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정진임 소장
캐나다의 비영리단체 오픈노스가 운영하는 ‘시민예산(Citizen Budget)’ (http://www.citizenbudget.com/)은 시민이 직접 참여해서 지자체의 예산을 시뮬레이션하고, 그 정보를 해당 지자체에 제공할수도 있는 웹사이트입니다.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행정서비스의 우선순위와 예산액을 시민이 직접 조정해보면서 예산을 만들어보는 것이죠. 예를 들면 우리 마을에 보도블록 공사를 몇 번이나 할 것인가, 몇 분의 독거노인에게 도시락배달을 보내드릴 것인가, 구의회 의정연수는 어디로 몇 명이나 갈건가 등 단위별로 배정된 예산을 시민이 확인하고 직접 예산을 가상으로 정해보는 것이죠. 이 사업도, 저 사업도 넣다보면 쓸 수 있는 예산은 당연히 모자라게 됩니다. 그러면 세입은 어디서 얼마나 확보할 것인지 까지도 시뮬레이션으로 가늠해보기도 합니다.
지자체는 예산 정보를 시민예산에 입력하고 시민들이 이 시뮬레이션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시민들이 원하는 예산 사용의 우선순위를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반대로 시민 역시 지자체가 제공하는 행정서비스의 이해도가 높아집니다. 시민들은 예산공청회에 참여해 자신의 의견을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표명할 수도 있습니다. 오픈노스가 이런 사이트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지자체가 예산 정보를 데이터로 공개했기 때문입니다.
데이터는 간단하게 말해 컴퓨터가 읽을 수 있는 형태, 쉽게 가공을 할 수 있는 형태의 정보를 말합니다. 뭐 크게 거창하지도 않습니다. 엑셀 형태의 정보면 충분하죠.
지자체가 예산을 엑셀파일로만 올려도 기술이 있는 시민은 ‘시민예산’처럼 예산을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는 사이트를 만들 수도 있고, 예산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인포그래픽으로 표현하도 쉬워집니다.
미국 정부는 ‘재정데이터시스템’(https://www.usaspending.gov/)을 통해 연방정부가 매년 무슨 일에 어떤 방식으로 재정지출을 하고 있는지 상세한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항공사인 보잉사가 미국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예산의 내용과 세부금액이 무엇인지 상세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보잉사에게 사업을 지원한 국방부의 예산이 얼마인지, 예산 중 보잉사에 얼마나 지원을 했는지, 이미 집행된 금액은 얼마고, 남은 금액은 얼마인지, 예산지원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지(계약, 보조금 등)도 볼 수 있습니다.
보잉사 아이디로 검색해 보잉사가 각각 어떤 정부부처에서 얼마의 예산 지원을 받았는지, 지원사업은 어떤 내용인지, 지원사업의 지출 현황과 내용은 무엇인지, 월별, 지역별로는 어떻게 분포하는지, 자회사로의 지원금액은 어느 규모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헥헥.. 나열한 것 보다 더 많은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은 이렇게 낱낱이 재정집행데이터가 공개되는 시스템 시행으로 1억5천7백 달러의 지출 낭비를 방지할 수 있었고, 잠재적으로는 5조 달러 이상을 절약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미국이 이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디지털 책무성과 투명성을 위한 법률」 제정 덕분입니다.
미국 정부는 법 제정 이후 연방 차원의 재정정보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이를 개방하는 시스템을 정비했습니다. 지금은 지방정부도 이 데이터 시스템에 편입될 수 있도록 정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엑셀파일로 정보공개를 하면 예산과 재정 좀 더 쉽게 볼 수 있어
제가 오늘 별로 재미있지도 않은 외국의 사례를 들어가며 데이터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대다수 공공기관의 예산서 때문입니다. 99% 이상의 공공기관은 많게는 수백 장에 달하는 예산서를 hwp파일로 만들어 이걸 꼼꼼하게 pdf로 변환해 홈페이지에 올려놓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변환한 예산서로는 ‘시민예산’처럼 시뮬레이션을 해보거나 ‘재정데이터시스템’처럼 누가 얼마나 많은 예산을 받아가는 지 한 번에 절대 확인할 수 없습니다. 엑셀파일로만 공개를 해줘도 손과 발을 쓰면 예산과 재정을 좀 더 쉽게 볼 수 있게 만들어라도 볼 텐데, 엑셀파일은 공식자료가 아니라 공개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오곤 합니다.
시민과 정부사이의 정보격차는 제대로 된 참여와 거버넌스 어렵게 해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강원도의 정선군청이 매년 예산을 엑셀파일로 공개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살펴보니 무척 자세하고 일목요연합니다. 컴퓨터가 아닌 사람 눈으로 봐도 pdf 예산안보다 훨씬 직관적입니다. 정선군이 공개한 예산데이터를 보고 얼마나 분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명쾌한 정보를 자기들만 보고 있었다니 우리한테는 보기 어려운 정보만 줬었다니’ 하고요.
최근 많은 지자체들이 시민참여나 협치라는 말을 참 많이 합니다. 하지만 시민과 정부사이의 정보격차가 있는 상태에서는 제대로 된 참여와 거버넌스가 되기 어렵습니다. 정부는 시민들이정보를 바탕으로 더 많이 참여하고 개입할 수 있도록 정보부터 개방해야 합니다. 디지털사회에 걸맞게 데이터로 개방해야 합니다.
혹시 ‘시민예산’같은 예산시뮬레이션 사이트가 부럽진 않으신가요? 새는 돈 금세 찾아낼 수 있는 ‘재정데이터시스템’은요? 그럼 우리 일단 예산서부터 엑셀로 올리라는 요구를 해보는 거 어떨까요? ‘시민예산’을 만든 오픈노스도 시가 생산하는 모든 문서를 가공 가능한 형태로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운동부터 시작했다고 하니, 요구하다보면 우리도 조만간 저런 사이트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요?
* 이 글은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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