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대통령기록은 동네북이 아니다.

opengirok 2013. 6. 24. 18:15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정진임 사무국장


대통령기록은 동네 북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록은 주된 타겟이다. 그가 기록을 많이 남겼기 때문이다. 이전의 여느 대통령처럼 퇴임과 동시에 그냥 다 들고 가버리거나, 없애버렸으면 편했을 것을 법까지 만들어가며 기록을 남겼던 탓에 그의 기록은 시끄러운 일이 벌어질때마다 온갖 무리들이 와서 툭툭 건드려보는 동네 북이 되어 버렸다. 


새누리당은 정치적 수세에 몰릴 때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록을 들먹이며 국면을 전환시킬 계기를 만들려 들었다. 

광우병쇠고기 파동으로 촛불이 한창일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록을 무단유출했다고 의혹을 제기하더니 지난 18대 대통령 대선 때는 문재인 당시 후보를 겨냥해 참여정부에서 기록을 무단으로 폐기했다는 추정을 늘어놓았다. 

특히 대통령지정기록물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끊이지 않았는데, 2008년 쌀직불금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에는 노 전 대통령이 해당 지정기록물을 해제하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차원으로 공개를 해 버렸다. 그리고 지난 2012년 대선 정국 당시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NLL포기발언을 했다며 그 대화록을 열어봐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이미지 출처 : 연합뉴스


그리고 몇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대선이 끝나면서 NLL관련 발언도 정치적 공방이었던 것으로 정리되는 듯 했다. 그런데 갑자기 국가정보원이 해묵은 사안인 NLL대화록을 대뜸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공개했다. 국정원이 지난 대선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후 대학가의 시국선언이 이어지는 등 비판여론이 거세지고 국정조사가 실시되려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새누리당으로 모자라 국가정보원도 대통령지정기록 무력화에 합세한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발췌본을 공개하고 열람한 국가정보원과 새누리당은 이것이 합당한 절차에 의해 이뤄진 공개기 때문에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이번에 공개한 대화 발췌록은 대통령지정기록물이 아니라 국가정보원이 가지고 있는 공공기록물이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이 열람을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발췌록을 본 여당 의원들은 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확실시 하며 지정기록물 열람을 요구 했고, 보수언론은 여기에 합세해 자극적인 문장들로 공격의 강도를 더했다. 그러는 사이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않고 새누리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 조작활동을 했던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사실은 물타기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대통령기록은 정치적 수세에 몰린 자들에게 또한번의 탈출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 


새누리당과 국정원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가 합법적이라고 주장의 뒷받침은 앞서 언급했듯이 검찰이 해 주고 있다. 검찰은 지난 2월 '제18대 대선, NLL 관련 고소·고발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국정원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국가정보원에서 관리한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기록이 아닌 공공기록물이라고 결정했다. 

이 결정에 대해 기록학계와 관련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도 안돼는 결정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대통령기록은 기록의 소재지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이 쟁점이다. 남북회담록은 당시 대통령 발언이 들어있는 기록이고, 내용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더군다나 그 기록이 국가정보원이 단독으로 생산한 것도 아니다. 당연히 대통령기록으로 관리되어야 하는 것이고, 대통령지정기록물로 관리될 정도로 매우 중요한 기록이다. 

그러나 검찰은 전문가들 뿐만 아니라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판단을 내렸다. 언제부터 검찰이 이렇게 국민의 알권리를 신경쓰는 곳이었는지 황당할 뿐이다. 문제는 검찰의 공개의지가 유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록에만 적용된다는 점이다. 검찰은 알권리에 대해 정확히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검찰은 얼마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관련 핵심정보를 담고 있는 수사기록을 비공개로 결정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인 전재용씨 등 관련자들의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있고 명예를 훼손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검찰은 지금 갖은 이유로 천문학적 금액을 국가에 내지 않고 있는 자의 명예는 지켜주면서 향후 한국의 역사를 증명할 대통령기록의 명예는 땅으로 떨어트리고 있다. 검찰마저 대통령기록을 동네북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민주당마저도 대화록 공개 정치공방에 휩싸여 대통령지정기록을 정쟁의 도구로 삼고 있는 것이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얼마전 최고위원회에서 국정원에 대한 국정조사를 먼저 한다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본과 사본 모두를 공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충격이다. 민주당의 이런 발언으로 대통령지정기록은 정치협상의 도구로까지 전락되었다. 문재인 의원 역시 긴급 성명을 통해 "누차 강조했듯이 결코 해서는 안될 어리석은 짓이지만 이제 상황이 어쩔 수 없게 됐다"면서 "대화록과 녹음테이프 등 녹취자료 뿐 아니라 회담 전 준비자료와 회담 이후 각종 보고자료까지 함께 공개한다면 진실이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본인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지만 이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다른데도 아닌 대통령지정기록제도의 취지를 그나마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믿었던 민주당의 이러한 태도는 새누리당이나 검찰이 보였던 어떠한 행태보다도 부끄러운 수준이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을 왜 만들고 왜 지정기록물이란 과정까지 두어 특별히 관리하는가. 이렇게라도 관리하지 않으면 정쟁에 휩싸여 후대에 기록을 남기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퇴임하는 대통령이 기록을 남겨도 걱정이 없게끔 하려고 대통령지정기록이라는 것을 만들어 15년동안은 기록을 건드리지 말고 지켜주자고 자고 한 것이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제정 직후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록이 이승만부터 김대중 까지 이전 모든 대통령이 남긴 기록의 양보다 많다는 것이 그 증거다. 그런데 그 제도를 민주당까지 합세해 훼손하자고 나서고 있는 셈이다. 더군다나 다른 것도 아닌 외교정상회담록공개하자니. 이러한 기록을 공개한 사례는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대통령기록에 대한 권위 뿐만 아니라 외교관계에 대한 신뢰 역시 한번에 잃게 되었다. 



사람들은 대통령기록을 동네 북처럼 취급한다. 그래서 자기한테 불리할 때마다 기록을 소환해 분위기를 바꾸려 든다. 때문에 7년전의 일도 어제의 일인 것 처럼 아니 어제의 일보다도 더 시끄럽게 환기되고, 이미 죽은 자는 아직도 호명되고 있다. 

이후의 대통령은 덕분에 톡톡히 학습을 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꼬투리가 잡히는 지. 어떻게 하면 동네 북이 되는지 말이다. 

대통령으로서 했던 자신의 행동을 지켜줄 수 있는 방패가 얼마나 약한지, 정치꾼들의 공격의 이빨은 또 얼마나 강한지. 대통령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어느 대통령이 기록을 제대로 남기려 하겠는가. 어디 겁이 나서 제대로 남길수야 있겠는가. 


이미 대통령기록은 훼손될대로 훼손되었다. 그렇다고 아주 숨통을 끊자고 들어서야 되겠는가. 이제라도 추스려 회복시켜야 한다. 

그렇게들 공개하자고 물어뜯고 있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은 이제 7년 후면 봉인이 해제된다. 정치 한두해 하고 말 사람들도 아닌데, 그 7년도 기다려 줄 수 없는가. 지금 그 봉인을 풀고 나면 정작 7년 후, 70년, 700년 후에 후대에 남겨줄 기록이 하나도 없을지도 모른다. 눈 앞의 위기를 피하겠다고 근본을 훼손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더불어 역사를 망가뜨리는 위험한 짓이다. 기억해야 한다. 명심해야 한다. 

대통령기록은 당신들의 동네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