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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정보공개 ‘도끼눈’ 뜨고 “어디 쓸 거냐” 캐물어

opengirok 2010. 2. 4. 11:43

법 도입 12년째, 시민 만족 절반 겨우 넘어
요리조리 빼다 누리집 주소만 달랑 주기도



1998년 1월부터 시행된 정보공개법이 도입 12년째를 맞았다. 정보공개법은 국민이 공공기관에서 생산한 정보를 자유롭게 청구해 얻을 수 있도록 하려고 도입했다. 그동안 국민의 정보공개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정보공개청구 건수는 크게 늘었다. 시행 첫해 2만 6000여 건에 불과했던 청구 건수는 2008년 29만 1000여 건에 이르렀다. 정보공개청구제도는 이제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공공기관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정보공개청구제도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불만은 여전히 높다. 2008년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정보공개 이용자 만족도’는 2007년 63.9점에서 2008년 57.9점으로 오히려 낮아졌다. 또 행안부가 펴낸 ‘2008 정보공개 연차보고서’를 보면, 정보 비공개 결정에 불복하는 ‘불복신청 건수’도 1998년 100건에서 2008년 3,504건으로 크게 늘었다.


행정안전부는 2006년 정보공개청구 온라인
서비스인 통합정보공개시스템(open.go.kr)을 열면서 보다 간편하게 정보 공개를 청구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그런데도 왜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불만은 갈수록 높아지는 것일까?


관련영상보기: http://www.hanitv.com/regate.php?movie_idx=900

▶따져야만 주는 공공기관 정보

임다은(18·서울 혜화여고 2학년)양은 얼마 전 노동부에 ‘출산휴가와 함께 생리 휴가 위반 사업장 현황’을 알아보려고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기업의 사무직으로 일하는 이모가 아이를 낳고 2주 만에 다시 회사에 출근하는 모습을 본 뒤 우리나라 기업들이 노동법을 잘 지키고 있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양이 정보를 받아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임양은 “(담당 공무원이) 고등학생이 왜 그런 걸 알려고 하는지 물으면서 자료를 안 주려고 했다”며 “담당자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은 뒤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시민들 중 상당수는 임양의 경우처럼 공무원들의 불친절한 태도를 지적한다. 순순히 정보를 얻는 일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정보 공개 청구인은 “공무원들이 ‘그런 자료는 어디다 쓰려는 것이냐’고 꼭 묻는다”고 말한다. 정보공개청구를 전문으로 하는 시민단체들의 불만도 마찬가지다. 강언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간사는 “공무원들의 청구인 응대 태도가 불쾌할 때가 잦다”며 “심지어 한 공무원은 밤 9시에도 전화를 걸어 ‘정보 공개 청구 이유’를 물었다”고 말했다.

 

2004년 정보공개법 개정 이전에는 청구인이 정보를 얻으려면 ‘정보공개청구 취지’를 공무원에게 밝혀야 했지만 현재는 관련 법 조항이 사라져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공무원들의 태도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보 안주거나, 거짓 정보 주거나

 

따져서 받으면 다행이지만 공무원이 ‘정보가 왜 필요한지’ 묻기만 하고 정작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강 간사는 지난해 12월 경기도청에 경기도 내 기업형 슈퍼마켓(SSM) 현황을 공개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은 “왜 그런 걸 알려고 하느냐”고 한참을 물은 뒤 정작 기업형 슈퍼마켓의 누리집 주소만 덜렁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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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경기경찰청은 최루액 사용 기록이 없다고 정보공개센터에 통지했으나 실제로는 사용 기록을 갖고 있었다. 사진 제공.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정보를 거짓으로 공개하는 것도 더 큰 문제다. 정보공개센터는 지난해 8월 각 지방 경찰청에 1999년 1월1일부터 2009년 8월4일까지의 ‘최루액 사용현황’을 정보공개청구했는데 서울경찰청을 제외한 지방 경찰청은 “최루액 사용 기록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은 허위 정보공개로 드러났다. 경기경찰청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최규식 의원에게 2009년에만 14차례에 걸쳐 2136.9리터의 최루액을 사용했다고 보고했다. 같은 정보에 대해 경찰은 국회의원에게는 정보를 주고, 시민에게는 ‘자료가 없다’고 둘러댄 셈이다. 하지만, 정보공개법에 거짓 정보 공개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어 공무원에게 책임을 묻기는 사실상 어렵다. 이에 대해 행안부는 “국가공무원법 78조 ‘직무상의 의무를 위반하거나 직무를 태만히 한 때 징계할 수 있다’는 조항으로 충분히 거짓정보 공개에 대한 징계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참여정부 때 기자들에게 독려하던 정보공개청구, 현재는?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는 기자들에게 정보공개청구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주문했다. 기자실을 폐지하면서 대신 브리핑제도를 내실화하고 정보공개청구를 활성화해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취지였다. 그 뒤 기자들은 정보공개청구제도를 얼마나 취재에 활용하고 있을까?

 
문화방송 박대용 기자는 정보공개청구제도를 취재에 잘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박 기자는 생각이 날 때마다 매주 한 건씩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박 기자는 정보공개청구를 취재에 제대로 활용하려면 넘어야 할 벽이 많다고 말한다.

 
박 기자는 최근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의 운영비용 명세를 정보공개청구했으나 거절당했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위원회’(공동위원장 김진선·조양호)는 “(유치위원회는)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 정한 공공기관 대상이 아니다”고 발뺌했다. 박 기자는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모든 비영리법인을 정보공개법상 정보공개 대상 공공기관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율은 해마다 90%를 넘어 매우 높은 수치를 보인다. 하지만, 민감한 내용의 정보를 청구할수록 공개는 쉽지 않다. 전진한 정보공개센터 사무국장은 “일반 민원성 정보공개청구는 잘 받아들여지지만, 기업과 행정을 감시하는 내용의 정보공개청구는 안 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정보공개청구제도가 취재에 활용되기에는 여전히 개선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정보공개청구 실제 해봤더니

정보공개청구 과정에서 청구인들이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 알아보려고 실제로 몇 건의 정보공개청구를 해보았다. 취재진은 지난 1월12일 보건복지가족부에 2008년 1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국민건강보험법을 위반한 병원 사업장을 알아봐 달라고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또 전국 10여 개 지자체에 ‘공인중개사의 업무 및 부동산 거래신고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공인중개 사업장에 대해 정보공개를 동시에 청구했다. 모두 국민의 알권리와 기업의 정보보호 사이에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민감한 정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청구과정은 의외로 간단했다. 해당 기관을 방문할 필요 없이 행정안전부가 마련한 정보공개청구 온라인시스템(www.open.go.kr)을 이용하니 매우 간편하게 청구할 수 있었다. 10여 건의 정보공개청구를 마치는 데까지 채 1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만, 정보공개를 청구할 때 정확한 법률명을 기록하려고 법제처 사이트를 뒤적여야 하는 수고로움만 있었을 뿐이었다.

 

» 공공기관에 정보공개청구를 하면 “왜 정보가 필요한 지” 묻는 전화를 받게 된다. 그러나 꼭 대답할 필요는 없다.


▶청구 다음날부터 지자체들 전화 쏟아져 ‘꼬치꼬치’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보건복지부는 당일 바로 정보공개를 거절했다. 보건복지부는 “행정처분을 받은 병원 이름은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4호’의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정보공개법 9조 1항 4호- 진행중인 재판에 관련된 정보와 범죄의 예방, 수사, 공소의 제기 및 유지, 형의 집행, 교정, 보안처분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그 직무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하거나 형사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는 비공개할 수 있다.)

 
‘공인중개사법을 위반한 사업장과 관련한 정보공개청구건’에 대해서는 다음날부터 각 지자체의 문의 전화가 쏟아졌다. 전화를 걸어온 담당 공무원들은 대부분 “자료를 어디에 쓸 것인 지”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었지만 뭔가 대답을 잘못하면 정보공개를 거절할 것 같아 매우 난감했다.

 
▶“어느 구청에 정보를 청구했는지 다 알고 있다”

또, 정보공개 청구에 대한 공개 결정은 지자체 별로 제각각이었다. 10여 곳의 지자체 중 충남 연기군과 과천시는 정보를 공개했지만, 나머지 지자체는 거절했다. 이 중 충남 공주시는 처음에는 정보공개 일체를 거절하다가 기자가 한참 설득한 뒤에야 취지를 이해하고 ‘위반 사업장의 수와 위반 내용’을 일부만 공개했다. ‘끈질기게 따져야만 준다’는 청구인들의 불만은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이렇게 지자체 별로 정보공개청구결과가 다른 것은 각 지자체 별로 정보공개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취재중, 서울시의 한 구청은 뜻밖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서울 ‘ㄱ’구청의 한 관계자는 “기자의 정보공개청구 건에 대해 따로 구청끼리 논의해 일괄적으로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각 구청별로 다른 결과를 내놓아서는 안 되기 때문에 취한 조처라며, (기자가) 어느 구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는지 다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정보공개청구를 해보니, 청구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했지만 국민 생활에 필요한 민감한 정보는 얻기 어렵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청구인들의 불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비공개 결정에 이의제기를 하거나 행정소송을 거쳐 승소하면 정보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 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또 꼭 필요한 그 순간에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 정보공개청구건수는 크게 늘어 1998년 2만 6천여건에서 2008년 29만여건을 기록했다.

 
▶청구인들 불만 늘지만 정부 노력은 뒷걸음

청구인들의 불만이 쏟아지는 지금의 정보공개청구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은 없을까. 정부는 제도 개선에 사실상 별 의지가 없다. 되레 이명박 정부 들어 제도 개선을 위한 논의와 노력은 뒷걸음질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행정자치부(지금의 행정안전부)가 ‘정보공개법 개정 태스크포스(TF)팀’까지 꾸려 진행한 정보공개법 개정 논의는 이명박 정부 들어 아예 사라졌다. 당시 태스크포스팀은 ‘정보를 위조 또는 변조하거나 허위로 공개 또는 비공개’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내용을 담은 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 법 개정안은 각 부처의 반발로 이후 입법 발의되지 못했다. 행안부 지식제도과 관계자는 “정보공개와 관련한 전반적 논의는 계속하고 있지만 법 개정 논의는 더 이상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참여정부에서 대통령 직속이던 정보공개위원회(각종 정보공개제도와 관련한 심의 및 논의 기구)는 이명박 정부에서 행정안전부 소속으로 지위가 격하되었다. 또 국무총리실에서 주관하는 부처 평가 항목에서도 2008년부터 정보공개 부분은 빠지고 ‘부처 자율 평가’로 바뀌었다. 각 부처가 입맛대로 정보를 공개하도록 길을 터줬다.

 
경건 교수(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정부의 이런 태도는 공무원들의 정보공개에 대한 의식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가 공무원들의 정보공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도록 나서고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해야 정보공개청구제도가 잘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공개법 도입 12년째. 시민들은 알권리와 행정감시 차원에서 정보공개 청구에 대한 요구가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정보 민주화는 쉽게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글·영상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