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전문성도, 알 권리도 없는 행정규제개혁. 아키비스트 사태!

opengirok 2010. 2. 11. 13:59
 

정보공개센터 자원활동가 이보람
(한국외대 기록관리대학원 입학)

 

기록관리 학계는 요즈음 깨나 어수선한 때를 보내고 있다. 최근 행정안전부와 국무총리실에서 논의된 '기록물관리 전문요원 자격완화' 때문이다. 기록물폐기 절차간소화, 비공개기록 5년마다 재분류 현행절차 삭제 등을 기록관리 프로세스 현실화 ․ 기록관리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기록물 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하려고 한다. 기록관리 자체가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아직 학부 졸업장에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2010년 전기 기록관리학 석사과정입학을 앞두고 있는 예비 기록인으로서 기록관리 전문요원의 자격완화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사진출처: 세계일보-기록이 없는 나라>

기록관리 전문요원은 아키비스트(archivist)로 현행 시행령에는 기록관리 전문요원의 자격을 기록관리학 및 역사학, 문헌정보학 석사학위 이상 소지자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을 학부로 낮추고 자격증을 따거나 단기 교육을 수료하면 자격을 얻도록 하향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기록관리의 전문성에 대한 고려가 없는 것이다. 또한 이미 기록관리 석사를 소지하고 현장에 진출한 전문요원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결정이다. 논의의 시작부터 뭔가 석연치 않다.

 

먼저 이것은 분명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도전이다. 기록을 기반한 행정의 효율성과 공직 업무의 투명성에 위배되는 것이다. 공공업무 추진과정에서 생산된 기록물을 자체적으로 폐기하고 비공개기록의 5년 주기 재분류 절차를 삭제한다면 현장에 있는 공무원들의 업무에는 당장 편의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기록에 대한 중요성이나 이해가 없이 편의주의적으로 기록을 폐기한다면, 앞으로 행정기록이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번 사태의 핵심 쟁점을 보면 참여정부와 함께 민주화바람을 타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기록관리가 정권이 교체되면서 존폐위기에 당면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는 정부가 기록과 정보를 권력으로 인식하고 독점하고자 한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럴수록 더욱 기록관리를 통해 국가운영성에 대한 알 권리를 확보해야 할 것이고 정권에 일희일비하는 기록관리학을 온전한 학문으로 정립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또한 정부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주장을 했다. 기록관리 대학원을 졸업하기 까지 약 3000만원이 학비로 낭비되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대학원이 기록관리 사교육을 담당하는 학원인가? 기록관리 전문요원을 배출하는 공무원양성소인가? 정부가 기록관리를 바라보는 인식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렇다면 의․약학, 법학 등의 전문대학원은 왜 있는 것인가. 의․약학은 사람의 몸을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에 좀 더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법학은 법률의 원리를 사회에 객관적이고 의롭게 적용하는 학문이므로 또한 심도 있는 공부가 필요하다. 국가를 운영해 나가는데 필요한 기록전반을 관리하는데 이용되는 기록관리학에서 다루는 분야는 인체도 법도 아니므로 대학원에 진학하면서까지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 우리나라의 후진적인 기록에 대한 인식이 다시 한 번 여실히 드러난다.

 

이렇듯 정부는 기록관리 전문요원에 의한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기록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또 이 아키비스트 사태를 기록관리 학계의 밥그릇 지키기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청렴하고 강직한 사관의 정신을 이어 받아 기록 문화유산을 후대에 전승하고 민주주의 이념을 정보공개와 기록관리로서 실현하겠다는 거창하고 고상한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키비스트의 밥그릇을 지키겠다는 이기적인 고집도 아니다. 정부가 진정 국가의 백년대계를 염두에 두고 국민을 위해 일한다면 기록관리의 전문성에 대해 상식적인 차원에서 나마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부가 당색을 초월하여 기록관리학문 자체의 목적과 소중한 기록문화유산의 보존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