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숨 막히는 활동, 그만두는 활동가

opengirok 2014. 3. 17. 10:29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소장



숨 막히는 활동, 그만두는 활동가


집에서 빈둥거리다 TV에 ‘제니퍼 소프트’ 라는 회사가 소개된 것을 본 적이 있다. 회사에 수영장이 있어 업무 중에 자유롭게 수영을 하고, 전 직원들은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이 주 35시간 노동시간을 자신이 알아서 채운다. 회사가 매출을 올리는 이유는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서라고 외치면서 천국 같은 회사를 소개하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외국의 ‘구글’ 계 회사인 줄 알고 있다가 한국의 중소기업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직원들은 너무 행복해 보였고, 회사라는 느낌보다는 놀이터에 가까워보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장이 방송 인터뷰에서 ‘좀 놀면 안되나요?’라는 멘트까지 날리면서 자신의 역량과 능력을 가장 열정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기본 전제조건은 ‘자율성’이라고 강조했다.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회사는 매출이 매년 성장하고 있다.


이 방송을 보면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시민단체에서 구현해야 할 정신들을 일반기업이 먼저 실천하고 있다는 것에 묘한 자괴감이 생겼다. 그 방송을 보다가 시민단체가 독창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제도를 연구해 보았다. 물론 정보공개센터는 그동안 많은 복지체계를 갖춰왔다.  여름・겨울휴가 각각 7일, 본인의 결혼 10일 (공휴일 제외), 본인 및 배우자의 직계존비속, 형제 상 10일(공휴일 제외), 3년 근속자 한 달 유급휴가, 7년 근속자 1년 유급휴가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시민단체가 구현해야 할 정신들을 일반 기업들일 먼저 실천하고 있는 현실


높은 직책에서 활동을 하다 보니 결심하면 바로 실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우선 13년 4월부터 당직 한명을 제외하고는 금요일 오후 2시 퇴근을 실시했다. 퇴근해서 자기계발이나 문화생활을 하도록 배려했다. 주 35시간을 실천해보는 것이다. 처음 시행했을 때는 커피숍에 가서 일하는 활동가들도 있었지만 서서히 정착되어 가고 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다른 단체들도 이 제도를 벤치마킹 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업무특성상 야근, 주말근무가 빈번한 활동가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제도이다.


이뿐만 아니라 활동가들의 자율성을 위해 정보공개센터는 ‘선 결재’를 거의 없앴다. 활동가들이 대부분 스스로 일을 처리하며 일주일에 한번 회의시간에 서로의 상황을 공유할 뿐이다. 자신의 활동에 대한 회의, 언론접촉, 예산집행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자신이 처리한다. 물론 한 달 단위로 지출내역을 세심하게 검증한다. 빈번한 결재는 자율성을 망치며, 이것이 모여 단체 전체가 관료화 된다. 결재는 실수를 걸러주는 역할도 하지만 동맥경화처럼 일의 흐름을 막기도 한다.


활동가들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인 회의시간은 내부 회의는 30분, 임원회의는 한 시간 이내로 마치는 것을 원칙으로 잡았다. 회의 시간이 길다고 해서 논의가 내밀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긴 회의시간을 통해서 활동가들은 더욱 큰 상처를 받거나 지쳐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율성을 위해 선결재를 없애고, 회의는 짧게


앞에 언급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급여이다. 단체와 임원이 존재하는 이유는 활동가들에게 최대한 많은 활동비를 보장해주고, 보호해 주는 역할이다. 정보공개센터는 재정이 허락하는 대로 활동가들의 급여와 상여금을 높이고 있고, 평생 직업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활동가도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 온갖 지출로 스트레스가 노출된다. 여유롭지는 않지만 현실적인 여건이 허락하는 데 까지 급여를 올려야 한다. 덕분에 창립 6년차인 현재까지 활동가들은 단 한명도 사직서를 내지 않고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들어 활동가들의 안 좋은 소식들이 많이 들려온다. 마음이 참담하다. 이 사회가 활동 열매만 따 먹고, 그들의 대한 책임을 방기한 탓이다. 또한 많은 활동가들이 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서서히 분야에서 떠나가고 있다. 활동가들이 단체를 떠나는 것은 인내심이나 소명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단체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이 자주 그만두는 단체는 스스로 문제가 있음을 자각하고 부끄러워해야 한다.


활동가들이 행복하지 않는 곳에서 건강한 활동이 나올 수 없다. 노동법은 우리 선배들이 피땀으로 만든 제도이며, 이 제도가 가지고 있는 정신들을 실천하고 앞서가는 것은 우리 후배들의 몫이다. 활동가들의 노동조건을 열악하게 만들면서 이 세상을 개혁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많은 단체들이 제니퍼 소프트와 같이 활동가들의 행복을 위해 깊이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글은 <시민운동 플랜B>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