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날치기예산, 형님예산이 '복지국가'로 가는길인가

opengirok 2010. 12. 23. 14:58

'양심불량'  예산

하승수
<변호사·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

이미지 출처 : 경향신문



날치기였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한나라당의 소장파 의원 22명이 앞으로는 날치기를 안 하겠다고 한 걸 보면, 이번에 통과된 예산은 날치기 예산일 수밖에 없다.

그냥 날치기가 아니라 온갖 이해관계로 얼룩지고 사회적 약자들을 무시한 예산이다. 대통령의 형님,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비롯한 실세 정치인들의 지역구 예산은 대폭 올리고, 결식아동 지원예산 등은 삭감했다. 한 마디로 ‘양심불량’ 예산이다.

이런 표현이 심하다고 생각하지는 마시라. 외국에서는 이런 예산들을 ‘pork barrel’, 즉 ‘가축들에게 주는 먹이를 담아두는 통’이라고 부른다. 국회의원들이 자기 지역구 예산만 챙기는 것을 경멸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경멸적인 행위가 매년 연말에 반복되는 것을 목격한다. 그나마 몇 년 전까지는 이런 행태에 대한 어느 정도의 자기경계는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는 경계선이 무너졌다. 그러다보니 이런 예산들은 몇 억, 몇 십억대를 넘어서서 몇 백억, 몇 천억대로 늘어났다.

이런 지역구 예산 챙기기의 결과는 허무하다. 졸속으로 챙긴 예산을 어디에 쓰겠는가? 결국 타당성도 없는 개발사업 하고, 도로 닦고, 전시성 사업 하는 데 쓰게 마련이다. 이렇게 들어간 정부 예산은 눈사람 녹듯이 사라질 뿐이다.

국회만 이런 것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들여다보면 더 고질적인 문제들이 많다. 새마을, 바르게, 자유총연맹 같은 관변단체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운영비까지 퍼주고 있다. 홍보 명목으로 막대한 광고비를 쓰고, 입맛에 맞는 언론들에게 예산을 나눠 준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치적 쌓기용으로 하는 전시성 행사·사업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매년 도로 닦고 보수공사하고 보도블록 교체하는 데에 반복적으로 돈을 써댄다.

이미지 출처 : 대한민국자식연합



이런 예산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확실한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공사 예산은 건설업체들에 밀접한 이해관계가 있고, 관변단체 지원예산은 이 돈으로 유지되는 단체들에 이해관계가 있고, 광고비는 언론들에 이해관계가 있다.

이런 집단들을 챙겨주고 정치인들 쓰고 싶은 데 쓰고 나면, 늘 예산이 모자라는 듯 느껴진다. 그래서 “복지 같은 데 재원을 다 써버리면 결국 남는 게 별로 없게 된다”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이 나온다. 무상급식하자고 하면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오세훈 시장의 발언이 나온다.

사실 ‘형님예산’만 없애고 4대강 사업만 안 하면 교육이나 복지에 쓸 돈은 상당히 만들 수 있다. 각종 전시성 사업 예산과 홍보비만 줄여도 서울시 무상급식 예산은 충분히 만들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진실은 외면당한다.

이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주체는 시민들이다. 시민들에게 제안한다.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 중 단 1%만 투자해서 ‘내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관심을 가져보자. 인터넷을 통해서든 동네 모임을 통해서든 건강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내자. 내가 직접 혜택을 못 받아도 내 이웃, 내가 사는 동네의 아이들, 가난한 사람들이 혜택을 받으면 우리 사회는 그만큼 더 좋아질 수 있다. 이제는 양심불량 예산이 아닌 희망예산을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