. 청와대, 대검찰청, 경찰청 이런 곳에 정보공개청구 하면 왠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공포감이다. 하지만 정보공개법은 사회주의 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중국에서도 활발하게 시행되고 있는 제도이다. 일반 시민들이 많이 청구하고 기록을 공개받아야 공공기관의 책임성과 투명성이 높아진다.

 그 질문을 한 그 학생은 지금 공공기관에 불친절한 모습에 격분해 투사처럼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있다. 매우 흐뭇하다. 자신의 권리를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정보공개센터와 한겨레신문이 개최하는 정보공개청구 캠페인은 혁명의 시작이다. 평범한 시민들의 날카로운 시각으로 감시하고, 그들만이 놀고 있는 어둠의 세상에 햇빛을 비추는 것이다. 많은 시민들이 일주일에 한 건이라도 정보공개청구한다면 우리사회는 혁명적으로 변할 수 있다. 시민여러분의 폭풍 같은 정보공개청구로 수많은 특혜와 반칙이 드러나길 바란다.

 전진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