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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사회]중국 정보공개 불응하면 책임추궁

opengirok 2010. 12. 27. 10:21


ㆍ시행 2년 정부의지 결연… 사회주의국가 새 바람

얼마 전 중국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린 사람에게 1년간 강제노역 처분이 내려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런 나라에서 ‘국민의 알 권리’를 운운할 수 있을까.

중국 베이징시 정보공개청구 접수처



믿어지지 않지만 그렇다. 최소한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08년부터 ‘국민의 알 권리’를 구체적으로 보장하는 정보공개청구제도(정보공개법)를 도입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 거의 모든 공공기관의 재정, 예산, 결산 등 통계자료와 행정사업, 공공위생과 식의약품 안전 등에 관한 긴급사항, 토지 개발, 환경 규제 등의 정보가 공개 대상이다. 개인과 기관이 관련 정보를 청구하면 행정기관은 15일 이내에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렇듯이 정보공개청구는 법만 만들었다고 해서 순조롭게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몇십 년 동안 관행처럼 굳어진 공직사회의 비밀주의가 법안 몇 줄로는 깨지지 않는다. 정보공개청구제도에는 시민이 공직 사회를 감시한다는 뜻이 담겨 있고, 공개되는 정보가 공공기관의 어두운 면을 폭로하는 내용일 수도 있는 것이다.

정보공개법 도입 2년을 맞은 중국 정부가 이 제도를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아시아재단과 베이징대학교 ‘공공참여 연구와 지지센터’(이하 공공참여센터)의 초청으로 11월 22일부터 25일까지 베이징을 방문하게 됐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한국의 공공기관을 상대로 어떤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있는지, 그 청구가 사회적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지, 시민사회는 이를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를 소개해달라는 것이었다.

3박 4일 동안 베이징대학교 법학대학 특강,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있는 환경단체 방문, 베이징시 정보공개 담당자 면담, 중국 신문 기자회견 등이 있었다. 그 하나하나가 매우 흥미로웠다. 그동안 정보공개청구는 중국을 어떻게 변화시켰으며, 그들이 고민하는 지점은 무엇일까.

공공기관 입찰내역 정보공개 운동
공공참여센터 대표를 맡고 있는 왕씨신 베이징대 법학과 교수는 중국에서 정보공개청구 운동을 벌이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는 2008년 정보공개법이 시행되었을 때 수도공항 도로 이용료 현황을 청구해서 공개했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중국에서 이런 정보가 공개되는 것 자체가 큰 이슈가 되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800여개 공공기관의 입찰 내역을 정보공개청구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전국 31개 부처의 투명도 조사도 하고 있다. 정부 조례안을 얼마나 잘 시행하고 있는지 항목별로 점수를 만들어서 발표하는 방식이다. 이 연차보고서가 발표될 때마다 중국 전역에 있는 100여개 언론사가 이를 비중 있게 보도한다.

환경단체의 정보공개청구도 활발하다. 중국 정법대학교 산하에 있는 ‘환경오염피해자 법률지원센터’는 환경과 관련되어 활발한 정보공개청구와 감시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공공기관들이 17개 환경정보를 제대로 공개하고 있는지 평가하기도 하고, 환경오염도를 나타내는 여러 가지 환경수치들을 정보공개청구하기도 한다.

이러한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해당 기관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 궁금증은 베이징시 정보공개 담당자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풀렸다. 베이징시는 중국 전체에서 정보공개평가 1위를 했던 기관이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담당자는 정보공개청구가 중국 공직사회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지 설명해주었다.

“정보공개법은 영향력과 의미가 매우 큽니다. 행정부 전체를 바꿔야 하는 제도입니다. 예를 들어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정부가 생산한 기록을 정리하면서 공개 및 비공개 분류작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이 자체가 엄청난 변화입니다.”

베이징시 기록전문요원만 599명

정보공개청구를 접수받으려면 모든 기록에 대해서 공개 및 비공개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 행정 편의를 위한 기록관리에서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기록관리로의 변화는 행정의 근본을 뒤흔드는 것이다. 베이징시는 이런 변화를 위해서 많은 인력을 배치했다.

<-베이징시 정보공개 담당자.


“베이징시에는 18구, 46개 부처, 14개 산하 조직이 있는데 모두 다 정보공개기구를 두었습니다. 여기에서 3463명이 정보 관련 일을 하고 있고, 그 가운데 기록전문요원이 599명입니다.”

담당자의 설명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록을 관리하는 전문요원이 599명이라니? 참고로 서울시에는 기록전문요원이 2명 배치되어 있다. 서울시 25개 구의 기록전문요원까지 합하면 27명이다. 담당자는 베이징시의 정보공개에 대한 자부심을 계속 드러내면서 원대한 계획까지 밝혔다.

“베이징 정보공개시스템 및 업무 방법은 전국적으로 봐도 혁신적입니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기록을 공개하는 것은 아주 뛰어납니다. 특히 감찰원과 연계해서 정보공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무원이 정보공개청구에 의도적으로 응하지 않았을 때 적용할 수 있는 공무원 책임추궁제도를 만들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15개 항목을 만들어 책임 추궁을 할 것입니다.”

매우 의미 있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공무원이 자의적 비공개를 하더라도 처벌하거나 책임 추궁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백원우 의원 및 시민사회단체가 정보공개 방해에 대해 처벌할 수 있도록 입법발의를 할 예정이다. 이런 측면에서 베이징시의 정보공개시스템은 우리나라를 빠르게 추월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담당자는 마지막으로 얘기했다.

“이 제도를 처음 도입했을 때 공무원들은 공포감을 느꼈습니다. 저희들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 업무에 대한 홍보 및 교육을 통해 공무원들의 불안감을 없애려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원자바오 총리가 이 법을 언급하면서 ‘정부 부처에 햇볕을 비추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중국 정부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정보공개제도가 도입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중국의 의지는 결연해 보였다. 이렇듯 중국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정보공개제도를 도입한다는 것도 놀랍지만 실제로 정보공개청구가 일어나고 있고, 그것을 통해 NGO가 정부를 감시하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정보공개제도가 중국 정부도 변화시키고 있지만 인민들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갈등은 남아 있다. 예산의 구체적 범위(가령 업무추진비)나 고위관료들의 정보는 여전히 공개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 공개되고 있다. 공무원들의 정보공개에 대한 거부감도 아직은 커 보였다. 한 지역에서는 정보공개청구를 한 시민을 경찰이 연행한 사건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정보공개법이 도입된 지 1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같은 문제들이 반복되고 있다. 중국은 과연 표현의 자유 제한조치와 정보공개청구 확대를 병행할 수 있을까. 중국에서 정보공개제도가 연착륙할 수 있을 지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전진한<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