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이제 한국의 청년들도 자기정치를 해야 한다

opengirok 2011. 10. 13. 13:49
투명사회를위한 정보공개센터
하승수 소장

‘안철수 바람’이 거세다. 전국의 대학가를 돌며 청년들과 소통하는 멘토 역할을 하던 그가 정치에 의지를 보이자 순식간에 대권후보가 돼버렸다. 이를 두고 ‘정당정치의 위기’라는 분석도 나오고,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유권자들의 변화욕구가 안철수라는 아이콘을 만난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세대별로 좀 더 상세하게 분석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안철수씨에게 열광하는 세대는 청년들이다. 안철수씨는 20, 30대에서 과반수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정치에 무관심하던 청년들이 안철수씨로 인해 정치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사실 한국의 청년들은 매우 답답한 상황에 처해 있다. 청소년기에는 과도한 경쟁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다보니 OECD 국가에서 가장 행복하지 않은 청소년 시절을 보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에 80%가 넘는 비율이 대학에 진학하지만, 비싼 등록금에 시달려야 하고,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의 문은 좁기만 하다. 대학을 가지 않은 20%의 현실은 더욱 답답하다. 학력차별까지 존재하는 상황에서 상당수는 암울한 현실을 몸으로 부딪쳐야 한다.

그런데도 청년들은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한다. 기득권을 가진 정당들은 선거용 구호로만 ‘청년’을 이야기한다. ‘반값 등록금’도 외치지만 진정성은 떨어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국회나 지방의회에서 청년들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정당 내부에도 청년들이 설 자리는 없다. 청년들의 목소리가 정치에 전달될 통로조차 없는 것이다.

그래서 청년들은 낮은 투표율로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을 표시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안철수씨가 등장했고, 그래서 청년들이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멘토는 멘토일 뿐이다. 그리고 안철수씨가 대권에 도전하는 순간, 그는 청년들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의 정치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안철수씨도 청년들의 문제에 집중하지 못할 것이다.

한편 한국에서 ‘안철수 바람’이 부는 동안, 독일에서는 다른 사건이 터졌다. 엉성해 보이기 짝이 없는 정당인 해적당이 베를린 지방선거에서 8.9%의 득표율을 올려 15석의 의석을 차지한 것이다. 독일 해적당은 여러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20~30대들의 정당이라는 것이다. 해적당 당원들의 평균연령도 29세이고, 당대표도 20대다. 그래서 해적당은 ‘청년들을 위한’ 정당이 아니라 ‘청년들의’ 정당이다. 청년들이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정당인 것이다. 이런 해적당을 보면서, 30여년 전 독일 녹색당이 출발할 때를 떠올리는 분들도 있다. 녹색당이 가장 관심을 쏟은 핵문제만 하더라도 앞으로 많은 세월을 살아가야 할 청년들의 문제였기 때문에 녹색당에도 청년들이 많이 참여했었다.

독일 해적당



일본에서도 정당은 아니지만 청년이 자기정치를 시도한 사례가 있다. ‘가난뱅이의 역습’이라는 책을 쓴 일본의 청년활동가, 마쓰모토 하지메는 사회적으로 보면 루저(loser)다. 그는 대학에서 시위를 하다 쫓겨난 후 지역에서 재활용가게를 운영하면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청년들과 소통한다. 그러던 그는 구의회 선거에 출마해서 선거를 록콘서트장으로 만들어버리는데, 그래도 1000표 이상의 표를 얻는다.

해적당이나 ‘마쓰모토 하지메’는 청년들이 자기 정치를 하는 것이다. 누가 대변해주고 대행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관심사에 대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 점에서 ‘안철수 바람’과는 차이가 있다.

앞으로 한국의 정치에 청년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려면 어떤 방법이 맞을까? 누군가 영웅이 나타나서 청년들을 잘 대변해 줄 것을 기다리는 게 맞을까, 아니면 청년들 스스로가 조직화되어서 정치의 영역에서 목소리를 내는 게 맞을까? 아무래도 후자가 더 현실성있는 방법일 것 같다. 해적당이든 녹색당이든 루저당이든, 이제 한국의 청년들도 자기정치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