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청와대 공무원의 이름은 김땡땡?

opengirok 2011. 5. 24. 15:49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사무국장


필자는 유난히 발달 된 구강구조 때문에 어릴 때 유독 많은 고난(?)을 당해야 했다. 특히 학창 시절 중 제일 견디기 힘든 시간이 자율학습 시간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책만 보면서 몇 시간을 버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럴 때마다 여러 얘기를 준비해뒀다가 짝이나 앞 뒤 친구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러면 반 전체가 내 얘기에 귀를 기울였는데, 지루한 자율학습 시간이 서로 뻥을 자랑하는 만담 시간으로 발전 하곤 했다. 주로 연예인 얘기나 주위에 있는 여학교 중 가장 예쁜 여학생들이 어떤 도서관을 이용하느냐가 최대한 관심사였던 것 같다.  당연히 나는 자율학습 시간에 주적과 같은 존재였다. 선생님들은 반장을 시켜서 칠판에 자율학습에 잡담을 하는 학생들의 이름을 적게 했고, 난 그 명단에 최고 단골 고객으로 뽑히는 신공을 발휘했다.



칠판에 이름을 적히는 순간 자율학습 시간은 항상 공포에 떠는 시간이 된다. 언제 어디서 선생님이 닥쳐서 그 이름을 확인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때로는 반장에게 최대한 읍소와 뇌물(미팅 주선 약속)을 써서 지우곤 했지만 가끔 이름이 지워지지 않아 교무실에 여러 차례 불려갔던 적도 있다. 물론 불려가는 순간 공포의 체벌이 기다리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무엇인가 잘못하여 만인 앞에 이름이 적시 된다는 것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일인지 그 시절부터 알았던 것 같다. 반대로 이름이 공개되는 것이 아주 자랑스러울 때도 있었다. 중간 기말고사를 치면 반전체 등수가 적힌 성적표를 반 게시판에 붙여 놓곤 했는데, 성적이 가끔 올라갈 때면 그 명단 공개가 그렇게 자랑스러울 때가 없었다.

이처럼 자신의 이름이 공개되는 것은 때로는 자랑스럽게, 때로는 불명예스럽게 느껴 질 때가 있다. 그러면 공무원들은 자신이 생산한 공문이나 정책에 대해서 본인의 이름을 공개하는 문제는 어떨까? 만약 공무원들이 자신의 정책이나 공문을 널리 알리고 싶으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이름을 공개할 것이며, 그 반대면 어떻게든 은폐할 것이다.

최근 이 이름 때문에 황당한 경우를 경험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수많은 공공기관에 연 수 천 건씩 정보공개청구를 한다. 정보공개청구를 하면 공개 및 비공개 결정을 하고, 내용을 첨부하게 되는데 추가적인 질문을 위해 담당 기안자 및 검토자, 결재권자의 이름 및 직위를 공개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원칙을 지키고 있지 않은 기관들이 있다. 우선 우리나라 최대의 지방자치단체인 서울특별시다. 얼마전부터 정보공개시스템을 통한 결정통지서에서는 담당 공무원의 이름을 확인 할 수 없다. 서울시 정보공개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왜 담당자 이름을 표시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담당 공무원이 실수를 해서 그런 것이다”라고만 대답한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정보공개센터에서 정보공개청구한 것이 한두 건이 아니고, 한두 부서가 아닌데… 하는 것 마다 담당 공무원들의 이름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MB 정부 이후 청와대는 더욱 더 큰 변화가 있었다. 청와대의 정보공개결정통지서에는 담당자 이름이 <김oo> <정oo>과 같이 표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얼마 전 부터는 직통 전화도 사라졌다. 전화를 하기 위해서는 청와대 안내 전화를 해야 하지만 이 조차도 연락이 쉽지 않다. 스스로 국정원의 위치를 부여 받고 싶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정보공개청구인으로서는 매우 불편하다.

안내전화에다 “이 정보공개 답변서에 대해서 확인하고 싶으니 김땡땡님 바꿔주세요” 라고 하는 웃긴 멘트까지 날려야 한다. 국정원을 제외한 모든 정부부처가 담당자 이름 및 연락처를 누리 집에 공개하고 있는데, 유독 이름을 비공개하고 있는 이 두기관의 행태는 어떻게 봐야 할까?

우선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스스로 생산한 공문이나 정책에 대해서 시민들에게 설명할 책임성을 무시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스스로의 정책 및 공문에 대해 매우 불편해 하는 느낌까지 든다. 마치 자율학습시간에 떠들다가 적힌 본인의 이름처럼 말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행태들이 불법이라는 것이다. 정보공개법에는 “직무를 수행한 공무원의 성명·직위”는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법을 집행해야 할 청와대와 서울시가 스스로 법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서울시는 관련 시스템이 문제가 생겨서 발생 된 일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시스템이 몇 개월간 문제가 있음에도 해결하지 않고 있는 것도 더 큰 문제점으로 지적 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정책실명제를 도입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다. 정책실명제란 정책을 주창하고 설계한 공무원 그리고 그 정책을 시행하고 감리한 공무원들의 이름을 확실하게 밝혀 그 정책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하는 제도를 말한다.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정점인 청와대와 서울시는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