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시민참여형 지방자치가 성공하려면

opengirok 2010. 7. 29. 12:52


ㆍ로컬 거버넌스가 성공하려면… 최종적 결정은 시민에 맡겨야


어느 도시의 한가운데에 버려진 땅이 있다. 이 땅을 어떤 용도로 쓸 것인가가 문제되고 있다. 어떤 유통업체에서는 이 땅을 구입해 대형 마트를 짓고 싶어 한다. 지역 주민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대형 마트 건설에 찬성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지역의 시민단체들은 이 땅을 청소년과 여성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 땅의 용도는 어떻게 결정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런 때에는 이 도시의 시장이 ‘결단’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한가, 지방자치단체가 관여를 최소화하고 기업 입장을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그것도 아니면 주민, 기업, 시민단체 등 다양한 주체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 토론하면서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한가. 그래도 합의가 안 된다면 최종적으로는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가.

이런 곤란한 상황은 우리 주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단어의 의미를 찾는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의사결정을 해 나갈 것인지와 관련해 시사점을 준다.

거버넌스라는 단어는 매우 다차원적인 개념이어서 쓰는 사람마다 의미가 다를 정도다. 우리말로 번역하기에는 적절한 단어를 찾기 어려워 그냥 영어로 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거버넌스라는 단어를 쓰는 것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표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결국 ‘민주주의’를 잘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하고, ‘참여행정’ 또는 ‘협동행정’이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거버넌스라는 영어를 쓸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거버넌스를 둘러싼 논의는 다양한 데다 개념을 정립하기가 어렵다. 결국 거버넌스라는 단어의 핵심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 기업, 주민 등 다양한 주체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한다. 이것이 거버넌스라는 단어의 긍정적인 의미일 것이다.

퇴행적인 지역 의사결정 구조 혁신해야
거버넌스라는 단어는 국가 차원에서도 사용되지만 지역 차원에서도 사용된다. 이번 6·2 지방선거를 전후해서도 로컬 거버넌스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쏟아졌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지역 의사결정 구조가 그만큼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지역의 의사결정 과정을 보면 관이 주도하고, 관이 우위에 있는 모습을 보인다. 지역 주민들은 동원의 대상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참여’가 이뤄지는 사례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이렇다 보니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정책은 별로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소수의 이익을 위해 정책이 왜곡되는 현상은 자주 나타났다. 각종 전시성 행사와 호화 청사 건립에 예산이 낭비돼 왔다.

로컬 거버넌스에 관한 논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금까지처럼 권력이나 기득권을 쥐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아니라 좀 더 폭넓은 주체들이 지역의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하고, 지역의 의사결정 과정이 투명해져야 한다는 문제 의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냥 로컬 거버넌스가 아니라 민주적인 로컬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민주적’이라는 말을 붙이는 이유는 투명성, 책임성, 시민참여와 같은 원칙들이 지켜지는 로컬 거버넌스가 돼야 한다는 의미다.

민주적 로컬거버넌스를 위한 과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모델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민주적인 로컬 거버넌스가 어떤 것인지를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이 없다. 244개에 이르는 지자체 가운데 몇 곳에서라도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마침 6·2 지방선거가 끝나고 많은 지역에서 지역 권력의 교체가 이뤄졌다.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지방자치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높은 편이다. 민주적인 로컬 거버넌스를 시도하기에 이처럼 좋은 시점은 없었다.

이런 시점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 번째 정보의 적극적인 공개가 필요하다. 시민들이 요구해야 공개하는 수준의 소극적인 대처가 아니라 지자체 스스로 시민들에게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가능한 한 모든 자료를 민간과 공유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인터넷 발달은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지방의회도 시민들의 회의 방청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회의 전 과정을 인터넷 등을 통해 공개해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의회를 만들어야 한다.

두 번째 행정 혁신이 필요하다. 특히 공무원 인사의 혁신이 필요하다. 공무원들이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마음가짐을 지니려면 공무원 인사부터 혁신해야 한다. 더 이상 공무원이 지자체장의 눈치를 보고 줄서기를 하게 할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을 찾아다니고 시민들과 소통하는데 주력하게 해야 한다. 지자체에 있는 각종 위원회도 개방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위원회 위원을 지자체장이 입맛에 따라 임명할 것이 아니라 시민들을 대상으로 공개모집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이런 방식을 채택해 위원회를 활발한 참여와 토론의 장으로 만들고 있는 사례들이 있다. 옴부즈만 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옴부즈만은 시민과 사회적 약자들의 어려움을 살피고 행정의 문제점을 시정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세 번째 시민 참여를 확대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민주적인 로컬 거버넌스의 핵심은 결국 시민들로 하여금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주민들이 예산편성 과정에 참여해 의견을 내고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주민참여예산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 읍·면·동 단위나 마을 단위에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동네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을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마을만들기 지원 조례 같은 것이 필요하다. 여성, 청소년, 장애인 등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네 번째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핵심적인 정책들에 대해 활발한 토의가 펼쳐지고, 그런 정책들이 시민의 관심과 참여 속에 추진돼야 한다. 민주적인 로컬 거버넌스가 필요한 이유도 결국 그것이 주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6·2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최대 쟁점이었지만 지역에서 토의가 필요한 정책은 훨씬 더 많다. 청소년들이 행복한 동네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지역복지·의료정책은 어떻게 할 것인지, 기후변화에 대해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농업과 농촌을 살리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 등 지역에서 토론하고 길을 찾아야 할 숙제는 많다.



이제 다시 버려진 땅으로 돌아가 보자. 버려진 땅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가장 좋은 답은 많이 듣고, 많이 토론하고, 많이 검토하는 것이다. 그래도 합의점이 찾아지지 않으면? 최종적인 결정은 시민들에게 맡기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투표’만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민들이 참여해 결정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공론조사라는 것도 있고 배심제와 유사한 방식을 사용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는 상상력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라.

지방자치 행정이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되려면 의사결정 과정에서 주민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최근 성남시가 매각하겠다고 밝힌 호화 청사는 시민이 배제된 관 주도 전시행정의 대표적인 본보기다.

하승수<변호사·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