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공개사유] 변호사시험 석차 공개, 능력주의 과잉은 아닌가

opengirok 2021. 10. 18. 12:18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사진: 뉴시스)

 

정보공개센터 강성국 활동가

 

정보의 흐름을 관찰하는 입장에서, 종종 공공기관들이 강경하던 태도를 바꿔 기존에 공개하지 않던 정보를 공개하기 시작할 때가 있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곧 그 정보가 담지하고 있는 어떤 내밀한 가치를 사회가 욕망하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될 때가 있다. 지난 9월 24일 법무부는 변호사시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예고 했는데 아마도 이 개정안이 그 최신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변호사시험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기존 법률에서 변호사시험의 합격자가 해당 변호사시험의 5년 내에 한해서 본인의 성적을 공개 청구할 수 있었는데 비해 개정 후에는 성적뿐 아니라 및 석차(총득점에 대한 순위)까지 공개 청구할 경우 이를 공개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사실 이번 개정이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작스레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지난 2019년 1월 시행된 제8회 변호사시험의 한 합격자가 법무부에 자신의 석차 정보를 공개해 달라는 정보공개청구를 냈고, 이 청구에 대해 법무부는 향후 변호사시험 업무에 지장을 초래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비공개했다. 이에 정보공개청구를 냈던 청구인은 변호사시험 합격자답게 법무부를 상태로 비공개를 취소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이 사건의 1심 재판부는 변호사시험 석차 정보의 공개가 변호사시험 제도의 도입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볼만한 뚜렷한 근거가 없고 로스쿨 교육과 변호사시험의 합격자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는 취지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2심 재판부도 다르지 않았다. 현행 변호사시험법에서는 본인의 성적 공개를 청구할 수 있고, 법무부장관은 청구한 사람에 대하여 그 성적을 공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다른 특정한 정보를 비공개 사항으로 정하는 취지는 포함돼 있지 않다며 원고의 알권리 쪽의 손을 들어줬다. 법무부가 항고를 거듭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갔지만 대법원 역시 지난해 10월 법무부의 상고를 심리불속행 기각판결로 원고승소 판결의 원심을 확정했다.

그런데 이처럼 변호사시험 석차를 공개하라는 확정판결이 한 차례 있었다고 해서 법무부가 태도를 바꿔 석차 공개를 아예 입법하면서 공식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이 공공기관에 흔한 모습은 아니다. 이런 선회에는 몇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추측해 보건대 그간 변호사시험 합격자들의 성적 공개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와 함께 석차 공개에 대한 정보공개청구가 그동안 상당히 빈번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변호사시험법에 이미 성적에 대해 당사자의 청구가 있는 경우 공개하도록 하는 조항이 존재하므로 향후 일관된 정보공개청구처리와 혼선 없는 공개의 시행을 위해 석차의 공개에 관한 내용도 입법화했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법조직역 취업에 성적과 함께 상대적인 평가 기준인 석차 정보를 활용함으로 보다 경쟁적 구조를 조성해 법조계의 뿌리 깊은 학벌 문제를 어느 정도 완화 시키려는 목적이 작용했을 수 있다.

특히 마지막 목적이 중요한데, 법조계 학벌 문제는 이미 오랜 구악임에도 갈수록 그 정도가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최근 한 언론사 보도에 따르면 올해 소위 6대 로펌(김앤장·태평양·세종·광장·율촌·화우)에 새로 입사한 전체 신입 변호사 중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로스쿨 출신이 77.3%를 차지했다고 한다. 성균관대 한양대, 중앙대 등 비SKY 서울 소재 로스쿨 출신 신입 변호사를 합치면 94.6%에 달했다. 6대 로펌 외에 선망되는 주요 법조직역들의 사정은 크게 다를 수 있을까? 아, 물론 SKY 로스쿨 정원의 절대다수는 SKY 학부 졸업생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와 해법이 상당히 어긋나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상황이 이런데 변호사시험 합격자들에게 석차만 공개한다고 과연 무언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인가. SKY 로스쿨들은 기존 사법시험 합격자를 많이 배출한 탓에 다른 로스쿨보다 월등히 많은 학생 정원을 차지하고 있는 상태다. 따라서 SKY 로스쿨 출신 합격자들이 거의 절대적인 확률로 상위권 석차도 차지할 것은 자명하다. 복권 판매량이 많은 복권방이 당첨자도 더 많이, 더 자주 나오는 간단한 이치다. 그렇게 되면 SKY 로스쿨들은 기존 SKY 특권에 상위권 석차 특권까지 얹는 셈이다.

로스쿨 진학과 교육, 변호사시험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은 법조 지망생들의 성적과 석차에 대한 알권리는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지금의 기울어진 로스쿨 제도, 상대평가화한 변호사시험, 학벌주의의 폐해들을 그대로 방치하면서 변호사시험 석차 공개를 개선이라고 하는 것은 게으름과 무능, 그리고 SKY 로스쿨 특권에 대한 야합이다. 이대로라면 정부는 지금 변호사시험 합격자의 ‘알권리’와 ‘공정한 경쟁’이라는 구실로 이미 대학 입시와 로스쿨 진학이라는 능력주의에 변호사시험 석차라는 능력주의(meritocracy)를 이중으로 덧씌우려는 것은 아닌가. 합격자들의 알권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문제가 있으면 그저 그 문제를 먼저 해결하라는 말이다.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변호사법 제1조 제1항에 명시된 변호사의 사명이다. 우리 사회는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어느 대학, 어느 로스쿨 출신으로 변호사시험 몇 등이 되라고 이야기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