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우리가 지금 주목해야 할 건 이명박대통령의 기록이다.

opengirok 2012. 10. 25. 13:45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정진임 간사



노무현 기록이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발언이 담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과 기록 폐기 지시 여부가 정치권의 쟁점이 된 것이다. 2008년 대통령기록물 유출의혹 사건 이후 다시 불붙은 기록 공방이다.


  공방의 1차전은 NLL을 내세운 대통령기록열람 논쟁이었다.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은 10월 8일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에 대해 주장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 비밀녹취대화록을 비선을 통해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07년 남북회담 당시 일을 맡았던 통일부 장관도, 국정원장도 그런 비밀녹취 대화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참여정부 관계자들은 정문헌 의원이 봤다는 대화록의 실체를 먼저 공개하라고 나섰다. 그러나 정의원은 이에 대해 아무런 증거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의원이 대화록을 봤다면 그것은 불법 행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의 대화록이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되지 않았을리 만무하고, 그런 대화록의 누출은 3년 이하의 징역에 해당하는 중범죄이다. 또한 만약 대화록의 실체가 없다면 국민을 우롱하는 행위가 되니 자가당착에 빠진 꼴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공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차전으로 넘어간 공방은 기록 무단 폐기 논쟁으로 번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록을 폐기하라고 지시했으며, 차기 정부 인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민감한 문건의 내용과 목록을 없애버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대통령기록관으로 넘겨줘야 할 기록 중 상당수를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만들어 목록까지도 공개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며 그 과정에서 목록 삭제와 기록 폐기를 지시했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이렇게 되자 새누리당은 ‘노무현 정권 영토포기 및 역사폐기 진상조사 특위’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대통령기록관을 찾아가 당시 남북회담대화록과 관련 자료 열람을 요구한 것뿐만 아니라, 대통령 기록물 열람 요건을 완화하는 법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노컷뉴스



  그런데 이 의원들, 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아니면 법 따위는 무시하고 넘어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실상 그 앞장을 정문헌 의원이 섰으니, 법을 몰랐을 리가 없다. 정문헌 의원은 현행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의 시초가 된 예문춘추관법을 발의했던 자다. 당시 그가 발의했던 법은 현행법보다 더 엄격하게 대통령기록을 보호하자고 주장했다. 그런 자가 지정기록물을 제멋대로 보겠다고 우기고 있으니 이러한 희대의 정치쇼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와 그 동료들의 머릿속에 고무지우개라도 든 것이란 말인가.   


 대통령기록 중에는 지정기록물이라는 게 있다. 대통령이 재임 중에 생산한 기록 중에 일부를 15년 내지 30년 이내의 기간 동안 열람을 할 수 없도록 정한 기록들이다. 이러한 제도를 둔 이유는 그간 정치적 공격을 당할 것에 대비해 멸실되기 일쑤였던 대통령기록을 보호함으로써 되도록 많은 기록을 후대에 남기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2007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제정 이전인 이승만 정부~김대중 정부 까지의 대통령 기록의 양은 33만여 건에 불과한 반면 이후 노무현 정부가 남긴 대통령기록은 825만여 건에 달한다. 기록을 철저하게 보호하겠다는 안전장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극단적인 수치다. 철통관리를 위해 대통령기록의 열람절차도 까다롭게 하고 있다. 빗장이 느슨한 곳간에는 곡식을 보관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에 지정기록물의 열람은 국회 재적의원의 2/3 이상이 찬성한 경우, 관할 고등법원장이 영장을 발부한 경우, 대통령기록관장이 승인을 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러나 새누리당 진상조사 특위는 위 절차 중 어떠한 것도 거치지 않고 기록 공개를 요구했다. 지금 그들의 눈에는 대통령기록관리제도의 취지든, 법적 절차든,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모양이다. 


  기록 폐기 지시 주장 역시 목록 또한 비공개 된다는 대통령지정기록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거나, 원본이 아닌 진본,사본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하는 전자기록 체계를 알지 못해 빚어진 논쟁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는 2008년 기록유출의혹 공방 당시에도 이미 학계에서 정리된 것인데도 불구하고, 또다시 불거진 것이다. 이 모두들 무지의 결과로 빚어진 해프닝이라 보기엔 씁쓸함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이런 해프닝, 아니 이런 치졸한 떼쓰기는 이제 그만 보고 싶다.



대통령기록관리와 관련된 시스템 흐름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애써 남긴 기록을 빌미로 한 정치권의 싸움이 끝날 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기록관리는 진보와 보수, 새누리와 민주를 막론하고 보편타당하게 지켜야할 책무 중 하나다. 때문에 과거 조선시대에도 기록은 왕조차도 제맘대로 할 수 없도록 했다. 기록이 있어야만 실현 가능한 알권리 역시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할 천부인권이다. 때문에 어떠한 이유에서도 기록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알권리의 근간이 되는 기록의 훼손을 초래할 시도 역시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더구나 법과 절차까지 어겨가며 벌이는 공방은 의원 스스로의 권위와 수준을 떨어뜨리는 치졸한 행위 밖에는 되지 않는다.


  대선 정국이다. 대선주자들은 이번 기록공방을 가지고 서로를 공격하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면 이명박 대통령은 물러갈 것이다. 그러면 노무현의 그것처럼 이명박 대통령의 기록이 남겨질 테다.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기록은 참여정부의 1/8 수준이란다. 대통령기록을 양으로만 이야기 할 것은 아니지만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적은 양이다. MB정부에서는 민간인사찰 기록 무단폐기 등 많은 기록 은폐 사건들이 있어왔다. 지금 우리는 대통령기록이 왜 이것밖에 없는지, 이 기록들을 어떻게 남길건지 지켜보고 따져봐야 한다. 우리는 어쩌면 시끄러운 정쟁에 현혹돼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명박 정부가 후대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대통령기록이 잘 남겨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