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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서울인구 1% 고시원에 산다

opengirok 2010. 1. 26. 09:43

값싸고 편의시설 갖춰
직장인들 숙박촌으로
맞벌이 신혼부부 살기도


“성인 남녀가 함께 쓸 수 있는 방을 찾습니다. 가격은 50(만원)선이요.” 김나연(32·가명)씨는 지난여름, 고시원 관련 인터넷 카페 ‘아이러브고시원’에 이런 글을 올렸다. 결혼을 앞두고 비싼 전세금을 마련하지 못해, 결국 고시원을 찾은 것이다. 마침 요즘 고시원엔 텔레비전, 에어컨에다 작지만 화장실도 따로 있다는 말을 들은 터였다.


남들은 혼자 사는 고시원에서, 결혼 뒤 부부가 생활하는 탓에 다른 사람들 시선이 따가웠다. 그러나 맞벌이여서 남들 눈에 띄는 때는 평일 밤늦은 시간과 주말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었다. “전세금 이자도 아낄 겸 그럭저럭 살 만하다”는 김씨는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고시원 생활을 이어갈 작정이다.


‘도시빈민의 보루’, ‘현대판 쪽방’ 등으로 일컫던 고시원에 평범한 직장인들이 몰려들고 있다. 특히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이 집중된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고시원이 ‘직장인 숙박촌’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2007~2009년 서울·경기지역 고시원 현황’ 자료에서도 뚜렷이 확인된다. 이 자료는 <한겨레>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공동으로 진행한 ‘정보공개청구 캠페인’에서 대상을 받은 고영국(37)씨가 서울시와 경기도의 소방방재청에서 받아낸 것이다.


이 자료를 보면, 2007년 3111곳이던 서울지역 고시원은 이후 2년 동안 3738곳으로 20.1%(627곳) 늘었다. 강남·서초·동작·구로·송파구 등 직장인들이 몰린 5개 지역에서만 증가분의 절반에 가까운 282곳이 불어났다. 반면 ‘원조 고시촌’으로 꼽히는 관악구는 17곳이 증가하는 데 그쳤고, 용산·중랑·강서·은평구 등 주거형 지역에서는 조금 줄거나 제자리걸음을 했다. 김두수 한국고시원협회 홍보이사는 “시설이 개선되고 직장 접근성도 좋아져 강남 쪽 수요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 정보공개 자료 가운데 ‘수용인원 직군별 현황’(2008년 10월 기준)을 봐도, 서울에서 고시원을 이용하는 10만8428명 가운데 ‘숙박형 직군’은 6만2078명(57.3%)으로 ‘학습형 직군’(4만6350명·42.7%)보다 많았다. 10만명이면 서울 전체 인구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하지만 서울 강남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고시원은 여전히 공간이 비좁고 시설도 열악해 개선이 필요하다. 화재로 인한 대형참사의 위험도 여전하다. 지난해 7월 정부가 ‘건축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업주들의 요구를 대폭 수용하는 바람에 시행령 개정 이전부터 있던 고시원은 소방시설인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면제됐다.


시행령 통과 이전인 2008년 10월 소방방재청이 내놓은 ‘특별소방검사 결과’를 보면, 서울지역 3451개 고시원 가운데 453개(7.8%)가 ‘소방 불량’ 판정을 받았다. 전국 6216개 고시원 가운데 4952개가 서울·경기지역에 몰려 있는 기형적인 구조도 이런 문제점을 심화시킨 원인으로 꼽힌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도시지역계획학)는 “발전된 형태의 고시원도 주거시설이 될 수 없는 과거 쪽방을 화려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며 “정부가 주택의 수만 늘릴 게 아니라 1인당 주거면적, 인격 형성 가능성 등을 포괄적으로 살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