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인권 무개념, 국가인권위원회

opengirok 2011. 9. 21. 19:24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강성국 간사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85호 크레인 위에서 농성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에게 한진중공업은 음식과 물, 의류, 휴대전화 배터리 등을 공급하기로 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지난 19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의권보호에 대해 어떠한 의견표명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의견표명에 대한 안건이 통과되려면 전원위원회 과반수인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장주영·양현아 2명의 위원이 찬성하고 김영혜, 홍진표, 김태훈, 윤남근 위원이 반대하며 부결되었다고 한다. 8년 전, 역시 정리해고 방침에 반대하며 85호 크레인 위에서 눈물을 머금고 목을 매 투신한 김주익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이 하늘에서 경경열열 할 일이다.



이러한 결정 자체도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분통이 터지지만 회의 중 나온 인권위원의 발언은 더욱 그렇다. 특히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인권위원회 인권위원인 윤남근 고려대 교수는 “김씨(김진숙 지도위원)는 시설을 점거해 회사를 방해하고 있는 위법 상태의 농성자다. 그런 지위에서 물과 배터리 등을 요구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발언했다고 한다. 인권위 전원위원회에서 나온 말인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경악스럽다. 이처럼 인권에 대해 몰지각한 자가 법을 가르치고 있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위원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통탄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나아가 이런 인식이 현재의 국가인권위원회의 일반적인 인식일까 심히 우려스럽다.

윤남근 위원의 발언에 따르면 “회사를 방해하고 있는 위법 상태의 농성자”는 인권적 차원의 요구를 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사고를 가지고 있다. 즉 준법이 절대적으로 인권보다 상위의  가치라는 논리다. 이런 생각이 검찰의 사고가 아니라 국가인권위 인권위원의 사고라는 것에 소름이 끼친다. 인권은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할 수 있는 온갖 권리들을 묶고 있는 하나의 개념이다. 현재까지 인권의 지위는 법과 같은 국가와 사회구성의 일반적인 실체(substance)가 아니다. 다만 오늘 날의 법이 인권의 발상들을 사회발전 속에서 선별적으로 수용할 뿐이다.

또한 당연히 그와 같은 이유로 법은 언제나 인권을 완벽하게 구현하지 못했다. 아울러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본주의 하에서 특수한 법의 발달 경향이 일부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를테면 재산권과 상법의 팽창과 이에 대해 노동법이 종속화 되는 것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법의 일방적인 팽창 경향에 의해 법차원에서 인권의 개념의 수용과 실천은 묵살되는 경우가 많다.  

위에서 설명한 경향의 대표적인 현상이 정리해고라고 할 수 있다. 정리해고의 비인권적 측면은 당장 한진중공업 사태 이전인 2년 전 쌍용자동차 사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가 있다. 현재까지 쌍용자동차 퇴직자 중 총 14명이 사망했고 그 중 7명이 자살했다. 또한 평택자치시민연대와 평택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파업 뒤 쌍용자동차 무급휴직자 중 52.5%가 자살충동에 시달린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기업의 일방적인 정리해고는 자신들이 고용했던 노동자에 대한 일종의 테러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다. 더구나 어떠한 사회적 안전망도 강구하지 않고 노동자들을 진압한 공권력과 정부역시 이 테러의 공범이었다. 이런 일들은 인권이 침해된 개별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인 인권의 붕괴에 가깝다.


 



이런 연속된 정리해고 상황들 속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은 단지 한진중공업 뿐 만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이 벼랑 끝에 몰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85호 크레인 위에 올랐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뿐만 아니라 앞으로 언제든 정리해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모든 노동자들을 대신해 크레인 위에 오른 것이다. 그녀가 크레인에 오른지 오늘로 259일째다. 그녀는 전화 연결 등이나 메시지를 통해 발언의 기회가 있을 때 정리해고가 철회되거나 자신이 크레인 위에서 투신하거나 두 가지 밖에 없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형식적으로만 정리하면 윤남근 교수의 말이 맞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자기목숨을 담보로 한진중공업 재산의 일부를 위법적으로 점거하고 농성중이다. 그리고 한진중공업은 김진숙 지도위원의 최소한의 인권보전을 위해 ‘약속한’ 음식, 물, 의류, 통신유지수단을 임의로 중지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상황에서 ‘농성이 위법’이고, 한진중공업의 약속 불이행이 ‘일시적’이고 ‘사실관계를 정확히 확보한다’는 핑계들로 김진숙 지도위원과 크레인 중간의 4명의 농성자의 인권에 대해 아무런 의견도 내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과 그 생명은 존중되고 보전되어야 한다는 게 모든 인권의 근본 바탕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김진숙 지도위원의 최소한의 인권은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이 현재의 법이거나, 그 법에 의해 움직이는 공권력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