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경찰 검문검색의 추억?

opengirok 2011. 4. 14. 14:34

투명사회를위한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사무국장

강한 바람과 추위로 온몸을 강하게 때리던 지난겨울이었다. 오직 추위를 막아내겠다는 집념으로 검은색 점퍼와 마스크까지 착용한 채 출근길에 나섰다. 손을 점퍼에 깊숙이 찔러 넣고, 몸을 반쯤 숙인 채 종종 걸음으로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와 비슷한 복장을 한 두 남성이 나에게 오라고 손짓을 한다. ‘도를 아십니까?’ 분위기가 나서 잽싸게 피해서 가는데, 이분들이 다시 나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들은 거수경례를 하면서 “○○ 경찰서 ○○○ 경장입니다. 신분증을 좀 주시겠습니까?” 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다. 형사들의 불심검문이었다.



시민단체 활동가답게 거절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외쳐야 했지만 너무 추워 나의 신분을 망각한 채 운전 면허증을 내어주고 말았다. 그제서야 내가 검은 점퍼 및 청바지와 범죄형 패션의 절정인 마스크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행히 아무런 범죄혐의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경찰은 나를 곱게 보내주었지만 뭔가 불안했다. 이런일을 또 당하지 않으라는 법이 없다. 내 패션이 계속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사무실 근처 지하철역에서 또 한 남성이 내 눈에 들어왔다. 경찰복을 입고 있는 한 분이 지하철 개찰구 밖에서 조용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잽싸게 갈려고 하는데 나에게 친절히 말을 건넨다. “○○ 경찰서 ○○○ 경사입니다. 신분증을 좀 주시겠습니까?” 출근길에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공권력으로부터 두 번이나 검문검색을 당하는 순간이었다.

순간적으로 시민활동가의 기질이 폭발했다. 게다가 지하철 역 안이라 춥지도 않았다. “아니 세상에 출근길에 두 번이나 검문검색을 합니까? 여기는 업계끼리 연락도 안하나보죠?” 라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이고, 주위 사람들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제서야 경찰은 “미안합니다” 라고 말하고는 그냥 가라고 손짓 했다.

재밌는 것은 말끔하게 양복을 입은 날은 이런 일을 당하지 않는데, 검은색 점퍼를 입은 날은 여지없이 이런 낭패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고딩 때는 친구 6명과 독서실에서 빠져나와 야구장 근처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경찰차가 다가와  연행을 한 적도 있다. 6명 전체를 뒷자리에 구겨 넣었고 난 친구의 무릎에 앉아 나 의 엉덩이를 친구에게 맡기는 엽기적인 자세로 연행을 당한 것이다. 물론 밑에 있던 내 친구는 자기가 더 불쾌한 경험이었다고 우기고 있다.

당시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소리를 질렀던 것도 아니고 오직 모여서 얘기를 했다는 이유로 밤 12시에 연행을 당한 것이다.

그 당시의 공포는 지금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혹시 학교나 부모님께 연락이라도 간다면 독서실에서 공부하지 않고 땡땡이 쳤던 것이 만천하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런 혐의가 없어서 바로 풀려나 부모님께 전화를 하는 불상사까지는 발전하지 않았다.  그때도 검은 점퍼를 입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10대부터 시작된 검문검색은 30대 후반이 되어서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하지만 매번 당할 때마다 기분이 나쁘며, 불쾌한 기분은 하루 종일 우울하게 만든다. 이런 일을 겪은 후 검은 색 점퍼를 입지 않는 버릇까지 생겼다.

이를 계기로 본인이 일하는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에서는 경찰청에다 전국 불심검문 현황에 대해서 매년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있다. 정보공개청구 결과는 놀라웠다. 경찰청의 실적주의가 최고조에 올랐던 2009년에는 서울에서만 644만 명이 이런 경험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무려 서울인구의 60%가 넘는 사람들이 검문검색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이다. 나처럼 미남형 얼굴이 아닌 사람들은 그런 경험들을 더 많이 당했을 것이다.

2010년에는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서울지역에서만 241만 명이 검문검색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적으로는 사람과 차량을 합친 검문검색 건수는 5,265만 건이다. 우리나라 성인인구와 차량을 합친 만큼의 숫자와 거의 비슷한 양태를 보인다. 이쯤 되면 검문검색은 거의 모든 성인들이 한번쯤 경험하게 되는 일상적 생활이 되었다.

검문검색은 그 자체로 인권 침해적 요소가 있다. 따라서 경찰은 인권침해 방지를 위해서라도 검문검색을 줄여야 하며, 하더라도 강제적인 절차가 아니라는 것을 당사자들에게 고지해야 한다.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 자신의 신분증을 달라고 하는 것은 어떤 상황이든 사람을 불쾌하게 한다는 것을 경찰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경찰 분들에게 한마디 드리고 싶다.

“경찰님들 검은 색 점퍼 좀 편하게 입으면 안될까요? 마스크는 안할게요 부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