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서울에 핵발전소를

opengirok 2011. 9. 9. 11:47


 















<변호사·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

‘블러드 다이아몬드’라는 영화가 있다.  다이아몬드를 둘러싸고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내전을 다룬 영화다. 이 영화 속에는 ‘아프리카에 평화가 오기 위해서는 분쟁지역에서 생산된 다이아몬드를 사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누군가는 다이아몬드 때문에 죽어가는데, 누군가는 화려한 도시에서 피 묻은 다이아몬드를 사고 있는 기막힌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지적한 현실은 남의 일이 아니다. 특히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아니지만 다른 생명들의 눈물 위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서울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불구의 도시다. 서울의 전력 자급률은 2009년 기준으로 1.9%에 불과했다. 서울은 식량을 자급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외부로부터 전기를 공급받지 못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취약한 구조를 가진 대도시다.

이런 서울을 유지시켜주려면 외부에서 전기를 생산해서 공급해줘야 한다. 그래서 핵발전소, 화력발전소를 짓는다. 핵발전소는 동해안의 울진·월성·고리와 서해안의 영광으로 몰아넣고, 거기에서 발전을 해서 대형 송전탑을 통해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핵폐기물도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다 저장을 시킬 예정이다. 중·저준위 핵폐기장은 이미 경주에 짓고 있고, 10만년을 보관해야 하는 고준위 핵폐기물 저장시설도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 결국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핵발전소나 핵폐기장이 추진되는 지역은 몸살을 앓는다. 찬-반 갈등으로 지역공동체가 황폐해지기도 한다. 송전탑이 건설되는 지역도 자연이 파괴되고, 주민들 간에 갈등이 발생한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생산된 전기를 쓰는 서울은 평온하기만 하다. 아마 서울시민들 중에는 ‘핵발전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며, 별 생각 없이 전기를 쓰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상식적인 의문이 하나 떠오른다. 정말 핵발전소가 필요하다고 해도 왜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만 설치할까? 전기를 쓰는 서울에 설치하면 굳이 많은 돈을 들여서 송전탑을 건설하고 자연을 파괴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 관료들이나 핵산업계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핵발전소는 미사일을 맞아도 끄떡없고 지진이 일어나도 끄떡없는 안전한 시설이다. 기왕에 국격을 높이려면 청와대 부근에다 이런 시설을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 정부는 지금 핵발전소를 외국에 수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한국형 핵발전소의 안전성을 보여주는 의미에서라도 서울 한복판에 핵발전소를 짓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런 얘기는 필자만의 주장이 아니다. 정부는 후쿠시마 이후에 핵발전의 안전성을 강화한다면서 10월에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이 위원회의 위원장으로 내정된 강창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는 2003년도에 전라북도 부안에서 핵폐기장 문제가 터졌을 때 “서울대 관악캠퍼스 지하 암반에 핵폐기물 처분장을 만들자”고 주장한 사람이다. 정말 핵발전에 찬성하려면 이런 정도의 소신과 자신감은 가져야 할 일이다. 서울에, 그것도 청와대에 핵시설을 유치하자. 굳이 변방의 해안가 마을로 핵발전소를 돌리지 말자.

만약 이런 주장이 황당하다고 생각한다면, 핵발전에 반대하는 것이 윤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내가 싫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것은 나쁘다는 상식만 있다면, 선택은 명확하다. ‘블러드 다이아몬드’가 그 다이아몬드를 사는 사람들의 탐욕 때문에 유지되듯이, 우리와 미래세대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핵발전도 서울에서 아무 생각 없이 핵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쓰고 있는 사람들 덕분에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핵발전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면, 서울에 핵발전소를 유치하자.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핵발전소에 대한 신뢰를 높인다는 의미에서 청와대에 핵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 이글은 주간경향 <하승수의 눈>에도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