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알권리 운동하던 그 청년활동가는 왜 탈핵운동을 하게 되었나.

opengirok 2014. 3. 11. 14:55

알권리 운동하던 그 청년활동가는 왜 탈핵운동을 하게 되었나.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 강언주

 


핵발전소 사고. 상상안됨을 상상하기. 
활동가가 된지 3년차가 되던 해에 후쿠시마핵발전소 사고가 터졌다. 뉴스에서는 연일 일본의 상황을 급박하게 전했다.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해 거대 쓰나미가 발생했고 후쿠시마 원전1,2,3,4 호기를 덮치면서 정전이 발생, 발전소의 열을 식히는 제어장치가 제 기능을 못해 폭발하게 되었다고. 멜트다운이니 제어봉이니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웠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원래 잦은 지진이 발생하는 곳이기도 하고 핵발전소가 폭발했다는 것이 어느 정도로 위험한 상황인지 상상하기 어려웠던 터라 어떻게든 해결되겠지 하고 생각했다. 핵발전소폭발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얼마나 미칠 것인지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매일 수 백 톤의 방사능오염수가 바다로, 지하수로 유출될 줄, 수 십 만 명의 사람들이 마을을 잃고 살아가게 될 줄 말이다. 1986년 체르노빌에서 작업자의 실수로 인한 핵발전소사고가 있기도 했지만 그건 내가 태어난 바로 다음 해의 일이니 살면서 핵발전소 사고에 대해서 아예 생각해 본적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원자력은 깨끗한 미래에너지, 안전한 에너지라고 생각하기를 강요당하며 컸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대학에서 생태학에 대해 배우면서도 핵 발전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민을 한 적이 별로 없다. 그저 ‘핵’이라고 하면 핵무기정도를 생각했지 우리가 흔히 원자력발전소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상 핵발전소라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오랫동안 원자력에너지, 원자력발전소라고 부르던 것들을 핵에너지, 핵발전소라고 의식적으로 고치고 있는데 아직도 툭툭 자연스럽게 내뱉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속한 조직(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이 하는 활동은 정보공개를 통해 시민의 알권리와 사회의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조금 거창하기도 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목적은 거창해 보지이지만 실제 활동은 매우 구체적이다. 공공기관에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고, 시민들과 공유하는 것이다. 이런 활동을 통해 공직자들의 비리를 밝혀내고 예산낭비와 부실한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정보공개청구는 공무원들을 귀찮게 할 테지만 감춰져 있는 정보를 공개 받는 순간, 활동가 개인이 느끼는 이상한 희열감 같은 것이 있다. 또 시민들에게는 적극적으로 공공기관을 감시하고 적극적으로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아주 쉬운 방법이 될 수 있다. 정보비밀주의가 강한 사회에서 나름 아주 유의미한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정보공개운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려는 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길게 설명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건 바로 내가 탈핵운동을 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후쿠시마핵발전소 사고이후 나는 이상하고도 재미난 변화를 목격했다. 그리고 목격한 변화를 지금 함께 경험하고 있다.

 

 

‘변화’는 제자리걸음일 수 없다.
 내가 목격한 변화 첫 번째는 한국에서 ‘녹색당’이 창당한 것이다. 우연인지 인연인지 정보공개센터 소장이었던 하승수 변호사가 어느 날 ‘녹색당’을 창당하려고 한다면서 소장직을 사퇴하겠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느낌은 ‘녹색당? 그게 가능해?’ 와 ‘반갑다! 녹색당’ 이었다. 전자는 한국에서 과연 녹색정치를 한다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고 후자는 녹색이라는 가치로 묶인 정당은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시작과 변화가 반갑다는 느낌이었다. 녹색정치에 대한 고민이 처음은 아니었겠지만 실질적으로 ‘녹색당’이라는 이름을 걸고 정당을 창당한 것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단순히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정치, 사회적으로 던지는 의미가 컸기 때문이다.

 


두 번째 변화를 보았던 것은 사람. 그중에서도 ‘엄마’들이다. 엄마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또 탈핵관련 강연회나 오프라인 모임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08년 촛불’ 때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던 그 엄마들이었을 수 있고 그때엔 엄마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엄마가 된 사람들일 수도 있다. 공통점은 모두 가족의 건강과 안전한 삶을 위해서 어떤 사건을 그냥 좌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후쿠시마에서 수백톤의 방사능오염수가 지하수로, 바다로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엄마들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거리에서 일본산 수산물 수입의 전면 금지와 식품방사능기준치를 재설정할 것을 요구했다. 시작은 방사능 먹거리에 대한 두려움이었겠지만 방사능이나 핵 발전에 대해 공부하고 사람들을 만나 알려주고 ‘방사능안전급식조례만들기’와 같이 정책수립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까칠한 엄마들을 만나면서 별나라 이야기 같던 ‘탈핵’이 진짜 우리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는 탈핵운동의 변화이다. 한국에서의 탈핵운동이 후쿠시마 이후에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이전에도 경주 핵 폐기장반대, 부안과 굴업도 방폐장반대운동이 있어왔다. 하지만 지역의 문제로만 집중되어 사회전반의 문제로, 탈핵운동으로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후쿠시마 이후 탈핵운동이 조금 변화했다. 지역주민들만의 문제로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와 위험하고 자인한 핵 발전 신화의 진실을 알리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까지 방사능 먹거리- 밀양송전탑- 에너지기본계획- 핵 폐기장- 신규핵발전소 건설의 문제를 복합적으로, 유기적으로 고민해 ‘탈핵’으로 모으는 데에 어려움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이렇게 목격한 변화가 제자리걸음하지 않도록, 상상하는 ‘탈핵’이 아니라, 실현하는 ‘탈핵’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지금의 과제이다.

 

 

당신도 지금 탈핵운동을 하고 있다. 
다시 첫 질문이다. 알권리 운동하던 그 청년활동가는 왜 탈핵운동을 하게 되었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분명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정보공개운동만 주구장창 해 온 나에게 ‘탈핵’은 너무 어렵고 다가가기 쉽지 않은 주제였다. 기존에 탈핵운동을 주도적으로 해온 환경단체들이나 지역의 조직들도 있는데 굳이 탈핵운동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사람들이 관심 가져 줄만한 주제였을 뿐이지 우리가 꼭 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이나 의미를 찾지는 못했다. 어쨌든 이슈가 되고 있으니 몇몇 공공기관에 일본에서 수입되는 수산물은 방사능 검사결과는 어떤지, 핵 발전은 정말로 경제적인 건지, 핵발전소가 자꾸 고장이 나는 이유는 뭔지 등등 주특기인 정보공개청구를 해봤다. 돌아오는 답변은 대부분이 비공개. 또는 질이 떨어지는 정보들이었다. 핵 마피아라고 묶을 수 있는 집단의 정보비밀주의는 심각했다.

 

 

제대로 된 정보제공 없이 핵 발전은 안전하고 깨끗하고 경제적이라는 광고들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시민들에게 최면을 걸고 있었다. 전부 가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핵발전소가 안전하다면 후쿠시마에서는 왜 사고가 난거지? 우리나라 핵발전소들은 왜 고장이 나지? 핵 발전이 깨끗하다면 핵 폐기장은 왜 문제가 되는 거지? 하나둘 생기기 시작한 궁금증은 고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느꼈다.

‘정보’를 중심으로 탈핵운동을 해야 한다. 은폐되어 있고 왜곡된 정보들의 진실을 밝히는 것, 멜트다운이니 스트론튬이니, 플루토늄이니,, 이 이해하기 어려운 정보들을 조금 더 쉽게 보여 주는 것, 흩어져 있는 수많은 정보들을 모으는 것. 이것도 분명 탈핵운동이다. 그렇게 2013년도부터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을 받아 탈바꿈프로젝트(탈핵으로 바꾸는 꿈)를 시작했다. ‘방사능와치’(<www.nukeknock.net)를> 개설해 관련 이슈나 국내외 정보들을 아카이빙하고 홍익대학교  IGIG팀 (조형대학 디자인영상학부 학생모임)에서 정보를 쉽고 흥미롭게 전달할 수 있도록 인포그래픽작업을 해주었다. 최근에는 이런 일련의 정보들을 모아 ‘누크노크’라는 자료집을 제작했다. 생각보다 많은 시민들이 방사능와치와 누크노크에 관심을 가져주신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운동을 하고 있는 거라고 격려도 해주신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이것도 탈핵운동이라고 생각하니 때로 어깨가 으쓱할 때도 있다. 처음엔 일부러 찾으려고 해도 확신이 없었던 당위성과 활동의 의미가 그냥 생겨버렸다. 

 

 


 만약 엄마들이 내 가족의 건강에 대해서만 생각한다면, 후쿠시마는 일본만의 문제라고, 송전탑은 밀양만의 문제라고, 탈핵운동은 환경단체 같은 곳에서만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탈핵’은 가능할까? 어느 인문학 카페 입간판의 글처럼 방사능고등어는 안된다고 하면서 핵 마피아의 비리와 핵발전소 사고에는 침묵한다면 우리는 정말 안녕할 수 있을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우리가 지금 각자 어느 자리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든지 ‘탈핵’은 활동의 주제, 삶의 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꾸준히 핵 발전 정책을 밀고나가겠다는 비리로 가득한 핵 마피아, 그들로부터 삶을 지키고자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 하루가 멀다 하고 고장 나는 핵발전소를 마주하고 있으니 지금 당장의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탈핵’은 반드시, 당연히, 꼭이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탈핵운동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의 삶과 활동의 주제가 된 ‘탈핵’을 함께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도 그대 나름의 탈핵운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상상하는 ‘탈핵’이 아니라, 실현하는 ‘탈핵’을 만들기 위해 그대와 손을 잡고 싶다.

 

 

 

* 이글은 땡땡책협동조합에서 제작한 '후쿠시마에서 살다' 에도 편집되어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