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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경향] “관공서 민원인이 아니라 청구인이 돼 보세요”

opengirok 2009. 10. 29. 16:14

신동호가 만난 사람 - 하승수 정보공개센터 소장


요즘 언론 보도 가운데 특이한 이름의 단체가 출처로 자주 인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대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이하 정보공개센터)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이라는 형식이다. 10월20일 정보공개센터가 공개한 ‘광화문광장 두 달 관리비 3억6700만원’이라는 내용의 자료는 14개 언론에 동시에 인용, 보도됐다.

정보공개센터는 1년 전에 창립된 신생 시민단체다. 400명이 안 되는 회원과 겨우 3명의 상근자로 이뤄진 작은 조직이다. 그러나 그 형태나 영향력이나 운영 방식 등이 여느 시민단체와는 사뭇 다르다. 사회의 큰 부문이나 뜨거운 현안보다 정보공개라는 매우 협소한 영역에 집중하는 전문단체라는 점에서, 최근 위축된 시민사회운동과는 달리 놀랍게 주목도를 높이고 있다는 점에서, 성명서는 물론 보도자료 하나 내지 않고 철저하게 블로그(www.opengirok.or.kr)를 통해 정보공개청구로 받은 자료만 공개하는 활동 방식 등에서 그렇다.

이런 별난 운동 방식은 이 단체의 소장을 맡고 있는 하승수 변호사(제주대 법대 교수)의 운동 철학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는 교수·변호사(공인회계사이기도 하다)라기보다 시민운동가의 이력이 더 짙은 사람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 시민운동에 몸 담고 있는 다른 변호사·교수와 비슷해 보이지 않는다. “가장 변호사·교수답게 운동하면서, 한편으로 가장 변호사·교수답지 않게 운동하는 사람”이라는 게 그를 아는 한 시민사회 활동가의 평이다.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인가?

하 소장에 대한 인물평에 희한한 모순 어법이 동원돼야 하는 까닭을 알려면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다. 그는 자주 주변을 놀라게 했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갑자기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 회계법인에 다니나 싶더니 어느 날 사법시험에 덜컥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시절 사법감시 활동을 벌여 파문을 일으키더니, 변호사가 돼서는 박원순 변호사 이후 참여연대 첫 상근변호사로 운동에 ‘올인’했다. 소액주주운동, 정보공개운동, 예산감시운동, 조세개혁운동 등에서 공익소송을 담당해 많은 판례를 남긴 것은 익히 알려진 바다. 그런데 느닷없이 참여연대를 떠나 지역으로 ‘하방’하는가 하면, 2006년부터는 제주대 교수가 돼 또 한 번 주변에 충격을 주었다. 제주도에서 벌인 도지사 주민소환운동과 지난해 정보공개센터 소장을 맡은 일 또한 시민사회 활동가 사이에서 화젯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자세히 뜯어보면 그는 뭔가에 집착하는 듯하면서도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존경하는 인물이라는 조영래 변호사, 또 그가 일을 배웠던 박원순 변호사의 이미지와 중첩된다. 물론 내용은 전혀 같지 않아 보인다. 직접 만나서 그의 말을 들어보기로 하자.

정보공개운동을 다시 하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1998년에 정보공개운동을 처음 할 때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국가와 개인이 수평적 관계가 될 수 있고, 시민이 국가의 주권자라는 걸 확실하게 할 수 있는 제도라고 느꼈기 때문이지요. 1999년 일본에서 정보공개운동을 하는 분을 만났는데 똑같은 말을 하더군요. 참여연대 활동을 정리하고 정보공개 활동에서 손을 뗐지만 언젠가 다시 한 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2006년쯤 지금의 전진한 정보공개센터 사무국장이 당시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선임연구원이었는데 날 찾아와서 함께해 보자고 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어떤 점에서 관과 민이 대등해진다는 겁니까.
“정보공개제도 도입 전에는 ‘민원’이라는 단어로 민관 관계를 표현했습니다. 부탁, 청원한다는 의미였죠. 시민은 행정기관에 부탁하고 청원하는 위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보공개제도 아래서는 민원인이 아니라 청구인이 됩니다. 주권자가 너희에게 위임한 것을 보여 달라, 설명해 달라는 뜻을 담고 있지요. 처음에는 공무원이 정보공개청구를 받으면 상당히 충격을 받는 모습이었습니다. 이걸 왜 해야 되느냐고 해서 제도를 설명해 주기도 했습니다. 시행 2, 3년 돼서는 개악하려는 시도까지 있었습니다. 왜 법을 이렇게 만들어 고생시키느냐는 거였죠. 행정자치부 담당 과장이 참여연대에 찾아와서 부처 반발이 몹시 심하다고 하소연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비공개 사유를 두 가지 추가하려고 입법예고까지 했다가 학계와 시민단체의 반대로 무산됐어요. 정보공개제도는 관료개혁이라는 의미에서 중요합니다. 시민은 주권을 찾고, 관료조직은 개혁될 수밖에 없는 제도입니다.”

정보공개센터의 슬로건이 ‘정보공개가 세상을 바꾼다’인데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까.
“법제도와 행정 관행, 공무원의 의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참여연대에 있을 때 국세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서 소송을 제기했죠. 1심 재판이 진행 중일 때 국세청 쪽 변호인이 공개할 테니 소를 취하해 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홍일표 조세개혁센터 간사와 함께 국세청 캐비닛 서류를 열람하게 됐습니다. 국세청 사상 외부인이 내부 문서를 본 것은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자료 열람을 계기로 국세청도 표준소득률제도가 자영업자의 탈세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허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 이를 폐지했습니다. 이런 예가 많습니다. 한 개인이 청구한 정보에 의해 많은 게 바뀔 수 있습니다.”

정보공개제도는 세계적으로도 아직 도입 단계라고 들었습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정보공개법은 1766년 스웨덴, 1966년 미국에서 각각 시행된 적이 있지만 그리 활성화되지 못했죠. 그러다가 1990년대부터 전 세계에 급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정부가 부패하고 무능하고 투명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죠. 아시아만 해도 우리가 가장 먼저 법제화했고, 일본·태국·인도·중국 등이 도입했습니다. 베트남은 내년에 도입할 준비를 하고 있고요. 불과 10년 사이의 일입니다.”

도입 시기로만 보면 우리나라가 상당히 앞서 있네요.
“세계에서 13번째로 도입했지만 그리 선진적인 형태는 아닙니다. 지금 제도에서 공무원이 정보공개를 기피하거나 태만히 해도 처벌할 방법이 없습니다. 정보공개를 잘한다고 칭찬받을 일도, 못 한다고 불이익을 당할 일도 없는 거죠. 정보공개가 되지 않았을 때 불복 절차도 미비합니다. 영국은 우리보다 늦게 도입했어도 ‘정보공개 커미셔너’라는 제도가 있어 소송 같은 복잡한 절차를 밟지 않고서도 쉽게 정보공개를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정보공개청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런 점 때문에 개인이 원하는 정보를 받아내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그래서 정보공개센터가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정보공개제도 도입 전에는 ‘민원’이라는 단어로 민관 관계를 표현했습니다. 부탁, 청원한다는 의미였죠. 시민은 행정기관에 부탁하고 청원하는 위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보공개제도 아래서는 민원인이 아니라 청구인이 됩니다. 주권자가 너희에게 위임한 것을 보여 달라, 설명해 달라는 뜻을 담고 있지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합니까.
“전문단체를 표방했으니 정보공개에만 집중합니다. 시민과 언론인을 상대로 한 정보공개교육, 활동가나 회원 및 시민이 청구한 의미 있는 정보를 블로그를 통해 공개하는 것, 정보공개청구를 통한 탐사보도 협력 및 지원, 기록관리와 정보공개 실태 모니터링 등이죠.”

최근 <정보사냥>(도요새)이라는 책을 냈던데, 그런 취지를 담은 것이군요.
“정보공개청구의 실전 노하우를 다룬 책이죠. 기자 입장에서, 청구받는 입장에서, 활동가 입장에서 경험을 바탕으로 정보공개청구를 잘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내용입니다. 정보공개청구를 하는데 공공기관이 알아서 잘 공개하는 단계가 아니지 않습니까. 대충 청구해도 자세히 안내해 주면 괜찮은데…. 해 보려는 분이나 해 보니까 잘 안 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국민이라면 정보공개청구를 한 번이라도 해 봐야 합니다.”

이 즈음에서 하 소장이 정보공개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까닭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정보공개청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이런 작은 활동이 의식과 관행 및 제도까지 바꾸는 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에서일까. 그는 재벌개혁이나 조세개혁 같은 큰 영역과 지역의 풀뿌리운동이라든가 정보공개운동 같은 아주 작은 영역을 넘나들었다. 딱딱하고 무거운 주제와 말랑말랑하고 가벼운 주제, 큰 이야기와 작은 이야기, 중앙과 지역, 법률적 수단을 동원한 운동과 그와 무관한 운동 등. 이런 상반된 양극단을 오가는 궤적을 보였다. 다시 출발점에서부터 보자.

어떤 일을 계기로 시민운동을 하게 됐습니까.
“회계법인에 있을 때부터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회계사는 자본시장의 파수꾼이라고 하여 공익을 위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봤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사법시험 준비를 다시 한 거죠. 직접적으로는 사법연수원 1년차 때 연수원생이 내는 <사법연수>라는 잡지에 싣기 위해 박원순 변호사를 인터뷰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박 변호사가 참여연대 상근 사무처장을 시작할 때였는데, 그분의 권유로 동기생 10명이 참여연대에서 자원봉사를 하게 됐습니다.”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까지 지내다가 갑자기 그만두고 지역운동을 하게 된 이유는요?
“참여연대 활동을 하다 보니 제도개혁을 위한 캠페인이나 모니터링 같은 이슈 파이팅이 중심이었죠. 나는 다른 시민운동을 하고 싶었습니다. 사람들과 밀착해서 하는 운동, 지역시민운동입니다. 그 두 가지 운동은 매우 다릅니다. 2000년쯤부터 풀뿌리 운동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과천에 살기 시작하면서 지역운동을 지원하는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이란 걸 만들었습니다. 지역간 정보 교류와 지역운동 지원, 조례 개정을 위한 주민 발의 등을 했습니다. 과천에서 보육 조례 개정 운동을 해서 다른 지역으로까지 확산시킨 성과도 있었습니다.”

중앙에서 지역으로, 이슈 운동에서 생활 운동으로 바뀐 거군요.
“상대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을 활성화하는 데 기여해 보자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두 가지는 운동 철학이나 방식은 달라도 둘 다 필요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지역운동을 하면서 제도를 바꾼 것도 있지만 지역간 정보 교류를 하는 센터 역할에 치중했습니다. 지역이 많이 활성화되는 것도 느꼈고요. 운동의 기본은 그런 게 아니겠냐는 생각입니다.”
하 소장은 과천에서 지역운동을 하면서 지역신문 발행인, 학교 운영위원장직을 맡기도 했다. 2006년 지방선거 때는 지역운동에서 후보를 내 시의원 2명을 당선시키기도 했다. 그해 그는 제주대 교수에 임용된다.

제주대로 간 이유가 궁금합니다. 과천시장 출마 압박을 피하려고 그랬던 것 아닙니까.
“솔직히 그런 점도 좀 있었고요…. 수도권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삶의 질 차원에서, 그리고 일을 하고 싶어서죠. 수도권이 아닌 곳에서 지역운동을 하고 싶었는데 마침 제주대에 로스쿨을 만들면서 자리가 났어요. 제주도가 특별자치도가 되면서 현안도 많았고요.”

얼마 전에 있었던 도지사 주민소환 투표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주도는 특별자치도가 되면서 기초자치단체를 없앴습니다. 권한이 도지사에게 집중되고 주민 참여가 어려워졌어요. ‘제왕적 도지사’라는 표현이 공공연하게 나왔습니다. 주민소환투표는 아시다시피 투표율이 3분의 1에 미달돼 개표를 못했고요. 지금도 기초단체를 부활하자는 논의가 많습니다. 나도 기본적으로 찬성 입장입니다.”

정보공개 활동과 관련해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좀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하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민간 비영리 기관·단체의 투명성도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기관·단체가) 모델을 만들겠다면 컨설팅도 해 보고 싶습니다. 물론 제도 개선에도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겠죠. 지역에서 정보공개운동을 열심히 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있어서 이들을 네트워킹해 강력한 운동 주체를 만들고도 싶고요. 작은 단체를 조직해 운동의 힘을 끌어올릴 필요도 있습니다. 시민단체나 종교·복지재단은 모금을 하는데 여기에도 투명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만 투명하라고 요구할 게 아니지요. 교회든 재단이든 원하는 데만 있으면 여기 전문가가 있으니까…. 2005년엔가 한국노총 회계부정사건이 터졌을 때 부탁을 받고 회계시스템을 만들어 준 적이 있습니다. 그런 게 중요하더라고요.”

정보공개 외에 다른 부문에는 관심이 없습니까.
“시민운동에서 해야 할 일이 굉장히 많습니다. 지금은 위축됐지만…. 정보공개를 이용해 정부 행정이나 예산 사용을 투명하게 하려면 전문 영역과 분야를 발전시켜야 합니다. 예를 들면 예산만 전문으로 공개하는 단체, 정치나 정당 정보를 다루는 단체가 나오는 것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의지나 헌신이 필요합니다. 저는 시민운동과 관련된 일을 10년은 더 해봐야겠습니다. 정보공개 외에 아동·청소년 인권을 전문으로 하는 단체에서 거기에 전념하는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지금 10대가 어떤 가치관과 생각을 갖고 성장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사회가 결정됩니다. 자아 형성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어른이 역할을 해야 합니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차별받는 것이 없어져야지요. 이런 시민운동이 필요합니다.”
이제 좀 정리가 되는 것 같다. 하 소장은 삼성전자 주주총회장이나 부안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주민투표 등 난해하고 힘든 운동의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만큼 현장주의자다. 변호사로서 수많은 공익소송을 맡은 전문운동가이기도 하다. 지역에 내려가 풀뿌리 운동을 하고 직접 열심히 정보공개청구를 하는 모습에서는 전혀 ‘변호사스럽지’ 않은 면모를 보인다. 그는 무엇을 꿈꾸는 것일까.

스스로 이념적 지향이 어디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출발의 평등은 추구하지만 결과의 평등은 물음표로 둡니다. 경실련의 이데올로그였던 이근식 서울시립대 교수께서 출발에서의 평등을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점에서 나는 진보주의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 사회는 출발에서의 평등이 안 돼 있습니다. 너무 암울한 거죠.”

시민운동가로서 한마디로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하고 싶습니까.
“박원순 변호사께서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라는 말을 쓰더군요. 나는 올터너티브 오거나이저(alternative organizer), 즉 ‘대안 조직가’로 불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