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구제역 방역일지, 허위 대필서명 지시받고 실행"

opengirok 2011. 5. 9. 12:17

이 게시물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이사인 도류스님이 5월 8일, 오마이 뉴스에 기고한 글 입니다.

"1월 중순 무렵부터 3월까지 그렇게 근무했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곳은, 야간근무 배정을 받은 공무원이 사실상 초소에 오지도 않았습니다. 항상, 당일 오전에 근무했던 공무원이 그날 저녁 근무할 공무원의 서명까지 대신해서 적어 넣었고, 우리가 공무원을 대신해서 그날 저녁 근무를 했습니다. 군청에서 미리 공무원 대신 배치될 사람의 명단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었고, 그래서 우리가 대신 근무했습니다." - 방역 근무자의 증언 내용


 
화천군 구제역 방역 활동 
강원도 화천군은 지난 2010년 12월 22일 사내면 명월리에서 구제역 최초 발병이 확인됨에 따라, 주변 도로 차단방역과 동시에 관내 전역에 30여 개의 초소를 설치하고, 공무원1인 2교대(각 주야 12시간), 주민 3명 3교대(1일 11명)로 조를 짜 방역을 했다. 


공무원의 경우 직급에 따라 차별을 두면서 초과근무수당과 출장경비가 지급되었고, 일반 근무자들 역시 8시간 근무수당 6만 원이 지급되었다. <강원도민일보>에 따르면, '방역근무 수당으로 15억원'을 지출했다.

수일 전, 지난 겨울 내내 강원도 화천군에서 구제역 방역근무를 했던 한 사람이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를 찾아와 당시 방역초소에서 일어난 비위사실을 제보했다.

이 제보를 토대로 나(정보공개센터 이사로 일하고 있다)는 당시의 근무일지와 공무원들의 근무일정표 그리고 수당지급내역에 대한 사실관계를 조사해보기 시작했다. 근무일지만을 우선 공개 받은 까닭에 이에 준해 확인된 사실만을 소개하기로 한다.

비위 사실을 털어놓은 그 사람은 2월 한 달간 오후 9시부터 오전 9시까지의 '야간근무 배정표'를 증거 자료로 내놓았다.


구제역 방역근무자 "허위 대필서명 지시받고, 조 짜서 실행"


산림방재과 작성 구제역 근무자 명단
ⓒ 도류

2월 한 달간 배치명단에 따라 야간 방역근무를 해야 할 공무원을 대신해 자리를 지켰고, 야간 근무해야 할 공무원의 서명은 주간 근무자가 미리 허위로 기재해주었다는 것이다. 야간 근무를 안 한 공무원이 12시간 철야 근무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부당하게 야간근무수당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해당 공무원은 다음날 결근을 했어도, 야간근무에 따른 휴식으로 간주됐다고 제보자는 말했다.

공무원 대신 자리를 지킨 사람들이 야간근무 대가로 받은 수당은 평소 일용수당인 4만 2000원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들에게 지급된 수당은 구제역 방역비용으로 정산된 것이 아니라, 해당 분과(산불진화대)의 임시직 고용비였다. 해당 과목에 명시되지 않은 사업에 임의로 인원을 배치하고 예산을 편법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5회 방역초소 근무를 하면 1회를 보너스로 주어 6회 근무한 수당으로 지불해주었다고 한다.



▲ 2월 방역초소에 대리근무한 대가로 임금을 받은 청구서 사본 
ⓒ 도류

위 사진은 2월 방역초소에 대리근무한 대가로 임금을 받은 청구서 사본이다. 앞서 설명한대로 방역근무 5일을 완료했을 경우에 '주차 1'이라는 하루 근무수당 보너스를 주는 방식이다. 따라서 10일을 완료했다면 '주차 2'가 되어 12일치의 근무수당을 받게 되고, 그래서 20일을 근무한 사람은 '주차 4'가 추가되어 24일치의 수당을 받는 방식이다. 2월 한 달간 하루 4만 2000원의 대리근무 수당을 받은 횟수와 수당지급 내역을 알 수 있다.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해, 근무일지에 대한 세부 검토에 들어갔다. 두 사람이 가슴에 가득히 끌어 안아야 이동이 가능한 분량의 서류 더미였다. 그 많은 분량도 사실은 약 3개월에 걸친 모든 방역초소의 근무일지는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기간 중간 중간에 걸쳐 그러한 사실이 있었는지 확인해보는 데에는 충분한 내용이었다.

그 많은 서류 더미 가운데에서, 우선 위의 대리근무자 명단으로 확인된 해당 부서의 2월 근무일지를 살펴보았다.


근무일지 확인 결과, 한 사람이 근무자들의 사인 일괄 기재 부지기수

넘겨받은 자료 가운데에서 산림방재과의 근무일지는 10초소('10. 12. 23.~'11. 01. 13), 21초소('11. 01. 03~ '11. 02. 28), 28초소('11. 03. 01~ '11. 03. 05), 34초소('11. 01. 17~ '11. 02. 13)의 서류가 있었다. 산림방재과 21초소에 대한 부실한 근무일지를 우선 확인해 보기로 했다.



▲ 산림방재과 21초소의 부실한 근무일지 
ⓒ 도류

위의 근무일지 서명은 한 사람의 동일한 필체로 모든 근무자의 성명 서명이 매우 깔끔하게 정리된 서명부임을 보여준다.



▲ 구제역 방역 초소 근무일지 
ⓒ 도류

1일 3교대의 민간근무자들의 서명 역시 한 사람에 의해 허위로 기재된 흔적이 역력하다. 사실 다른 거의 모든 초소에서 민간근무자의 이러한 허위 서명의 흔적이 부지기수로 드러났다. 

앞서 소개한 대리 근무자가 명시된 '구제역 발생에 따른 병역근무자 명단'에 해당하는 산림방재과 2월의 방역초소 근무일지를 확인해보았다. 물론, 2월의 방역초소 근무일지 서명란에는 임시직 근로자들이 방역초소에 근무했다고 볼 수 있는 대리근무자 서명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당시 해당 실과의 공무원들 서명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버젓이 기재되어 있었다. 과연 주간 근무 공무원의 필체로 야간 근무자의 서명도 기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은 각각 주야로 서명을 대조해볼 수 있도록 사진을 배열한 것이다.



▲ 구제역 방역 초소 근무일지 
ⓒ 도류
 

2011년 2월 1일 주간과 야간에 이은 위 두 서명자의 필체가 유사하게 보인다.



▲ 구제역 방역 초소 근무일지 
ⓒ 도류

2월 12일 주야간으로 이어지는 위의 서명 역시 동일인의 것으로 추정되며 아래에 기재된 일반근무자들의 것도 모두 한 사람이 서명한 것으로 짐작된다.



▲ 구제역 방역 초소 근무일지 
ⓒ 도류

임시직 대리근무자가 증언한 바와 같이 실제 근무일지의 서명은 동일인의 주야 중복된 서명으로 보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넘겨받은 모든 근무일지들을 천천히 살펴보면 나머지 거의 모든 실과에서도 부분 부분 허위 서명이 보였고, 일반근무자들의 서명 역시 명백하게 대리서명 기재로 보기에 충분한 것이 부지기수였다.

담당 실과장 결제도 없는 부실한 근무일지... 한 사람의 필체로 20일 이상 서명

주민생활지원실 직원들이 근무했던 5초소의 경우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보였다. 2011년 1월 31일부터 2011년 2월 20일까지 장장 20일 가량 주야근무자들의 서명이 한 사람의 필체로 일사천리 기재되어 있는 곳이 있다.

아래에 몇 가지 사진자료를 공개하면서 설명하기로 한다.



▲ 주민생활지원실 (좌)2011. 02. 01. 시간:21:00~9:00 (우)11. 1. 31. 시간 21:00~9:00 
ⓒ 도류



▲ 주민생활지원실 (좌)2011. 02. 20. 시간:9:00~21:00 (우) ‘11. 1. 31. 시간 9:00~21:00 
ⓒ 도류

위의 서명자 필체는 장장 20일 가량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상단부 결제박스의 근무자 담당 과장의 결재란도 비워져 있는 부실한 근무일지다. 마치 누군가가 책상머리에 앉아서 근무일지 원장을 넘겨가며 단숨에 20일치의 서명을 한꺼번에 기입해 넣은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25 방역초소에 근무했던 의회사무과 근무일지 가운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서명 몇 가지를 보기로 한다.

▲ 구제역 방역 초소 근무일지 
ⓒ 도류

▲ 구제역 방역 초소 근무일지 
ⓒ 도류

역시 결재자의 확인서명도 없는 부실한 일지다. 위의 네 사진자료 모두 23일 오후 5시부터~25일 오전 1시까지 한 사람에 의해 모든 서명이 기재된 것으로 추정되는 의회사무과 25초소 근무일지다.

한 사람이 그날의 근무자 모두의 확인서명을 대신해주어도 상관없는 일이라면, 자필 서명란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는 근무일지를 무엇 때문에 작성해야 한다는 말인가.


기획감사실 직원들의 허위서명... 화천군의 총체적인 기강 해이



 ▲ 구제역 방역 초소 근무일지 
ⓒ 도류

 
▲ 구제역 방역 초소 근무일지 
ⓒ 도류



▲ 구제역 방역 초소 근무일지 
ⓒ 도류

위의 문서들 모두 기획감사실 근무일지에서 확인되고 있는 자료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서명까지 허위로 기재해 놓았다. 이러한 허위문서에 담당자와 과장이 버젓이 결제 도장을 찍어 넣었음을 알 수 있다.

기자는 군청에서 외부열람 형식으로 넘겨받은 방역초소 근무일지 원본을 거의 모두 검토한 뒤, 그 원본 가운데에서 의혹의 단서가 될 수 있을 근무일지는 모두 복사해 두고서 반환했다. 원본 서류철은 단순히 끈으로 묶어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반환된 뒤 비위사실이 드러날 것을 우려한 당사자들이 문서 보관함 속의 해당 근무일지들을 자필서명으로 바꿔치기 해 넣을 수도 있어서다.

화천군청은 이런 사실과 관련해 지난 6일 전화통화에서 "감사계에서 진위를 파악 중이다"라고 밝혔으나, 7일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화천군의 한 관계자는"산불 전문진화대원과 병해충 방제요원 9명이 야간근무를 도와주겠다고 해서 공무원들과 함께 근무토록 한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상당수 공무원들이 제대로 근무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의혹을 사실로 인정했다. 또 이 관계자는 "일부 과의 경우 개인별로 한달에 4만-10만원씩 부적절한 수당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