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한참 엇나가고 있는 총리실의 규제개혁

opengirok 2010. 2. 5. 11:48
 

조영삼 한신대 초빙교수(기록학)

그동안 국무총리실은 행정 내부 규제를 없애기 위해 논의를 수차례 진행해왔다고 한다. 여기에는 기록관리 분야도 포함된다고 하는데 그 내용이 국가기록관리 체계의 근간을 훼손하는 것이어서 매우 우려된다
. 그것은 5년 이하의 보존기간인 기록을 외부 전문가의 심의없이 폐기할 수 있도록 하고, 해당 기관의 기록관으로 이관된 기록 중 비공개 대상 기록의 공개 여부 검토 조항을 삭제하자는 것이다. 또 각급 기관에 배치될 ‘기록관리 전문요원(아키비스트·Archivist)’의 자격을 석사학위에서 학사학위 소지자로 낮추는 것도 포함돼 있다.


기록 폐기를 신중히 하자는 것이 규제라는 발상은 터무니없다. 기록의 폐기는 언제나 신중해야 하고 공개 활성화를 위한 재검토 절차가 결코 규제가 될 수 없다. 업무가 과중하다고해서 국가재산의 처분을 신중하게 하지 않거나, 국민의 알권리를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필자는 최근 지방의 어느 기록관을 방문해 그곳 전문요원에게 기록관리 실태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보존기간이 5년으로 책정되어 해당 부서에서 폐기의견을 낸 기록을 검토해보니 역사적 가치가 높아 장기적 보존이 필요한 대통령의 방문 기록이었다고 한다. 업무담당자가 더 이상 보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을 기록관리 전문요원은 역사적 안목으로 보존을 결정한 것이다.

이 정도는 학부 졸업만으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절대 그렇지 않다. 기록관리는 문서수발 같은 단순한 업무가 아니다. 문서 하나가 아닌 업무행위의 맥락과 연원을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기록을 잘 관리하여 국민에게 온전히 돌려주기 위하여 노력하는 전문가이다.

기록관리를 잘하는 선진국에서는 석사학위 이상의 전문가를 요구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런 인식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기록관리는 행정의 한 부분으로 학부 수준의 전문성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긴다. 또 유사한 학예연구직과 편사연구직도 석사의 자격을 정해 놓지 않았다고 하여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학예연구직과 편사연구직에 학부 졸업생을 임용한 경우는 거의 없다. 이들 연구직은 수십년 동안 석사학위 이상의 전문성이 아니면 해당 연구와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지만 기록관리는 그렇지 않다. 공공기록의 현장에서는 여전히 기록관리 전문가가 필요없다고 여긴다. 이렇듯 낮은 인식 때문에 굳이 법령에 석사학위 소지자로 정해 놓은 것이다.

한편 현재의 기록관리 규제 개선 논의는 절차상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기록관리 정책은 국가기록관리위원회에서 심의하도록 한 법률 규정을 무시했고, 규제 개선 과제의 선정도 총리실의 주장을 대변할 수 있는 기관들만 불러 모았다. 애초에 반대 의견을 들을 생각도 없었던 것이다.

국무총리실은 이제라도 전문가에 의한 과학적이고 합리적 기록관리를 통한 투명행정, 책임행정, 국민의 알권리 보장이 규제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리하여 “기록물을 안전하게 보존하고 창조적으로 활용하여 글로벌화시키겠다”고 약속한 ‘기록관리 선진화 전략’을 꼭 지켜 7개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한 ‘국격’에 걸맞은 수준의 기록관리가 되도록 매진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