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정치인들의 밥줄 "정치자금"의 어제와 오늘

opengirok 2009. 6. 17. 16:43
뉴스쿨매점에서 만원짜리 숨기..
뉴스쿨매점에서 만원짜리 숨기.. by themaum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정보공개센터 정광모 이사
                                                                                        여의도 통신 선임기자

정치자금은 그 간 부패와 같은 말로 여겨졌다.

 부패의 한 예를 보자. 박철언은 저서 ‘바른역사를 위한 증언’에서 “1990년 1월 설연휴를 앞 두고 상도동에서 김영삼총재를 만나 노태우대통령이 전달하라고 한 10억원을 건네주었다”라고 밝혔다. 당시 10억 원은 지금 수십억에 달한다.


이 돈은 누가 어떻게 만들었으며, 김영삼 총재는 이 돈을 어디에 쓴 것일까? 당시 이런 일은 늘 있었고, 심지어 물 좋은 국회의원 보좌관은 4년 임기를 마칠 때면 집 한 채를 번다는 소문도 돌았다. ‘배달사고’도 흥청망청 돈이 돌아야 일어나는 법이다. 예전 한나라당이 했던 차떼기의 뿌리는 깊었다.


이런 정치자금을 규율하는 정치자금법은 1965년 2월에 처음 제정되었다. 처음 제정할 때는 전문 6개조에 불과하였지만 20번의 개정을 거친 지금 정치자금법은 전문 65조로 크게 늘어났다.


지금 법조문은 일반인이 읽기 까다로울 정도로 복잡한 규제가 많다. 그 만큼 한국정치자금은 ‘부패의 일상화’에서 나름대로 ‘투명성’을 향해 나아왔다.


투명성을 향한 전환점은 14번째 개정인 2004년 3월 국회에서 통과된 정치자금법이었다. 당시 한나라당 오세훈의원이 앞장서서 통과시켰다고 하여 오세훈법이라고도 불리는 이 법은 법인 또는 단체의 정치자금 기부를 금지하고, 고액기부자의 인적사항을 공개하는 등 ‘깨끗한 정치’를 위한 계기를 만들었다는 평을 받았다.


2005년 1월 이 법의 개정 움직임에 대해 오세훈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법이 정착되면 3년 뒤에는 정치 지망생 사이에 헛바람이 빠지고, 정말 봉사하고자 하는 사람만 나설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국회의원 한 두 번 하고 끝내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다. 정치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은 10%면 족하다”고 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현실을 보면 오세훈의 희망은 이루어지기 힘든 듯하다. 또 정치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10%라면 나머지 90%는 어디서 오는가?
돈 있는 사람만 정치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직업으로서 정치’를 하는 정치인도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야 항구적인 정치 향상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타당하다.  


설령 ‘직업 정치인’이 정치만으로 벌어먹을 수 있게 하더라도 그 간 쌓아온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깍아 먹는 식의 제도 변경은 곤란할 것이다. 뒤탈 없고 정치개혁에도 맞는 소액기부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국가가 소액기부액에 상응하여 자금을 지원하는 매칭펀드 방식 등 소액다수 기부에 따른 인센티브의 도입도 검토할 만하다.  

한국 서민대중에게 정치자금이란 말은 곧 착취의 역사다. 조선시대 말기 매관매직과 착취시스템을 보자. 수령의 임기는 3년이지만 1년도 못 채우고 바뀌는 예도 많다. 관직을 산 사람은 부임하자 말자 돌아갈 여비와 관직을 산 비용을 챙기고 자리 보전을 위해 상납할 뇌물을 만든다.

1890년대 조선을 방문한 영국 여행가 이사벨라 비숍은 “면허받은 흡혈귀인 양반계급으로부터 끊임없이 보충되는 관료계급”을 묘사하고 있다. 탐관오리는 ‘면허증을 딴 흡혈귀’였고 조선민중의 가장 큰 일상적 관심사는 이들이 뜯어가는 세금문제였다.

한국 정치자금의 역사를 보면 ‘흡혈귀’가 해방 후 ‘모리배’로, 다시 ‘특권층’에서 ‘정치인’으로 진화해 왔다. 지금 정치인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흡혈귀’로 변할 리 없겠지만 노무현이 몰락하는 현실을 볼 때 정치자금이란 ‘유혹의 상자’를 함부로 열어서도 안 될 것이다.

소액기부를 더 많이 풀어 정치인이 신세를 적게 지고도 정치를 하고 밥을 먹고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정치자금 역사가 가야 할 종착지일 것이다.

- 이글은 여의도 통신에도 실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