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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보상금으로 살펴본 억울한 간첩.

opengirok 2009. 6. 22. 16:48

형사보상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형사소송법에 의한 일반절차 또는 재심이나 비상상고절차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자가 미결구금을 당하였을때에는 이 법에 의하여 국가에 대하여 그 구금에 관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형사보상법 1조)


간단히 말하면 기소되었다가 무죄로 풀려나거나 하면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 돈이 바로 형사보상금인거죠.

형사보상금의 최대한도는 1일에 15만800원이며, 정해진 기준이 따로 있지는 않고, 다만 2~3년에 한번씩 구금된 하루당 1만원씩 오르는 추세라고 합니다.


2006년~2008년까지 각 지검별로 형사보상금이 얼마나 집행되었는지 정보공개청구를 해 보았습니다.


<2008년 지검별 형사보상금 현황>
                                                                                                                 (단위 : 건/원)

18개 지검이 지출한 형사보상금액은 2006년에 16억원, 2007년에 15억 이었다가 2008년 들어서는 51억여원으로 급증했습니다. 하지만 형사보상 건수는 각각 196건, 202건, 217건으로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난해 형사보삼금이 이렇게 많았던 이유는 무엇때문일까요?

첫번째로 지난해는 다른해에 비해 재심사건 무죄판결이 많았습니다. 유명한 사건만 해도 <태영호 납북사건>으로 선원 8명과 유족들에 대해 1000만원~5억 6천만원의 형사보상금이 지급되었습니다.  또한 간첩누명을 받았다가 무죄선고를 받은 강희철씨는 6억6천만원의  형사보상을 받았으며,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 역시 유족 8명이 각각 6287만원을 형사보상청구로 받았습니다.

이밖에도 계류중인 재심사건만해도 전국적으로 50건이 넘으며, 개수가 많아서 언론에 소개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하네요.

두번째로, 지난해 무죄율이 다른해에 비해 올라간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대법원의 사법연감 자료에 의하면 2006년도 1심 형사공판사건 무죄율은 1.2이었고, 2007년은 1.48입니다. 또한 법률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2007년 2%이던 무죄선고율이 개정형소법이 시행된 2008년에는 2.8%를 기록했는데, 이같은 수치는 2004년 전국법원의 형사합의사건 무죄율(1.2%)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라고 합니다.
이 밖에도 무리한 구속수사가 늘어난 것 역시 분명한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해의 주요 형사보상금 지급 사건들을 보니 간첩으로 몰렸던 사건이 대부분인것 같습니다.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 분단이라는 상황을 악용해무고한 사람들을 죄인으로 취급하여, 인권을 유린하고 그들의 삶과 목숨까지도 앗아간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출처 : www.ilyosisa.co.kr



  태영호 납북사건이란?

태영호 납북사건은 1968년 6월, 태영호가 북방 어로한계선 이남에서 작업을 하던 중 북한 경비정에게 강제 납북됐다 풀려난 뒤 이듬해 선원들이 반공법과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이다.

부안군 위도면에 사는 태영호의 선주 강대광씨와 선장 정몽치 등 8명의 선원은 경기도 웅진 연평도 근해 해상에서 병치잡이를 하던 중 북한 경비정에 나포돼 4개월간 억류된 뒤 풀려났다.
이들은 한국 경비정에 견인, 인천경찰서에서 3일간 조사를 받았으나 그 이후 여수경찰서에서 34일동안, 부안경찰서에서 30여일동안 불법 구금된 채 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수사관들로부터 몽둥이로 구타를 당하는 등 심한 고문을 받고 가혹행위를 당했으며 심한 상해와 후유증으로 인해 고통을 겪었으며 재판과정에서 각종 위법이 자행됐다.
전주지법 정읍지원은 지난 1971년 3월 강대광과 정몽치에게 징역 1년 6월 및 집행유예 3년을, 박햔태에게 징역 1년 및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또 박상용과 이종섭, 박종옥은 각 1년 및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으며 이들은 모두 항소를 포기하고 형이 확정됐다.
그러나 형사처벌 이후 이들은 마을주민들의 기피와 승선거부로 인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평생동안 고통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강희철 조작간첩 사건이란?

강희철씨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은 전두환정권의 대표적 조작간첩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강씨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지난 75년 부친이 있는 일본 오사카로 밀항했다가 81년 일본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한국으로 송환됐다. 강씨는 부산 보안수사대에서 조사를 받고 무혐의로 풀려났으나, 86년 4월28일 경찰에 연행돼 85일 동안 불법감금된 상태에서 수사를 받은 뒤 관공서와 기관, 학교 등의 위치를 북한에 알렸다는 혐의로 기소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강씨는 12년 동안 복역한 뒤 지난 98년 8·15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이란?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이란,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가 '반공법'을 근거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을 비롯한 16명의 임직원이 '북의 간첩으로부터 자금을 받아 민족일보를 발행하고 북의 괴뢰정권과 동일한 위장 평화통일론을 주장했다'는 혐의로 기소가 된 사건이다.
민족일보사건 담당 '혁명재판부'는 조용수 사장을 비롯한 3명에게 사형을 언도했고 나머지 피고는 징역 10년, 징역 5년 등을 확정다. 그리고 이 중 두 명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는데 조용수 사장에게만 사형이 집행되었다.


 형사보상금 지급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첨부하는 파일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