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인권을 후퇴시키는 법무부

opengirok 2010. 3. 19. 16:04

장유식 변호사 (정보공개센터 이사)

7년 전 이맘때 사회보호법 폐지 공대위를 구성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전에도 사회보호법(보호감호)에 대한 문제제기는 늘 있었지만, 그때만큼은 26개 인권·시민단체가 똘똘 뭉쳐 “보호감호제를 꼭 없앤다”는 각오로 힘을 합쳤다. 수많은 토론회와 성명서, 농성, 집회가 이어졌고, 수차례의 청송 방문과 피감호자 면담, 피감호자들의 집단 단식농성, 자살… 그리고 마침내 보호감호의 이중처벌성과 반인권성이 다수 국민에게 인식되고 여야 합의를 거쳐 2005년 8월 보호감호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런데 며칠 전 마치 유령이 부활하듯 법무부발 ‘보호감호제 재도입’ 소식이 들려왔다. 김길태를 비롯한 반인륜 강력범죄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와중이다. 물론 보호감호라는 제도가 절대악은 아니다. 독일 등 인권 선진국에서도 성폭력 범죄자를 중심으로 치료를 주목적으로 한 보안처분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법무부가) 청송에서 실시했던 보호감호와 독일의 보안처분은 차원이 전혀 다르다. 청송에서 실시했던 보호감호는 이중처벌임은 물론이고, 피감호자들의 사회복귀를 방해하고 그들의 가정을 파괴했으며, 사회방위는커녕 오히려 사회를 불안하게 했던 ‘괴물’이었다. 그 괴물이 사라진 지 5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사이 우리의 교정정책이나 범죄자의 사회복귀 시스템에 진전이 있었는가.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부활시키고자 하는 보호감호는 여전히 괴물이 될 수밖에 없다.

위헌 논란을 피하기 위해 대신 누범·상습범 가중처벌 규정을 없앤다고도 한다. 현실성 없는 이야기다. 누범과 상습범에 대한 가중처벌은 1953년 제정 형법 때부터 이어온 우리나라 형사법의 골격이다. 제대로 된 공청회나 보고서 한 장 없이 수십년 계속된 제도를 덜컥 없애겠다고 언급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다. ‘여론 떠보기’ 식으로 그냥 해본 소리라면 일국의 법무부 장관의 처신과는 거리가 멀다. 일각에서는 누범·상습범 가중처벌을 없애고 보호감호제를 부활시키면 법원의 권한은 약화되고 검찰(법무부)의 권한이 강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사실 그렇게까지 치밀하게 계산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지만, ‘인권’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다.

졸속처방이라는 지적 때문인지 법무부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도시 주변에 ‘보호감호소’를 만들겠다고 발표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에 따르더라도 적용 범위는 여전히 넓고 애매하며, 도시 주변에 보호감호소를 만들거나 개방형 처우를 확대하는 문제는 수년 전에도 대안으로 제시된 바 있으나, 실현 가능성이 없어 외면당한 방안이었다.

법무부 장관 덕분(?)에 잊고 지냈던 보호감호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보호감호제가 사라진 것은 한국의 인권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의미있는 전진이었다. 아직 존재하지만 사실상 10여년간 집행되지 않은 사형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앞으로 가야 한다. 가둔다고, 죽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건 뒤로 가려는 것이다. 김길태만 보더라도, 어릴 적 소년원을 시작으로 인생의 절반가량을 갇혀 있었지만, 오히려 그 시기를 거치며 끔찍한 흉악범으로 성장했다. 현 정부 등장 이후 ‘역주행’이 항상 문제가 되고 있다. 왜 뒤로만 가려고 하는가. 민주주의와 인권은 집권세력의 입맛대로 할 수 있는 장난감이 아니다. 이제라도 법무부는 죽은 제도를 붙들고 여론을 호도하는 것을 중단하고, 실효성 있는 범죄예방 대책, 전면적인 교정행정 쇄신방안 등을 내놓는 편이 좋을 것이다.


장유식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