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사서 없는 도서관은 창고일 뿐이다

opengirok 2014. 7. 3. 11:53










 


양리리 이사

(신촌홍익문고지키기주민모임 대표)


며칠 전 공공도서관 특강에 감동한 주민이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집에 있는 책을 도서관에 기증하셨다. 읽지 않거나 혹은 이미 읽은 책들을 집에 두고 혼자 보느니, 여러 사람과 함께 보고 도서관에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하셨다. 이런 마음이 모여 6월19일 파주출판도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 열린 도서관을 표방하는 ‘지혜의 숲’이 개관하였다.


서가에는 개인과 출판사들이 기증한 헌책 50만권 중 우선 20만권 정도가 1구역은 개인기증자별로, 2·3구역은 출판사별로 책을 꽂아 놓았다. 책을 읽을 수는 있지만 대출은 안 된다. 게다가 ‘지혜의 숲’은 사서 대신 책과 독서를 권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권독사’를 통해 자원봉사제로 운영한다고 한다. 도서관의 4대 요소는 책, 사서, 시설, 이용자이다. 그러나 열린 도서관이라 표방한 ‘지혜의 숲’에는 사서가 없다.



▲ 사진출처 : 뉴시스


책을 많이 배열해 놓았다 해서 도서관이 될 수는 없다. 이용자가 원하는 책을 정확히 제공할 수 있는 ‘정보조직’(분류 목록 작업)이 되어 있어야 한다. 무슨 책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게 쌓여만 있다면 그것은 책더미 혹은 종이집합장과 마찬가지이다. 도서관 사서는 한정된 예산과 공간의 제약 때문에 수서(收書) 업무를 통해 매우 신중히 책을 선정한다. 이때 사서는 책이 담고 있는 지식과 정보가 이용자와 사회에 필요한 것이며, 나아가 인류문명과 역사에 도움이 되는 유용한 것인지 치밀한 고민을 한다. 보통 자신에게 맞는 책을 찾기가 쉽지 않기에 추천도서목록과 베스트셀러 중심의 편중된 독서를 하는 것이 우리 독서문화의 현실이다. 사서는 도서관법에 따라 자격증이 발급되는 전문직종이다. 그러나 출판도시문화재단 권독사의 자격요건은 경력·학력·나이·성별에 제한이 없으며, 책을 사랑하고 독서를 즐기는 분이라고 되어 있다. 역할은 ‘지혜의 숲’ 관리와 수장도서의 내용을 파악하여 방문객들에게 안내하고 독서를 권유하는 것이다.


‘지혜의 숲’에는 검색용 피시가 없다. ‘정보조직’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권독사가 좋은 책을 추천하더라도 그 책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정보화시대 가장 기본적인 검색조차 할 수 없고, 책과 시민을 연결시켜줄 사서도 없는 그곳을 우리는 도서관이라 부를 수 없다.


‘지혜의 숲’에 이미 7억원이라는 엄청난 액수의 국고가 지원되었고, 추가로 5억원이 더 지원될 예정이라고 한다. 예산 낭비이다. ‘지혜의 숲’이 진정 도서관이 되고자 한다면, 책을 기증이 아닌 구입을 통해서 구비하고 사서를 배치하여 운영해야 한다. 가뜩이나 어려운 도서관계에 ‘지혜의 숲’의 잘못된 행보가 기형적인 도서관을 만드는 시발점이 될까 우려된다.


도서관과 책을 아끼는 시민들은 지속적인 공공도서관의 개관과 예산 증액, 그리고 예산이 올바르게 집행되었는지 감시해야 한다. 사서가 모든 도서관에 배치되도록 요구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도서관은 아름답게 보이는 전시성 도서관이 아니라 도서관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충실한 도서관이다.


* 이 글은 한겨레 [왜냐면]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