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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개캠페인] 삼성, 하루도 빠짐없이 유령들의 집회

opengirok 2011. 12. 27. 17:15
이 기사는 박경담· 손영진· 윤재원씨가 보내준 정보공개청구 자료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정보공개청구캠페인은 기간을 연장해서 2012년 1월31일까지 진행합니다. 여러분이 직접 청구해 받은 자료를 보내주시면, 그 자료를 세상에 알릴 수 있도록 기사화합니다. 또한, 보내주신 자료들을 심사해 상을 드립니다.


                                                                                            [한겨레 출처] 
 

[전체 자료 첨부합니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인사팀은 바쁘다. 매일 집회를 주최해야 한다. 수원남부경찰서에는 올해 1월1일부터 10월31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삼성전자 인사팀이 주최하는 ‘초일류 삼성인 문화정착 캠페인’이라는 집회가 신고됐다.

 삼성전자 디에스사업총괄 기흥사업장 인사팀도 바쁘다. 이들도 역시 올해 1월1일부터 10월31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삼성전자 디에스사업총괄 핵심가치 실천 결의대회’라는 이름의 집회를 열겠다는 신고를 했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은 삼성전자 사내 홈페이지에 ‘노동조합을 만들자’라는 글을 썼다가 1년 전인 지난해 11월 해고된 박종태(41)씨가 23년 동안 출퇴근한 곳이다. 지금 박종태씨는 삼성전자 중앙문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1인시위이긴 하지만, 삼성전자 정문 쪽으로는 접근하지 못한다. 중앙문도 길 건너편에서만 집회를 한다. 삼성전자 회사쪽에서 회사 건물을 둘러싸고 모두 집회신고를 해두었기 때문에 주변을 맴돌며 원직복직을 주장하고 있다. 잘못했다가 삼성이 신고해둔 집회를 방해했다는 명목으로 고소·고발을 당할지도 모른다. 간혹 삼성일반노조 등에서 연대 집회를 할라쳐도 하루도 빠짐 없이 신고돼 있는 인사팀의 ‘초일류 캠페인’ 때문에 집회를 제대로 열 수 없다.

 ‘핵심가치 결의대회’가 매일 열린다는 삼성전자 기흥공장 반도체사업장은 황유미씨가 2년여간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숨진 곳이다. 지난 6월 법원에서는 황유미씨의 백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황유미씨의 죽음 등을 계기로 반도체 노동자의 산업재해 인정 등을 주장하려던 반올림 등 단체들도 인사팀의 집회 신고 선점으로 인해 집회를 여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장안석 건강한노동세상 사무국장은 “삼성이 매일같이 집회 신고를 해두기 때문에 집회신고를 하려면 몇 달 전부터 계획을 세워서 자정 직전에 가서 밤새 줄을 서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집회 신고는 이틀 전부터 한 달 전까지의 집회를 미리 신고할 수 있다. 삼성 등 대기업은 회사 주변에 매일 한 달 전, 한 달 뒤 집회를 신고해둔다. 12월1일에 내년 1월1일 집회를 신고하는 식이다. 대부분의 경찰서는 선착순으로 집회신고를 받기 때문에 반올림 등 시민단체가 집회를 합법적으로 열려면 한 달 전 자정부터 경찰서 앞에서 줄을 서서 집회 신고서를 내야 한다.

 그렇다면 삼성전자 인사팀에서 열겠다는 집회는 열렸을까. 경찰은 ‘미개최’라고 답했다. 박경담(27·대학생)씨 등이 지난 4~9월 6개월 동안 삼성 15개 계열사 22개 사업장 정문 앞 집회 신고 현황에 대해 해당 경찰서에 정보공개청구를 한 결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등 17개 사업장이 신고한 집회는 실제 개최율이 0%인 것으로 나타났다.

» 삼성 시위 현황

 이 가운데 10곳은 6개월 동안 매일 집회를 신고하고서 단 하루도 집회를 열지 않은 ‘완벽한 유령’ 이었다. 이 ‘완벽한 유령’은 대부분 백혈병·부당해고 등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사업장들이다. 앞서 언급한 해고노동자 박종태씨가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백혈병 산업재해’를 법원이 인정한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을 비롯해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인 화성사업장, 온양공장, 지난 7월 삼성일반노조가 처음 탄생한 삼성 에버랜드 등이 해당 사업장이다.

지난 1월11일 삼성전자 기숙사에서 투신자살한 고 김주현씨가 다니던 삼성전자 모바일 디스플레이 천안사업장에도 5월1일부터 9월30일까지 ‘교통사고 근절 임직원 안전운전 결의대회’ ‘환경의 날 기념 임직원 환경정화운동 결의대회’ 등이 회사쪽에서 신고됐지만, 정작 해당 대회는 열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장안석 건강한노동세상 사무국장은 “노동조합이 없는 삼성이라는 기업에서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이 공공기관에 구제를 요청하고 답변을 받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려, 그 시간동안 자신의 피해 구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당사자 행동밖에 없다”며 “그런데 이런 당사자 행동까지를 완전히 차단해버리는 삼성이라는 기업은 결국 함께 일하던 노동자의 권리는 물론 집회·시위의 자유라는 시민으로서의 권리까지 완전히 차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와관련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 지침을 준수하고 있다”며 “불법과 편법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집회를 신고하고도 집회를 열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