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이명박 정부의 기록관리 중간평가

opengirok 2010. 5. 11. 17:25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이미영 회원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책임연구원)


이명박 정부가 2008년 2월 25일에 출범했으니, 어느 덧 중반을 달려 온 셈이다. 전반적인 정부 정책에 대한 평가는 6월 2일 지방선거를 통해 가늠해 볼 수 있겠지만, 전문적인 기록관리 분야는 그럴 수 없으니, 이 시점에서 소략하게 정리해 보고자 한다.

평가란 모름지기 기준이 있어야 한다. 기준은 명확하고, 구체적이며, 객관적일수록 좋다. 이 가운데 무엇보다 ‘객관성’이 문제이다. 지금껏 특정 정부의 기록관리를 중간평가 해본 적도 없고, 평가기준을 만들어 정부 전체의 기록관리를 점검해 본 적도 없는지라 무엇을 기준으로 해야 할지 처음부터 쉽지가 않다. 다만 이전 정부의 대통령이 ‘기록 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유례없이 기록의 생산, 전자적 관리, 법제도 마련 등의 측면에서 많은 기초를 다져 놨으니, 이를 얼마나 계승, 발전시켰는지는 중요한 평가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전정부와 국정철학과 국정운영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이번 정부 스스로가 세운 기록관리정책과 목표를 중간시점에서 그 수행정도를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나, 아쉽게도 이명박정부의 100대 국정운영과제에 ‘기록관리’는 없었다.


이명박만 있는 이명박 정부

담화 도중 눈물흘리는 마음 약한 대통령의 진짜 속마음이야 어떻든, 대통령과 그의 정부가 수행한 일련의 결과물만 가지고 중간평가해야 할 듯 싶다.

“이명박정부”라고 스스로 불리기를 원할 때부터 이전 정부와의 확실한 차별성은 드러났다. 이름을 내걸고 본인이 다 책임지겠다는 막중한 책임감의 발로라기보다는, ‘국민의 정부’에서 국민을 지향하고 ‘참여정부’에서 참여를 지향했듯이 ‘이명박정부’에서는 이명박을 지향하겠다는 자신감과 욕심의 표현이었지 않나 싶다. 물론 이명박정부에 있어 모든 것이 한 개인의 책임과 생각만이 아니겠지만, 우석훈(2006)이 과거 노무현 정부를 중간평가하는 글에서 사용한 표현을 빌리자면 “이명박정부에 이명박은 있다.” 일방주의와 독선, 편향적이며 시의적절치 못한 부적절한 행동들은 집권 초기 이명박정부를 드러내던 키워드였다.



기록관리와 관련해서 이명박정부 초기부터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기록관리의 악재이자, 호재였다. “대통령기록 무단 유출과 관련한 논란 - 국가기록원의 행정직 중심 인사 개편 - 기록관리분야에 대한 총리실 發 행정내부규제 개선 - 이명박대통령 측근의 대통령기록관장 임명”에 이르기까지 전문성은 배재되고 정치성에 기반한 일련의 사안들은 기록학계의 우려를 낳게 했다.

먼저 대통령기록 무단 유출과 관련한 논란. 지금까지 기록관리분야에서 이 만한 흥행카드는 없었다. 덕분에 기록관리를 하는 ‘우리들만의 기관’쯤으로 그 인지도가 낮았던 국가기록원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일간지 앞면을 장식하기 시작했고 그 인지도는 엄청나게 상승해 버렸다. 덕분에 국민들은 기록관리 중앙기구의 존재 및 대통령기록물의 생산, 관리, 퇴임이후의 활용 프로세스, 지정기록물의 존재와 공개방식에 이르기까지 전문가수준의 지식을 가질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문제를 타당한 법적 프로세스가 아닌 정치력으로 해결하려 했다는 점이다. 전임 대통령이 사본을 사저로 가져간 것이 불법이었음에도, 이보다는 청와대가 나서서 정확치 않은 사실을 유포했다는 점과 함께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왜 청와대가 나서서 정치적으로 해결하려 했는지에 대한 비난여론만 들끓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2년 뒤인 지난 2010년 3월 15일, 이명박대통령은 작년 12월에 대통령기록물 유출 혐의로 직권면직된 임상경 전 대통령기록관장의 자리에 김선진 전청와대 메시지기획관리실 행정관을 전격 임명했다. 코드인사야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지만 김선진 대통령기록관 신임관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참모를 지낸 정치권 출신인사로 대통령지정기록물의 보호를 어렵게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데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이명박대통령이 퇴임할 때 그 자리에 본인의 기록물을 지켜줄 사람을 앉히는 것은 마땅한 일이나, 지향하는 바가 다른 정부의 측근이 대통령기록관장이 되어 그 재량으로 대통령지정기록을 사실상 모두 열람가능하다는 것은 향후 대통령기록의 생산마저 위협할 수 있다.


행정적 성과주의와 실용주의


지난 몇 년간, 척박했던 기록관리 현실의 혁신을 지향하면서 우리는 기록관리와 민주주의, 설명책임성, 거버넌스 등을 함께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명박정부의 실용주의, 성과주의 앞에 민주주의는 발 디딜 틈도 없었다. 민주주의가 뒤로 물러나 있는 실용주의 앞에서 개념과 원칙, 논리와 의미라는 단어들은 그 힘이 약해 보인다.

이념이 다르니 그에 따른 실천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실천의지가 드러난 최근의 눈에 띄는 일련의 사례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월 10일 행정안전부 홈페이지에 올라온 “행정내부규제 중점 개선 과제” 중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관리분야의 10개 과제가 들어 있었다.

<정부기록물 관리분야 내부 규제 개선>

연번

과제명

현황 및 문제점

개선 방안

1

다량의 비치성 기록물에 대한

관리방법 개선

▪다량의 비치성 대장의 경우 보존매체 수록완료 후 원본기록물을 폐기할 수 있는 법령상 근거가 없어 생산기관에서 중복보존하는 문제 발생

※ 예시) 경찰청 신원조사기록 2,000만건 및 운전면허대장 3,900만매 등

▪원본 기록물을 보존매체 수록후 자체 평가심의회 등의 심의절차를 거쳐 원본기록물을 폐기할 수 있도록 관련법령 개정

※ 공공기록물법 시행령 개정('10.7)

▪보존가치 낮은 기록물의 폐기절차 마련으로 각급 기관의 기록물 보존·관리에 따른 부담을 경감

2

행정박물에 대한 폐기허용 등 관리효율화

▪사무집기 등 행정박물(영구기록물)중 훼손되어 보존가치가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에도 법적 절차미비로 계속 보관해야 하는 부담 발생

※ 예시) 국새·직인, 훈·포장, 우표·화폐, 현판, 휘호, 사무집기 등

▪영구보존 필요성이 상실되거나 훼손이 심한 행정박물은 폐기가능토록 근거마련

※ 공공기록물법 시행령 개정('10.7)

▪행정박물의 이관 시에는 물품관리 대상에서 제외토록 함으로써 기록물 폐기절차에 따라 폐기가 가능토록 함

3

한시기록물 폐기절차 간소화

중요도에 관계없이 3단계 기록물 평가·폐기절차를 거치토록 함에 따라 중요 기록물에 대한 평가 소홀 및 각급 기관의 행정력 낭비

※ 기록물 폐기절차 : 생산부서 의견조회 → 전문요원 심사 → 평가심의회 심의

▪보존가치가 낮은 1․3년 기록물은 생산부서 의견조회 및 전문요원의 심사를 거치되, 평가심의회 심의는 생략할 수 있도록 간소화

※ 공공기록물법 시행령 개정('10.7)

4

구전자기록물 관리시스템 개선

▪보존기간이 경과한 구전자기록물('04년 이전 시스템 생산)은 해당 기관에서 기록관으로 이관한 후 폐기토록 하고 있으나, 이관의 실익이 없고 이관에 따른 각종 비용이 과다하여 행정기관의 부담 가중

▪'04년 이전 시스템에서 생산된 구전자기록물 중 보존가치가 낮은 5년 이하 기록물은 각급 기록관 책임 하에 절차를 거쳐 폐기할 수 있도록 허용

※ 기록물관리 보완지침 통보('10.7)

5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의 자격기준을 현실화

▪기록물관리의 전문성 확보를 위해 전문요원 제도를 2000년부터 도입․운영

-기록관리학 석사학위자 또는 역사학․문헌정보학 석사학위 소지자 중 일정 교육과정 이수자에게 자격 부여

▪연구직 공무원의 자격을 법령에서 ‘석사학위자’로 제한하고 있는 것은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이 유일

- 관련분야 전공자를 자격요건(「연구직‧지도직공무원 임용규정」)으로 하고 있는 타 연구직 분야와 비교해 볼 때 형평에 맞지 않음

▪현행 기록관리학 석사학위자는 그대로 유지

▪현행 역사학‧문헌정보학 석사학위 요건을 1년이상 관련분야 경력 및 1년이상 교육을 이수한 기록관리학‧역사학‧문헌정보학 분야 학사까지 확대

※ 공공기록물법 시행령 개정('10.7)

▪5년내 관련 전공자로 완화(자격증제도 도입 포함) 및 전문성 강화방안 마련

▪타 연구직 인사제도와의 형평성 확보 및 기록관리분야에 대한 공직 진출기회 확대

6

기록물관리 관련자료 제출부담 경감

▪기록물 생산현황 및 평가자료 등의 제출에 따른 업무부담 가중

▪기록물관리 평가자료 및 생산현황 자료의 제출시기를 조정하여 각급 기관의 부담 완화 및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조성

※ 공공기록물법 시행령 개정('10.7)

7

기록물관리 담당자 교육 부담 완화

▪기록물관리 담당자의 교육이수 시간(연 30시간) 등 평가 과중

▪담당자에 대한 사이버 교육과정을 확대하고 교육이수에 대한 평가점수를 하향조정

※ ‘10년 평가지침에 반영('10.3)

8

기록물관리 현황평가 내실화

▪각급기관의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기록물 관리를 위해 기록물 현황평가를 실시하고 있으나 지표과다로 평가의 실효성 저하

▪평가지표 일몰제(2317개), 평가 우수기관에 대한 평가휴식년제 도입

※ ‘10년 평가지침에 반영('10.3)

9

기록물관리 현황평가에 따른 부담경감

▪평가등급 공개에 따른 기관간 경쟁 및 하위 등급기관 불만 발생

▪평가결과 공표범위 개선(전기관→우수기관)

※ ‘10년 평가지침에 반영('10.3)

10

비공개기록물에 대한 중복판단 절차 간소화

▪비공개기록물은 각급 기관에서 자체적으로 재분류(5년주기)하고, 기록원 이관 및 정보공개청구 시에도 공개여부를 판단하도록 하여 각급 기관(기록관)의 업무 부담 가중

※ 비공개 기록물 : 개인 신분·재산, 국가안보 관련기록물

▪기록물 생산과 기록관 및 국가기록원 이관시의 공개여부 재분류절차는 현행대로 유지하되, 각급 기록관의 비공개기록물 5년주기 재분류절차를 생략하도록 하여 중복절차를 간소화

※ 공공기록물법 개정('11.3 입법예고)



행정규제개선 10가지 과제는 ‘실용’과 양적 ‘성과’의 기치아래 모든 절차의 간소화와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실제 기록관리를 해 본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은 아닐 거란 생각이 강하게 든다. 남은 2년 반 동안 누가 이득을 보게 될 지가 너무나 분명하다. 위의 개선과제와 방안은 전문성은 쓸 데 없고 행정의 편이성만을 극단적으로 옹호한 것이다.

몇몇 기관의 기록물평가심의위원을 경험한 입장에서 많은 업무담당자들이 관행적 관성적 평가에 발목을 잡혀 정작 자신이 생산한 기록물의 중요도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일관성없는 기준으로, 보존기간을 하향평가하고, 생산부서 의견조회에 성의없이 응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따라서 이런 현실에서 나온 개선과제이자 방안에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현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장기적인 안목에서 기록평가를 봤을 때 차라리 평가심의의 과정을 보다 강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4번 과제도 기록물 평가가 체계적이고 일관된 기준으로 제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각급 기관의 책임하에 기록물을 폐기하려면 더더욱 평가의 양적 간소화가 아닌 질적 내실화가 강조되어야 한다. 


5번 과제의 개선방안에서는 대놓고 기록관리분야에 대한 공직 진출기회를 확대하고자 한다 하니, 이제 깔아놓은 멍석위에서 자리차지 하고 앉아 일해 보겠다는 의지에 불탄 것처럼 보인다. 『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의 일부 내용만 보아도 기록관리 전문직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정부측에서는 타 연구직과의 형평성을 위해서라지만, 유사 연구직인 동일 직군의 학예연구직 및 편사연구직은 비록 법령에서 학력 제한을 요구하고 있지 않으나 석사학위자 이상을 선발하고 있다. 오히려 최근 연구직 선발 공고문에서 석사이상의 학력을 제한하지 않은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자격기준을 완화하여 공직진출의 기회는 늘려 놓고, 기록관리에 대한 교육 부담은 완화하고, 자료제출은 줄이고, 기록관리 절차는 간소화하겠다니, 다 이뤄지기만 한다면 참으로 해 볼 만한 자리일 것이다. 더군다나 평가부담도 줄이겠다고 하니, 못해도 별로 티날 것도 없다. 10가지 과제와 개선방안이 너무나 조화롭고 앞뒤가 들어맞아 놀랍기만 하다. 허나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 멍석이 다 깔린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이다.



이명박 정부의 "이명박"은 없어도 좋다

이명박정부가 지향하는 작지만 일 잘하는 정부란 무조건 예산만 줄이고 성과를 높이는 것을 의미하진 않았을 것이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오히려 공무원의 수는 늘었다는 비판이 집권초기부터 있었지만 전체적인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문분야는 전문직이 수행하고, 행정은 행정직이 수행하면서 남의 자리 욕심내지 않고 제 자리에서 제몫을 다할 때 효율성높은 일잘하는 정부가 되는 것이다.

이미영 회원

최근 몇 년간 기록관리가 성장하여 기록의 생산량도 증가하고 시스템적, 제도적 기반도 그나마 “꼴”을 갖추게 된 것은 누가 뭐래도 전문직 배치 이후, 그들이 제 역할을 수행했기에 가능한 것이었지 수십 년 동안 기록관리를 기능적인 문서수발 업무정도로만 치부했던 이들의 성과는 아니었다는 점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곽건홍(2009)의 표현대로 지난 정부의 “기록관리 압축 성장”을 경험하면서도 안타깝게도 기록관리가 제도, 시스템만으론 극복할 수 없는 ‘문화’의 문제였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애초에 경제지상주의로 기반을 닦은 이명박정부에 ‘문화’라는 것은 없었다. 본인의 말처럼 ‘기록문화의 전통을 바로 세우고 나라기록의 엄정함과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서는 정치와 경제의 논리는 배제된 저속성장과 기다림이 필요한 분야도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정신적 발전은 물질적 성장처럼 고속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기록관리 분야에 있어서는 이명박정부의 “이명박”은 없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