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노무현 대통령 서거와 대통령기록!

opengirok 2009. 5. 24. 23:42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사무국장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다. 우리 정치사에 가장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다. 그를 사랑하고 존경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본인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많은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지만 기록관리, 정보공개운동 활동가로써 그의 기록에 대한 사랑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독 기록을 사랑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거하셨지만 그가 남긴 기록은 성남에 있는 대통령기록관에 살아 숨 쉬고 있다. 무려 800여만 건이다. 그전 대통령들이 남긴 기록의 몇 십 배에 해당하는 광대한 양이다.

  그러면 그는 왜 이렇게 광범위한 기록을 남겼을까? 2004년 필자는 모 시민단체에서 정보공개, 기록관리 운동을 하는 활동가였다. 당시 우리 공공기관의 기록관리 문화는 처참할 정도로 부실했다. 기록을 생산하지도, 보존하지도 않았던 매우 비참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보존되었던 기록은 그저 창고에서 곰팡이의 놀이터가 된 채 썩어가고 있었다.

  당시 이런 현실이 안타까워 평소 친하게 지내던 언론인들에게 기록 관리의 현실에 대해서 수없이 토로했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메이저 언론사들에게 공동 기획기사를 쓰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제안에 대해 냉담히 거절했다. 시의성도 떨어지고, 국민들의 관심도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필자와 함께하던 전문가들은 절망했다. 정보공개청구로 통해 공공기관으로부터 받은 기록만 보더라도 모든 상황을 증명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들은 철저히 외면했다.

  어느 날 세계일보 탐사보도팀에서 전화가 왔다. 기록관리 현실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때부터 세계일보 탐사보도팀과 수많은 토론과 고민을 한 끝에 “기록이 없는 나라” 시리즈를 시작하기로 계획하고 취재를 시작했다.

  그 이후 공공기관에서 기록이 썩어 들어가는 장면을 취재하는 데 성공했다. 그 이외에도 공공기관에서 기록관리가 되지 않는 현실을 수없이 취재할 수 있었다. 탄핵국면이 마무리 되었던 2004년 5월 말 무렵 “기록이 없는 나라” 시리즈를 시작했다. 세계일보는 시리즈 둘째 날 신문 지면을 통해서 기록이 썩어가는 장면을 사진으로 공개했다. 둘째 날 보도가 나가자 말자 당시 행정자치부 허성관 장관이 세계일보에 전화를 걸어왔다. 이런 현실을 개선할 수 있도록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서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너무나 빠른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있었다는 것은 그 이후에야 알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 보도를 보고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행자부 장관에게 지시를 내린 것이었다. 그 시리즈는 10여회에 걸쳐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보도되었다. 우리의 문제제기에 대해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기록관리 현실을 엄중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당장 당시 구성 중 이었던 정부혁신위원회에 기록관리 분야를 추가시켰다. 그 이후 정부는 기록관리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전문가들을 총체적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기록관리 분야에서 필자와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거의 모두 다 정부로 불려갔다. 그때부터 세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기록관리 전문가(기록연구사)들이 정부에 채용되기 시작했고, 국가기록원의 위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또한 각종 기록관리시스템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온갖 예산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인력, 돈, 조직에 대한 총체적인 지원이 시작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록관리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스스로 이지원 시스템이라는 업무관리시스템을 개발했다는 점이다. 이 시스템은 특허청에 특허를 받기도 했다. 이 시스템은 공무원이 출근과 동시에 모든 업무에 대해 기록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었다. 필자도 이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엄청난 노력을 해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시스템을 기반으로 맹렬히 기록을 생산하고 보존했다. 뿐만 아니라 행정부 전체가 기록관리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모든 부처가 국가기록에 대한 시스템을 바꾸기 시작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이라는 법안을 제정했다. 그 이전까지 없었던 대통령 기록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한 법안이었다.

  법안은 대통령지정기록물 제도를 만들어 대통령 기록에 대한 민감한 기록에 대해서는 15년 동안 비공개를 할 수 있도록 법안을 만들었다. 대통령의 모든 노하우를 기록을 남기되 15년을 보호해 후임 대통령들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였다. 당시 시민사회단체에 반대도 있었지만 기록을 남기겠다는 그의 집념에 법안은 국회를 통과했다. 그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할 때쯤 일반국민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 기록을 남긴 업보로 후임정권으로부터 엄청나게 시달려야 했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록을 봉하 마을로 유출했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건국이후로 최대 국가기밀 유출이라고 떠들어 됐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 열람권 확보를 위해 스스로 생산한 대통령기록 사본을 가져갈 수 있는지 행정안전부 및 법제처와 수 없이 상의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이런 현실은 무시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대 수혜자였던 국가기록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을 대통령기록 유출로 고발하는 사태로 비화되었다. 너무나 큰 애정을 가지고 키웠던 기관으로부터 고발을 당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너무나 억울한 마음을 홈페이지에 억울함을 토로한 채 전체 기록을 국가기록원에 반납해야 했다. 하지만 상처는 깊었다. 수많은 기록관리 전문가들이 분노했다. 하지만 사건은 유아무야 되고 말았다.

  그리고 2009년 5월 23일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거했다. 모든 책임을 가지고 스스로 이 세상과 작별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있다. 그는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기록은 성남에 있는 대통령기록관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그 기록 속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토록 갈구했던, 국정철학, 민주주의, 정치개혁, 국정개혁에 대한 정신들이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세상을 떠났으나 그가 남긴 기록은 영원할 것이다. 그 기록은 후대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교훈을 줄 것이다. 그토록 괴롭혔던 대통령 기록은 그의 정신이 무엇이었는지 후세에 장엄하게 웅변할 것이다.

  모든 것을 떠나 후대에 이런 기록을 남겨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감사하고 싶다. 이 기록은 서거한 대통령의 정신을 후세에게 생생하게 증거 해 줄 것이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대통령기록으로 모든 것을 남긴 노무현 전 대통령님 평안히 영면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