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물오름 달의 후쿠시마. 이제 절망이 아닌 희망을 이야기하자.

opengirok 2014. 3. 11. 15:03

물오름 달의 후쿠시마. 이제 절망이 아닌 희망을 이야기하자.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 강언주


3월은 순 한글말로 ‘온 산과 들에 물이 가득 차오르는 달’이라는 의미로 물오름 달이라고 한다. 겨우내 얼었던 땅과 물이 녹고 그 틈으로 생명이 가득 차오르는 봄이 시작되는 3월. 하지만 2011년 이후로 이 봄의 기운을 잃어버린 곳이 있다. 그리고 그 땅에서 다시 봄의 기운을 회복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 폭발사고가 난지 3년이 지났다. 처음 사고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오히려 지금보다 덜 예민했었다. 그저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나라에서 조금 강한 지진이 발생했고 그래서 핵발전소라는 건물이 붕괴되었다고만 생각했다. 핵발전소 폭발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이후에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너진 건물이야 다시 지으면 되지만 이 사고로 무너진 핵발전소는 마을공동체를 파괴했고 나아가 일본전체, 일본을 넘어 전 인류를 방사능공포에 떨게 했다. 후쿠시마핵발전소에서는 연일 고농도의 방사능오염수가 바다로, 지하수로 흘러들었다. 땅과 바다가 방사능에 오염되기 시작하니 이 상황을 한 지역의 문제로 묶어둘 수 없게 되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에는 수십기의 핵발전소가 존재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는 수백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앞으로 더 많은 핵발전소가 건설될 예정이라고 하니 언제든 또 하나의 체르노빌, 후쿠시마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두려워졌다. ‘탈핵’에 대한 나의 고민은 그렇게 단순히 방사능과 핵발전소 사고에 대한 공포로부터 시작되었다.

 

 

탈핵으로 바꾸는 꿈 프로젝트

 


핵 발전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면서 속해 있는 조직에서 ‘탈바꿈프로젝트’(탈핵으로 바꾸는 꿈)를 기획하게 되었다. 정보공개와 관련된 활동을 수년간 해왔으니 정보를 청구하고 공개 받는 것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정부의 주장대로 핵 발전이 정말 안전하고 경제적인지 알아야 불안하지 않으니 관련기관들에 정보공개청구를 해봤다. 돌아오는 답변은 “기업비밀사항이라 공개할 수 없다.”, “국가안보와 관련된 정보라 공개할 수 없다.”, 아니면 ‘비.공.개’ 세 글자였다.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막상 비공개답변을 받으니 황당했다. 청구내용이 비공개정보에 해당된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렇게 핵에너지를 홍보하더니 정보는 공개할 수 없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그들의 주장대로 핵 발전이 정말 좋은 거라면 대놓고 보여주어야 하는 게 마땅하지 무슨 꼼수라도 있는 것처럼 감출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다. 핵 발전의 발전단가와 부품납품 정보들을 비공개하더니 결국 핵 마피아 비리사건이 터졌다. 시민들의 불안을 괴담으로 취급한 그들에게는 공개할 수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핵 발전관련 정보는 잘 공개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시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큰 문제였다. 밀리시버트, 플루토늄, 멜트다운 등등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 투성이니 신문기사 하나를 읽기도 힘들었다. 그러니 관심 갖기 어려울 수밖에. 방사능에 오염된 일본산 수산물이 수입되는 것에는 열 받아 하면서 핵 발전 자체, 그 근본적인 것에는 시큰둥한 반응들을 보면서 시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탈핵운동의 접근방식이 잘못되었던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핵 마피아들은 수억원의 예산을 들여 핵 발전을 세련되고 예쁘게 포장해 홍보하는데 게임이 될 수 있었겠나. 그동안 우리는 너무 전문적인 언어와 지루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했을지 모른다. 조금 더 쉽게 정보를 전달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핵 발전의 문제에 대해 관심 갖게 할 방법이 필요했다. 그런 고민 가운데 만든 것이 ‘방사능와치’(<www.nukeknock.net)이>다. 방사능와치에는 현재 이슈가 되는 정보와 해외정보, 전문가들의 정보와 더불어 시민들 스스로 찾고 모아온 정보들이 모이고 있다. 그리고 이 정보들을 좀 더 쉽게 보여주기 위해 인포그래픽(정보시각화)작업을 공유하고 있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하나하나 정보가 쌓인다면 중요한 아카이빙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12년부터 시작한 정보공개센터의 ‘탈바꿈프로젝트’에 대해서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알 권리운동을 하는 단체에서 탈핵운동을 한다는 것에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탈핵운동에 영역이랄 것이 있나. 여성운동을 하는 곳에서도 풀뿌리 운동, 교육운동을 하는 곳에서도 ‘탈핵’은 주제가 될 수 있다. “제대로 알아야 안전합니다.” “많이 공개돼야 깨끗해집니다.” “함께 공유해야 희망이 됩니다.”를 모토로 탈바꿈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탈핵운동의 방향과 고민이 어느 정도 정리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장 탈핵을 할 수는 없어도 홍상수감독의 영화 <우리선희>에 나오는 대사처럼 ‘파고 또 파고 가고 파고 가고 파고’하다보면 탈핵에 공감해 주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결국 탈핵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탈핵에 공감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나름의 탈핵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에 보람도 느꼈다. 하지만 고민은 정리되지 않고 더 깊어졌다. 탈핵은 처음부터 간단하게 정리될 수 있는 주제가 아니었다.

 

 

후쿠시마는 더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인가요?

2013년 12월, 탈바꿈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자료집 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민들이 조금 더 쉽게 핵 발전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고 관심 갖게 하기 위해 기획한 자료집이었다. 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한국 핵발전소의 안전, 핵에너지와 대안에너지 등의 내용을 쉽게 풀어내기 위해 9개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제목을 정했다. 그런데 9개의 이야기 중 4번째 이야기의 제목이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후쿠시마는 더 이상 사람들이 살 수 없는 땅인가요?> 후쿠시마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표현하기에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불편한 마음이었다.

 

 

그 즈음 한 살림을 비롯해 땡땡책협동조합, 하자센터 등 여러 단체들과 함께 공동으로 후쿠시마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초청하는 강연회를 주최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후쿠시마지역에서 생산하는 면화로 만든 옷과 인형을 전시, 판매하는 문제로 갈등의 상황이 발생했다. 방사능에 오염되었을지 모르는 물건을 판매한다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중에는 전시도 해서는 안 된다는 항의로 이어졌다. 충분한 설명과 논의의 과정이 없었던 잘못은 분명 있었지만 속상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서울강연 하루 전, 두 일본 활동가와 주최단체들이 만났다. 그리고 강연회를 준비하면서 발생한 갈등상황을 솔직히 전달했다.

 

 

시마무라씨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 수 있다고 오히려 우리를 위로하면서 후쿠시마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일본에서도 후쿠시마 산 물품을 외면합니다. 후쿠시마 지역 주민을 위해 일부러 사주는 곳도 있지만, 사서 그대로 버리는 곳들이 많습니다. 사주기만 한다는 거죠. 문제는 방사능으로부터 안전 한가 아닌가는 누구도 확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건 단순히 수치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기분의 문제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후쿠시마 사람들은 늘 이런 압박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여기서 살아도 되나? 나가야 하나? 이걸 먹어도 되나? 마셔도 되나? 늘 불안해하면서 살아가지요. (중략) 후쿠시마 바깥의 사람들이 자신의 안정감을 위해 ‘후쿠시마가 아니니까 나는 괜찮아’라고 구분지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중략) 사고이전의 후쿠시마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핵발전소를 찬성했던 우리의 잘못도 있으니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사고 이후 이 곳의 사람들이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주고 연대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시마무라씨의 이야기가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동안 나는 당장 후쿠시마에서 사는 사람들을 피난시켜야 한다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피난할 수 없는 상황일 뿐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곳에는 ‘떠나지 않음’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었다.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 후쿠시마의 상황을 알리는 ‘스터디투어’, 에너지자립을 위한 ‘커뮤니티전력’, 먹는 농사에서 입는 농사로의 전환 ‘오가닉코튼’사업 등을 진행하면서 후쿠시마의 회복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계속 마음이 불편했던 네 번째 이야기의 제목<후쿠시마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인가요?>를 <후쿠시마 사람들은 괜찮은 걸까요?>라고 조심스럽게 바꿨다. 

 

 


이 글을 쓰기 얼마 전 우연히 일본의 청년활동가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ZENKO대회 준비위원회’로 활동하고 있는 청년들이었다. (ZENKO: 정식 명칭은 ‘평화와 민주주의를 향한 전국교환회’로 평화, 인권, 환경, 여성, 노동, 문화, 교육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매년 7월 한자리에 모여 토론하고 결의를 다지는 대회)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탈핵’과 또 지난 해 말 아베정권이 통과시킨 ‘특정비밀보호법’반대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 지금 후쿠시마의 상황은 어떤지, ‘특정비밀보호법’이 실제 핵 발전 정보의 공개, 공유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물었다. “후쿠시마를 재건하려고 하는 움직임들은 있으나 얼마나 지나야 후쿠시마의 상황이 좋아질지 모르겠다. 핵사고 이전의 후쿠시마로 절대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후쿠시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을 빨리 피난시켜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도 맞지만 오래전부터 그 마을에서 살아왔던 사람들, 가족과 헤어질 수 없는 사람들을 피난하지 않는다고 비난할 수 없다. 그들 나름대로 후쿠시마를 회복시키기 위해 그곳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핵발전소와 관련한 정보들은 후쿠시마사고 이전에도 잘 공개되지 않았다. 물론 시민들도 관심이 없었고,,, 사고 이후에 정보를 은폐하는 일본정부나 도쿄전력에 항의를 하니까 미비하지만 어느 정도의 정보가 공개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통과된 비밀보호법은 이런 것들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일본시민들도 안다. 비밀보호법이 국방이나 핵 발전과 관련한 정보를 보호함으로써 우리의 알권리와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국회 앞에서 시위도 하고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선전도 하고 있다.”

 

 


일본에서 탈핵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절망보다 희망을 더 많이 보았다. 핵 발전에 대해서 관심 없었던 청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시민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후쿠시마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아니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이었다.

 

 

탈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단절이 아니라 손을 잡는 것이다. 
핵 발전과 관련한 문제는 후쿠시마만의 문제도 아니고 일본만의 문제도 아니다. 신규핵발전소가 들어서는 영덕만의 문제가 아니고, 송전탑공사가 강행되고 있는 밀양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십기의 핵발전소가 존재하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문제이고 핵 발전이 만드는 불평등, 반 평화, 반인권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전 인류의 문제다. 그동안 우리는 후쿠시마의 절망적인 상황에 대해서만 말해 왔다. 후쿠시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만들어가는 희망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탈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단절이 아니다. 그들이 만들고 있는 희망의 과정에 참여하는 것, 함께 희망을 만들기 위해 손을 잡는 것. 그것이 탈핵을 가능하게 한다. 온 산과 들에 물이 가득 차오르는 물오름 달. 3년 전 후쿠시마의 절망을 기억하되 이제 절망이 아닌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 얼었던 땅과 물이 녹는 틈사이로 생명이 솟아나 듯, 탈핵의 희망도 그대와 내가 마주잡은 손 사이로 솟아난다.

 

 

# 이 글은 한살림의 '살림이야기'(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955)에도 편집되어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