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TPP, 성급한 참여보다는 합리적 판단이 먼저다

opengirok 2013. 11. 8. 10:35






강 성 국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간사



올해 내내 혼란한 국내 정국으로 통상관련 이슈들이 자취를 감췄다가 최근에야 한국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참여 여부를 두고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TPP는 미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 12개국이 현재 협상 중인 최고 규모의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이다.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은 올 10월내 타결을 희망했지만 현재로서는 연중 타결도 어려운 상태다.


헌데 최근에 TPP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미국 측 여론과 일부 전문가들이 갑자기 한국의 조속한 TPP 참여를 목소리 높여 요구하고 있다. TPP는 2005년 출범했고 미국은 2008년부터 참여해 협상을 주도했는데 이들에게는 왜 하필 지금 한국이 요구되는 것 일까? 


이런 변화의 근저에는 TPP의 입지가 위태로운 상황이 깔려있다고 보인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런데, 우선 미국내에서 TPP의 입지가 좋지 못하다. 오바마 행정부 산하 USTR(미무역대표부)이 TPP를 추진하며 TPA(무역촉진권한)이 없음에도 미 의회에 철저하게 협상내용을 비공개에 부쳐왔으며, 유출된 미국 측 지적재산권 협정문 초안이 국제적 기준에서 벗어나 지나치게 산업계의 이익을 대변해 왔다는 비판이 다른 어디도 아닌 미 의회에서 제기 되었다. 두 번째로 TPP내 미국 및 선진국들과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의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려 협상의 진전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즉 관련 미국 산업계 입장에서는 현 난관의 빠른 돌파를 위해서는 미국과 FTA 기체결국인 한국이 자신들의 이해를 함께 주장할 동맹으로서 필요한 상황이다.




 

반면 한국 상황은 어떤가. TPP와 관련해 한국이 처한 상황의 표면적 난점은 정치경제적으로 민감한 FTA(자유무역협정)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을 포함하는 FTA만 하더라도 한중 FTA, 한중일 FTA,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그리고 TPP까지 포함할 경우 4개의 자유무역협정 트랙이 동시에 진행되는 가운데, 이 중 한중 FTA, 한중일 FTA에는 양자 및 삼자 중 한 축으로, 다자간 협정인 RCEP에는 경제적 규모에서 매우 중요한 실질적 참여자이다. 더구나 이미 TPP 참여국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FTA 협상을 재개한 상태다. 갑작스레 TPP까지 참여하게 될 경우 산업통상부 내에 협상여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상황적 판단에서 명료하게 드러나는 문제는 현시점에 TPP에 참여할 경우, 협정문 내용에 새롭게 개입할 여지가 거의 0%에 가깝다는 것. 즉 미국 측이 주도적으로 작성한 협정문을 그대로 받고 TPP 내에서 선진국들의 막판 협상력을 높이는 거수기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 무역협정에서 중간 참여국들은 앞서 진행된 협상 내용을 대폭 수용하며 참여할 수밖에 없다. 즉 한국은 이미 언제 TPP에 참여하든 이미 합의된 협정문을 그대로 받아야 하는 처지란 뜻이다.


어차피 그럴 바에야 한국의 한정된 협상력이라는 기초조건을 보다 고려해야 한다. 이 경우에는 현재 2차 협상까지만 진행된 RCEP에서 보다 큰 국익을 관철하는 것이 갑자기 TPP라는 테이블에 찡겨 앉는 것 보다 합리적이다. TPP 협정문을 그대로 받는 것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FTA들을 잘 매듭짓는 것이 중요하다. 나머지 FTA들의 진행 추이에 따라 TPP를 고려해도 TPP에 관한 한국의 조건은 거의 달라질 것이 없다. 보다 합리적인 판단을 위해서는 FTA에 대한 맹신과 조급증, 배제에 대한 두려움을 버려야 한다.


끝으로 이런 현 상황에 국한된 합리적 선택도 결국 큰 틀에서는 차선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어떤 선택도 결국 FTA에 대한 광신(fanaticism)의 토대 위에서 펼쳐지는 합리적 선택일 뿐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지만 결여된 것은 한미 FTA 당시에 포기를 강요당했던 'FTA는 무엇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우리 사회만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