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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개센터의 회원 중 상당수는 언론인들입니다. 정보와 언론과의 관계는 너무도 끈적? 하기 때문에 정보공개센터의 활동은 언론인들과 협업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감춰져 있는 진실을 드러내고 그것을 시민들과 공유한다는 점에서 활동가와 기자라는 직업은 어떤 부분에서는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언론이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 언론이 진실보다는 권력의 편에 서있을 때 다시 바른 언론을 만들자고 싸워왔던 바른 언론인들이 있습니다. (인터뷰를 정리하고 잇는 바로 오늘 저는 영화 제보자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대안언론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진실을 전하는 언론에 희망을 걸고 있는 걸지도요. 사설이 길었습니다. 오늘 만난 에너지가 바로 프리렌서 기자가 직업인 분이기 때문입니다. 새로 에너지가 되어주신 김양균님은 이름보다 삼류기자라는 호칭이 더 익숙합니다. 김기자‘님’이라는 호칭은 영 불편하니 기냥 김기자, 혹은 삼류기자라고 불러주면 된다는 그를 만나볼까요?  (2014. 10. 2 누리달 언주, 삼류기자와의 인터뷰.)




김기자, 아니 삼류기자 당신을 소개해 달라. 


- 김양균(삼류기자)은 1981년생이다. 암연구자이자 독립 언론 ‘누블롱 라 베리테’의 저널리스트이다. 재난 및 분쟁지역과 도시빈민에 관심을 갖고 취재하고 있고 해당 지역의 인권이 리포트의 핵심이다. 언론인의 특권의식을 거부한다는 차원에서 ‘삼류기자’라는 필명을 사용하고 있다. “저널리즘과 과학은 ‘사람’을 향해야 한다. 생명과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는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다.”라는 관점으로 취재를 하는 프리랜서 기자다. 



언론의 특권의식을 거부한다는 의미에서 삼류기자라,,, 혹시 언론에게 특권을 몸소 느낀 적이 있는 계기라도 있는 건가?


- 수습기자일 때, 선배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야기가 고개를 숙이지 말라는 것이다. 여러 의미가 함의되어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언론인은 강자, 특히 권력을 가진이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본 기자들의 행태라는 것은 그 반대의 경우가 많았다. 시민이나 약자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상당히 자주 목격했다. 그러한 행태에 매우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프리랜서의 길을 걷는 건가? 아무래도 프리랜서는 많이 힘들텐데,, 나름 곤조를 지키는 언론사들도 있는데 혹시 소속되어 일하고 싶지는 않으신지?


- 물론 나도 매체기자로 시작했다. 수습부터 하리꼬미<용어풀이: 경찰서에서 먹고자는 수습기자의 생활을 뜻함>도 겪었지만, 매체에서 요구하는 대로 기사를 쓰기가 싫었다. ‘기사 납품’하는 회사원이 되려고 기자가 된 것이 아니었기에... 속보성 기사는 일종의 공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스트레이트와 같은 기사체도 식상하다고 본다. 네러티브 기사와 르포와 같은 긴 호흡의 기사를 추구한다. 사실 독립한 결정적 이유는 이른바, 광고와 엿 바꿔먹는 언론계의 공공연한 속성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관점 자체가 하나를 깊숙이 들여다보는데 익숙해서, 일반 매체 기자로 일하는데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보수, 진보로 나뉘어져 있는 상황에서 특정 정치 스탠스를 취하는 매체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인권과 도시 빈민의 삶에 정치 논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마음에 맞는 매체가 있다면 갈 수도 있겠지만, 현재까지 몇 군데 없었다. 물론 그들이라고 날 원하지도 않겠지만ㅋ



그럼 성격상  주로 탐사취재를 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은데 최근에 가장 기억에 남는 취재는 무엇인가?


- 이거 설명하려면 길어지는데... 프리로 나선 이후에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정보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래봬도 매체에 있을 때는 고발기사 전문이었다) 특히 세월호 참사 취재의 경우, 분명히 여러 의혹에 대한 정황은 있는데, 팩트의 확인이 너무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휴먼위주로 취재할 수밖에 없었다. 눈물팔이하는 게 아닌가... 굉장히 괴로웠고, 기자로서 갈증을 느끼고 있다.  

세월호 참사 발생 삼일째 날을 담은 ‘비극의 아침’이라는 현장리포트가 기억에 남는다. <TV조선>에서 사고 발생 삼일째 새벽에 잠수한 영상을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찍어왔던 날. 가족들은 사고 삼일이 지나도록 선내에 잠수부들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았다. 그 절망과 고통의 한가운데서, 타사 매체 기자들은 가족들한테 혹여 맞을까봐 멀찍이 떨어져 있더라. 기자로서, 같은 사람으로서 굉장히 충격이었고, 고통스러웠다.  




"3일동안 그어떤 시도는커녕 거짓말만하다 가이드라인 하나 설치했다고해서 와봤습니다만에하나 살아있을지도모를 아이들을 늦장대응과 대책으로 죽여놓고 숨을쉬다니대한민국 정말 개차반이네요"


삼류기자의 기사보기:

[세월호침몰: 비극의 아침(3)] “방법은 하나... 청와대로 가자”~ Nous Voulons

www.nousvoulons0.com


금요일 밤에 진도로 출발해서 토요일 아침에 진도실내체육관에 도착했다. 그때의 분위기를 ‘비극의 아침’기사에 고스란히 담았다. 이 기사가 중요한 것은 녹취한 내용을 가감없이 그대로 복원해서 진도에서 이런 말도 안돼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리는데, 아주 조금은 일조했다고 본다.  

취재를 마치고 일요일 아침에 체육관 2층 한 구석에 앉아있는데,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당시 체육관 안의 공기란 게 절망, 고통, 분노가 뒤섞여서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미칠 것만 같았다. 도저히 버티지 못할 것 같아서 하루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우선 이 기사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오는 내내 녹취를 풀었다. 여러번 돌려서 들었던 것 같다. 가슴이 벌렁거리는 트라우마가 생긴 것도 그때부터였다.



정보공개센터도 언론인 회원들이 많은 편다. 이번 세월호사건을 보면서 느낀 건데 개인적으로 기자라는 직업의 숙명이 그런 벌렁거림의 현장, 분노의 현장에서 항상 있어야 하는 건데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당사자가 아니니 나의 느낌적 느낌이 실제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는 없지만,, 세월호사건이 삼류기자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 이 기사는 세편짜리였는데, 사실 이 마지막 기사를 위해서 앞의 것들을 썼더랬다. 기사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적나라해서, 현장 기록이라고 하기가 더 적당하지 않을까...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지 19일째 당시 진도 팽목항에는 가족대책본부 천막이 있었다. 그 앞에 커다란 화이트보드가 있었고, 거기에 수습된 희생자의 시신 정보가 붙곤 했다. 그걸 보고 있는데, 단발머리의 소녀가 화이트보드로 달려오더라. 전화를 든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자기 동생이 맞다고 얼굴이 하얘져서 주저앉는데, 나 역시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 역시 어머니를 병으로 잃은 기억이 있어서 소녀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날 밤 팽목항의 방파제에서 낮의 그 소녀를 보았다. 당시 희생자 가족을 인터뷰하려고 온갖 매체에서 혈안이 된 상태였다. ‘인터뷰를 할까, 말까’굉장히 고민이 됐다. 잘 설득하면 소녀는 인터뷰에 응할 것도 같아 보였다. 그때 엄마와 전화통화를 하는지 소녀가 그러더라. 

“여기(방파제)가 좋아. 사람도 없고.”

그 말을 듣는 순간 포기했다. 나와 인터뷰하면서 소녀는 또 울 것 아닌가. 매체 기자들이 얼마나 약았냐면, 이런 사고가 터지면 기사 풍년이라고 은근히 좋아한다. 카메라 앞에서 눈물이라도 흘린다면 금상첨화. 난 차마 그렇게 못하겠더라. 지금도 당시의 결정이 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취재하는 기자로서 이 소녀의 사건이후로 취재원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자고.



 세월호 우리에게 던져주는 충격만큼 이 사회를 제대로 진단하는 게 그만큼 필요할 것 같다. 물론 아직 해결되지 않는 특별법도 그렇고. 그래서 정보공개센터의 역할도 중요할테고.  세월호 얘기는 만나서 소주한잔하면서 더 하기로 하자. 정보공개센터와의 인연이 남다른 걸로 아는데 어떻게 만나게 됐나?


- 젠코대회에 오소영 감독이 세월호 다큐를 상영한다길래, 내가 취재한 영상을 제공했다. 얼결에 나레이션까지하게 되었고. 오감독이 젠코에 함께 가자고 제의했고 뭐하는 곳인가 궁금하던터라 냉큼 따라갔다. 그때 한국 NGO도 여럿 함께했는데 정보공개센터도 있었다. 그전까지 시민단체에 편견이 약간 있었다. 근데 막상 결이 맞더라. 물론 술자리도 거리감을 없애는데 한몫했고. 전 소장과 함께 방을 썼는데, 여러 이야기를 했었다. 그게 처음 시작이었다.




정보공개센터의 첫 이미지는 어땠나?

- 정보공개센터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발표한 내용들을 보니, 인상적이었다. 특히 원전관련 인포그래픽을 보고 내심 감탄을 했었다. 시쳇말로 ‘방구 좀 뀌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여러 성과물들을 보고 있자니, 어떤 방식으로라도 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협업할 수 있는 것들을 찾으면 정말 좋겠다 '-' 정보공개센터가 창립한지 6주년이 되었다. 그동안 잘 성장해 왔다고 자부? 하지만 그래도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정보공개센터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지?


- 시민단체가 말 그대로 시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매우 많은데, 보통 시민들이 어려워한다. 특히 정보공개센터의 경우 전문적인 용어와 내용들이 많아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 대중이 센터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좀 더 얻을 수 있도록 시민들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앞서 거론한 인포그래픽처럼. 세월호 타임라인 같은 경우도 좋다. 그 자체로도 우수하지만, 대중을 위해 애니메이션 등도 적극 활용했으면 한다. 스킨쉽이 늘어야 더 많은 후원회원이 생길 테고, 그러면 센터가 할 수 있는 일도 더 늘어 날테니.



완전 공감한다. 놓지 말아야 할 고민이고 이어가야할 숙제들이다. 자 그럼, 정보공개센터의 '뉴에너지'가 되었으니, 이번 6주년 후원회원의 밤에는 참석할건가?


- (그게 며칠이죠?)


- (ㅋㅋㅋ10월 24일이에요'-' 이번에 고리 핵발전소 취재 다녀온 이야기 꼭 듣고 싶은데,,,


- (조용히 가서 있다가 조용히 올게요~)


- (와보면 아시겠지만,,, 조용하지 않음 ㅋㅋㅋ 마성의 매력이 있어서 사람들이 새벽까지 집에 안감.)


* 정보공개는 중요하니까, 사적인 대화지만 아주 중요한 대화라 생각해 그대로 공개합니다.



마지막 질문이라고 생각하고 끝내려고 했지만,, 요즘 제일 관심사라 묻는다. 최근 고리핵발전소로 취재를 다녀온 것 같던데,,, 무엇 때문이었나?


- 미래부가 원전해체기술연구센터를 유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경북, 부산, 울산의 삼파전인 듯하고. 기장을 간 것은 서병수 부산시장이 고리 1호기 해체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원전해체기술연구센터도 유치하겠다고 언론플레이를 하더라. 그런데 언론보도를 아무리 뒤져봐도 원전 해체 분야가 ‘돈’이 된다는 말밖에 없더라. 특히 해당 지역신문들은 센터를 유치해야한다고 연일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원전 해체 기술 개발 및 인력 육성은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예산이 핵심이고 실제 원전 해체는 뒷전이 되지는 않을까. 그리고 이걸 바라보는 현장의 목소리는 어떨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정작 가보니, 연구센터가 들어서는 것 자체를 모르는 주민들이 더 많더라. 허탕 쳤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지역민들의 이야기가 재미있더라. 위의 연구센터는 추가 취재가 필요하고 이번 건 우선 지역민들의 목소리, 그 안의 욕망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후쿠시마사고 이후 방사능먹거리나 핵마피아의 비리문제등의 이슈가 있었지만 핵발전 전반의 문제로 이어지지 않는 아쉬움이 있었다. 폐기물이나 폐로기술, 노동의 문제 등 핵발전으로 인해 파생되는 여러 문제들을 드려다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삼류기자의 이번 취재결과도 아주 기대된다. 인터뷰가 좀 길어졌는데 마지막 질문을 하겠다. 앞으로 삼류기자의 꿈은? (꿈이라면 거창하고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


- 나는 진실은 현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이번 고리 취재에서도 그렇다. 지역민들 상당수는 원전 때문에 고통 받지만, 원자력 발전소가 있어야 먹고 산다. 스포츠센터에서 일을 하고, 원전 노동자들에게 밥과 술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불안하지만, 이제 생활이다”지역민의 증언이 그렇다. 나는 그 찰나를, 그 욕망을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기존의 언론의 방향과는 차이가 많기 때문에 글쎄... 기자로 이름을 날리기는 어렵지 않을까. 일본의 프리랜서 기자가 분쟁지역에서 총을 맞고 사망한 일이 있다. 쓰러지는 순간에도 카메라를 쥐고 있더라. 그런 기자로 살고 싶다. 그 뿐이다.



멋진 사람'-' 그런 열정에 응원을'-' 진짜 마지막으로  정보공개센터에 힘이 되는 한마디를 해달라


- "후원해 주시라. 그만큼 이 사회가 투명해진다."



인터뷰 후: 한국이 아닌 일본 오사카에서 처음 만났더랬다. 정보공개센터는 젠코대회에 참가하러, 삼류기자는 젠코대회를 취재하러 간 오사카 일정이었다. (젠코대회는 일본 전역의 시민사회 활동가들과 시민들이 1년에 한번 씩 모여 몇일 동안 노동의 문제, 반전, 탈핵 등의 의제를 가지고 발표도 하고 시위도 하는 대회다.) 일정 중에 참가자들과 함께 노래부르고 춤추고 술도 마시는 축제같은 일정이 있었다. 한국쪽 참가자들이 바위처럼 율동과 트로트를 개사한 반핵노래를 부르게 되어 있었는데 삼류기자도 함께 노래 불렀다. “핵발전소 빠이빠이빠이빠이야~”그날, 그 밤에 우린 그냥 신나게 함께 놀았다. 1인 언론으로써 취재하는 과정은 아마도 많이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 그 도전을 해보기로 결심한 멋진 에너지. 삼류기자를 응원해 주시라. 그만큼 이 사회가 진실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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