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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MB맨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 기록 관리 맡기나

opengirok 2010. 3. 16. 11:01

행안부, 대통령기록관장에 현 정부 행정관 임명 논란... "기록물관리 근간 흔드는 인사"
  
남가좌동 명지대학교 본관 10층에 위치하는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사무실 현판
ⓒ 전진한
 

대통령 기록관리 근본취지를 흔드는 인사가 단행됐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15일, 김선진(45) 청와대 메시지기획관리관실 행정관을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장으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대통령기록관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기록관리비서관인 임상경씨가 재직해왔으나 정권교체 기간 동안 대통령기록을 봉하마을로 유출했다는 이유로 직권면직 돼 공석으로 남아있었다. 임상경씨는 검찰에서 기소유예를 처분 받았다.

 

그러면 이 인사의 근본적 문제는 무엇인가? 현직 대통령이 대통령기록관리를 전담하고 있는 대통령기록관의 수장을 선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법의 취지와 대통령 기록관리의 정신을 훼손하는 근본적 문제가 있다.

 

우선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대통령기록물관리법)을 보면 바로 문제점이 드러난다. 법을 분석해보면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현직 대통령의 기록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전직 대통령의 기록을 관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기록은 3년 후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되어서 관리하는 것이고, 현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포함한 전직 대통령 기록을 관리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록이 800여만 건으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대통령지정기록물 공개, 엄격히 금지하는 이유


 
그럼 이명박 정부가 인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록을 관리하는 것은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첫째 대통령지정기록물의 훼손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알고 있다시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매우 예민한 기록을 많이 남겼다. 이를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서는 대통령지정기록물이라고 칭하고, 15년동안 공개를 금지하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 법령에 따른 군사·외교·통일에 관한 비밀기록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기록물 ▲ 대내외 경제정책이나 무역거래 및 재정에 관한 기록물로서 공개될 경우 국민경제의 안정을 저해할 수 있는 기록물 ▲ 정무직공무원 등의 인사에 관한 기록물 ▲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기록물로서 공개될 경우 개인 및 관계인의 생명·신체·재산 및 명예에 침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기록물 등이다.

 

공개절차도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의결이 이루어진 경우나 고등법원장이 해당 대통령지정기록물이 중요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발부한 영장이 제시된 경우로 한정 되어 있다. 그간 대통령지정기록물 공개 시도가 한 번 있었는데, 2008년 쌀 직불금 사태 문제가 불거지면서 여야 국회의원 3분의 2의 동의가 있어 공개가 이루어졌다.

 

이렇게 대통령지정기록물의 공개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것은 대통령 지정기록물 자체가 매우 예민해 정치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회 동의나 고등법원장의 영장 없이도 대통령지정기록을 공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 바로 "대통령기록관 직원이 기록관리 업무 수행 상 필요에 따라 대통령기록관장의 사전 승인을 받은 경우"다. 그렇기 때문에 2007년 4월 제정된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은 대통령기록관장의 임기를 5년으로 정해, 전임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가 후임정권이 끝날 때까지 임기를 보장해주고 있는 것이다.

 

몇 십년 전 역사도 제대로 규명 못하는 나라

 

  
2008년 7월13일 정진철 국가기록원장(왼쪽 두번째)이 임상경 대통령기록관장, 국가기록원 관계자 2명 등과 함께 김해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사저 방문 조사 후 기자들 앞에서 브리핑하는 모습.
ⓒ 황방열
 

상황이 이러함에도 현 정부는 임상경 전 대통령기록관장 후임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모를 선임한 것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의 참모를 대통령기록관장으로 선임했다. 이는 정치적 도리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향후 대통령 지정기록물 열람에 대한 기준이 완화 될 위험에 처했음을 의미한다.

 

둘째로 전직 대통령 비공개기록에 대하여 정보공개청구나 소송이 제기 될 경우 비공개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왜냐하면 이런 기록에 대해서 제대로 대응하려면 노무현 전 대통령 기록의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대통령기록관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록의 연원과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어 외부의 정보공개청구나 행정소송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게다가 더욱 답답한 점은 현재 대통령기록관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 중에도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일했던 인사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지막 문제점은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의 근간이 흔들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민감한 대통령기록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만든 법안이다. 과거 대통령들은 민감한 기록이 후세에 공개될 경우 정치 보복 등을 받을 것을 우려해 대부분 본인이 직접 들고 나가거나, 소멸시켜 버렸다.

 

이 결과, 불과 몇 십 년 전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규명할 수 없는 처지의 나라가 되어버렸다. 일례로 최규하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12·12 사태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진실을 거의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역사적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해 현직 대통령이 지정하는 기록물을 대통령 퇴임 후 15년동안 비공개하도록 했고, 그 기록을 관리하는 인사도 본인이 가장 잘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선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MB정부 취임 후 악화되고 있는 기록관리 현실

 

그런데 임기를 마친지 3년도 되지 않아, 후임대통령이 대통령기록관장을 바꿀 수 있다고 한다면 누가 민감한 대통령 기록을 남기려고 할 것인가?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지정한 기록물을 후임대통령 인사가 관리한다고 하면 대통령 기록을 제대로 남길 수 있겠는가? 이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 이후 어렵게 만들어왔던 기록관리 현실을 계속 악화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예전 사관 역할을 했던 기록전문요원의 임용 기준을 완화시키는 시도를 하고 있는가 하면, 기록물폐기 기준도 완화시키고 있다.

 

대통령기록관리를 포함해 기록관리는 행정의 뿌리나 다름없다. 뿌리를 무시한 채 속도전으로 일을 처리하고 나면, 나중에는 부실함으로 외부에서 불어오는 강풍에 견딜 수 없게 된다. 이명박 정부는 속도를 내기 전에 우선 뿌리를 잘 내리고 있는 지 스스로 돌아봐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불어오는 강풍은 견딜 힘을 잃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