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선거개입 진정 “나는 모르는 일”일까?

opengirok 2011. 4. 27. 10:26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하승수 소장


우리나라는 선거관리위원회를 헌법기관으로 하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를 헌법기관으로 규정하지 않은 나라가 많지만, 우리나라가 헌법기관으로 한 것은 부정선거, 관권선거가 판을 쳤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명선거 운동을 다시해야 하나

그리고 우리나라는 정치인인 대통령에게도 공직자라는 이유로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미국과 비교하면 좀 이상하게 비쳐질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과거의 일들을 생각하면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아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 활발해진 시민운동이 선거와 관련해서 처음 한 일도 부정선거를 감시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선거의 공정성을 지키는 것이 1차적인 과제였다. 다행히도 부정선거는 어느 정도 사라진 듯했고, 그래서 정보제공운동·낙선운동·지지운동·커피파티 등 다양한 유권자운동이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4·27 재·보선 운동을 보면, 아직 안심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경남 김해을에서는 이재오 특임장관실의 팀장이 선거에 개입하려 한 정황이 드러났다. 강원도에서는 엄기영 후보 측에서 조직적으로 불법 선거운동을 한 것이 드러났다. 펜션에 30명을 모아 놓고 불법 선거운동을 한 사례는 우리나라 선거역사상 없었다. 그런데도 당사자인 이재오 장관이나 엄기영 후보는 “나는 모르는 일이다”라고 발뺌하고 있다. 장관실의 팀장이 한 일을 장관이 모르고, 1억원가량의 돈을 들여 불법 선거운동을 한 것을 후보자가 모른다는 어처구니없는 변명을 믿어야 하나?

그러나 진실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이재오 특임장관실의 팀장은 출장이나 휴가도 내지 않고 김해에서 선거동향을 파악하고 있었다. 공무원이 평일에 상부의 지시나 묵인 없이 근무지를 벗어나서 선거 관련 활동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엄기영 후보 측의 불법 선거운동에 동원된 사람들은 일당 5만원씩을 받기로 했다고 이미 진술했다. 엄기영 후보의 핵심 측근에 대해 체포영장도 발부됐다. 게다가 엄기영 후보 쪽이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관련 단체를 사조직처럼 활용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4·27 재·보선은 내년 총선과 대선의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전초전에서 조직적인 불법과 관권개입이 자행되었는데,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상황이 이런데,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해야 할 선거관리위원회의 신뢰성은 땅에 떨어진 상태이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스스로 중립성을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선거관리위원회가 부재자투표 참여를 홍보하는 야당의 광고를 막아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부재자 투표를 안내하는 것은 오직 선거관리위원회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데,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에 참여하자고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궤변을 펴는 선거관리위원회를 믿을 수가 없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작년 지방선거 때에 4대강 사업 반대와 친환경 무상급식 실시를 요구하는 시민단체 활동을 불법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렇게 유권자들의 참여에 대해서는 번번이 발목을 잡으면서, 정작 불법 선거운동은 막지 못하는 무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스스로 중립성 훼손하는 선관위

4·27 재·보선 결과는 오늘 밤 나올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결과와는 무관하게, 선거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 아마도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는 공정선거 감시운동이 필요할 듯하다. 선거관리위원회를 감시하는 시민운동도 필요하다. 수십년 전에 이미 끝났어야 하는 일이지만, 역사의 퇴보를 막고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만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수고스럽더라도 다시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