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동 칼럼

국회법 제54조의2, 위헌 선고의 의미는?

opengirok 2022. 3. 10. 10:45

 

헌재, “회의 비공개는 의사공개 원칙 위배로 위헌” 선언

 

“국회의 회의는 공개한다. 다만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거나 의장이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50조 제1항의 내용입니다. 시민들에 의해 선출된 대표인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시민들이 직접 확인하고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의 조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의사공개의 원칙이라고도 하는데요, 이에 따라 국회에서 열리는 각종 회의들은 그 회의록을 공개하고 있으며 인터넷 영상 생중계도 직접 방청도 가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이러한 의사공개의 원칙에서 단 하나의 예외가 되었던 것이 있습니다. 바로 국회 정보위원회 회의입니다. 국회 정보위원회는 국가정보업무 전반에 대해 국회가 통제할 수 있도록 설치된 상임위원회입니다. 국가정보원을 비롯해서 국방정보본부, 사이버작전사령부, 군사안보지원사령부 등 정보 및 보안 업무에 관련된 기관들이 정보위원회의 소관기관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1994년, 정보위원회를 설치할 당시 국가기밀에 관한 민감한 사항을 다룬다는 이유로 “정보위원회의 회의는 공개하지 아니한다.”는 국회법의 특례 조항이 생겼습니다. 그 이후로 3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정보위원회 회의 내용은 철저히 비밀에 붙여졌습니다. 심지어 국회의원조차도, 국회의장의 허가를 얻어야만 회의록을 열람할 수 있습니다. 같은 국회의원도 접근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비밀의 숲’인 셈이죠.

 

 

국회 비공개 회의록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정보위원회 (이미지 : 세계일보)

 

 

정보위원회가 정보기관을 담당하는 상임위원회이기 때문에 회의를 비공개한다는 논리는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자세히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개를 원칙으로 하되 필요한 경우 비공개로 회의를 진행하는 것과 애초에 회의를 비공개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국회법에서는 정보위원회 회의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못박아두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과 여론 조작, 불법사찰 등 헌정질서를 어지럽히는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도 시민들은 국회 정보위원회가 국정원을 제대로 통제하고 감시해 왔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국회는 국정감사라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회의 비공개 조항으로 인해 국정원에 대한 국정감사는 역시나 비공개로 진행되고, 그 장소 역시 국정원 내부로 한정되며, 국회 보좌진의 출입도 제한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국정원이 제출하는 자료 말고는 교차 검증할 만한 다른 자료가 없기 때문에, 감사의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피감기관에 의존하게 되는 셈입니다. 보좌진의 도움 없이 짧은 시간 내에 자료들을 살펴봐야 하니 제대로 감사를 진행하기도 어렵고 다른 상임위처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도 받을 수 없으니 국감을 열심히 치러야할 동기도 부족합니다.

 

이렇게 정보위원회 운영이 폐쇄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그동안 법으로 정하게 되어 있는 상임위 규정도 만들지 않고 관행에 따라 위원장과 간사의 합의로 운영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링크]  국정원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불가능한 구조였던 셈입니다.

 

지난 2월 23일 열린 국정원감시네트워크의 국정원 개혁 정책 요구안 기자회견

 

지난 1월 27일,  헌법재판소는 “정보위원회의 회의는 공개하지 아니한다.”는 국회법 제54조2 제1항이 ‘의사공개의 원칙’을 위배해 위헌임을 선고하였습니다. 1994년 이래 30년 가까이 짙은 안개 속에 잠겨 있던 ‘비밀의 숲’에 드디어 안개를 걷어낼 변화의 계기가 열린 것입니다.

 

특례 조항이 위헌으로 무효화 되었지만, 국회 정보위원회 회의는 대부분 앞으로도 실질적으로는 비공개 회의가 될 것입니다. 시작은 공개로 하되, 곧바로 위원들의 의결로 비공개 회의로 전환하여 진행할 가능성이 높겠죠.

 

하지만 ‘공개가 원칙’임을 헌법재판소가 인정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언제든 회의가 공개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국정원이 국회의원들의 눈치를 봐야 하고, 국회의원들은 국정원을 견제할 무기를 얻은 셈이니까요.

 

견제 받지 않고, 감시 받지 않는 권력기구는 반드시 타락하게 됩니다. 우리는 과거 국정원의 여론조작 및 선거 개입, 민간인 불법사찰 등을 통해 이를 확인한 바 있습니다. 이제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하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국정원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이라는 새로운 원훈에 걸맞게 국민들을 위해 알려야 할 것은 알리고 정당한 절차에 따라 감시 받고 견제 받는 기구로 거듭나야 합니다. 정보위 회의공개가 그러한 변화의 출발점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