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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의 통행권, 이대로 괜찮은가

opengirok 2013. 12. 26. 15:16


 * 이 글과 자료는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부 박은주, 설은지님이 정보공개센터에 공유해주셨습니다. 




‘길 한 번 건너려다 황천길 가겠다.’ 우리 대부분은 느끼지 못하고 살지만 이것은 현재 시각 장애인이 처한 현실이다. 서울시를 상대로 필자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얻은 자료에 의하면 2013년 12월 현재 서울시에 설치된 횡단보도는 30,192개, 신호등이 설치된 횡단보도는 9,065개로 전체 횡단보도 중 약 30%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중에 음향신호기가 설치된 횡단보도는 약 4,300개로 집계된다. 사실상 음향신호기는 출발-도착 지점에 하나씩, 즉 횡단보도 하나에 두 개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수치는 신호등이 설치된 횡단보도 중 약 47%, 전체 서울시에 설치된 횡단보도 중에서는 약 14.2%만이 시각 장애인용 음향신호기를 설치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서울시가 얼마나 시각 장애인의 통행권 보호에 무심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의문점이 드는 것이 있다. 바로 시각 장애인용 음향신호기를 설치한 수가 홀수개인 자치구들이 보인다는 점이다. 작동 원리상 음향신호기는 한 횡단보도에 두 개씩 설치되어야 하기 때문에 짝수개인 것이 정상인데 중구, 도봉구, 마포구를 비롯하여 총 7개 자치구에서 음향신호기가 홀수 개로 집계되어 있다. 또한 해당 자치구들은 그에 대한 아무런 추가언급이 없어 이러한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이렇게 ‘그나마도 몇 개 없는’ 음향신호기는 어떻게 관리되고 있을까. 필자가 청구한 내용에 대한 대답에 의하면 현재 음향신호기의 점검은 봄과 가을에 있는 정기점검, 그리고 매일 하는 일상점검으로 이루어져 있다. 매일 음향신호기를 점검하는데 왜 어제의 고장기기는 오늘도 어제와 같은 상태인 것일까. 이는 음향신호기를 점검하는 인원이 지나치게 적기 때문이다. 현재 시각장애인용 음향신호기는 각 도로사업소에서 점검 및 관리를 행하고 있다. 서울시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6개 도로사업소에서 음향신호기를 점검하는 인원은 총 60명. 즉 점검인원 한 명당 담당하고 있는 음향신호기는 약 140개가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이 매일 140개의 신호등을 점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는 상황이고, 이에 따라 음향신호기의 점검 또한 소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서울시는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시각장애인용 음향신호기의 설치를 늘리고, 나아가 점검인원의 충원 등의 방안으로 시각장애인의 통행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봉사활동으로 시각 장애인과의 동행이 잦은 대학생 김 모(22)양은 ‘시각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은 다른 장애인보다 많은 편이지만, 그나마도 여의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라며 특히 ‘시각 장애인에게 음향신호기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은 목숨 걸고 길을 건너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우리는 음향신호기를 쉽게 이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건너려는 이 신호등에 음향신호기가 있는지 없는지도 제대로 모를뿐더러 우리가 그 고장여부를 알기는 더욱 쉽지 않다. 시각 장애인 역시 우리나라의 국민이다. 이들을 보호하고 배려하여 자신의 권리를 충분히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정부가 진짜 ‘국민을 위한 정부’일 것이다. 매 순간 길을 건널 때마다 자신의 ‘안녕’을 생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행정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