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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00만원 들여 공무원 해외 보냈더니... 결과물은 표절

opengirok 2022. 3. 31. 15:14

▲ 해외 연수를 다녀온 공무원들이 작성한 보고서. ⓒ 정민규

최근 공무원 공채 경쟁률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공무원은 여전히 선망받는 직업이다. 정년까지 안정된 고용, 공무원 연금, 눈치 볼 필요 없는 육아휴직 등 복지와 노후도 평범한 노동자들보다 탄탄하다. 거기에 석·박사 과정과 해외 사례 연구 등 국외 훈련이라는 유학 기회도 주어진다. 그러나 최근 한 언론사의 보도를 통해 지방공무원의 장기 국외 훈련 보고서 대부분이 비공개되고 있으며 그나마 공개된 보고서 상당 부분이 표절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관련 기사).

보도된 사례를 살펴보면, 2년간 미국 연수를 다녀온 서울시 공무원의 보고서가 정부 용역보고서와 학술 논문이 짜깁기된 채로 작성되었고, 훈련자가 직접 쓴 내용은 한쪽 분량의 결론에 불과했다. 취재 결과 서울시 장기 국외 훈련 보고서 셋 중 하나가 표절로 밝혀졌고 서울시와 더불어 강원도와 울산, 충남에서도 표절된 보고서가 확인되었다. 지방공무원의 장기 국외 훈련이 제대로 감독되지 않고 있다는 제도적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장기 국외 훈련의 경우 해외 훈련에 필요한 소요 경비 전반이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관리·감독이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장기 국외 훈련의 결과물인 보고서가 허술하게 작성되고 이에 대한 자체적인 검증이 없었다는 것이 드러나 국외 훈련 제도가 근본적으로 필요한지에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정보공개센터는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어느 정도의 장기 국외 훈련이 진행되고 있는지 기본 현황 파악을 위해 정보공개청구를 했고 16개 광역시·도에서 장기 국외훈련 제도가 꾸준히 시행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1인당 평균 7700만원

▲ 광역시·도 장기국외훈련 현황(2017~ 2021년) 정보공개청구 결과 분석 ⓒ 정보공개센터

 

▲ 광역시·도 장기국외훈련국가 현황(2017~2021년) 정보공개청구 결과 분석 ⓒ 정보공개센터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자체 국외 훈련을 운영하지 않고 있는 충청북도를 제외한 16개 광역시·도단체의 공무원 총 459명이 장기 국외 훈련을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전체 지원비용만 총 352억 원이다. 459명의 공무원이 평균 17개월의 장기 국외 훈련 기간 동안 1인당 평균 약 7700만 원의 훈련 비용을 지원받은 것이다. 

장기 국외 훈련지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곳은 미국이다. 459명의 국외 훈련자 중 절반 이상인 265명(57%)이 미국에서 국외 훈련을 진행했다. 다음으로는 영국, 중국, 일본, 캐나다 등의 순이다. 특히 대전, 부산, 울산의 경우 국외 훈련자 전원이 미국에서 국외 훈련을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자치단체 업무와 지역별 특색이 다양한 만큼 여러 국가의 정책이나 경험들이 필요하지만, 국외 훈련이 영미권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5년간의 국외 훈련 인원과 지원 금액이 가장 많은 지자체는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훈련결과보고서 표절로 논란이 된 서울과 강원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의 경우 167명의 공무원이 국외 훈련을 떠났으며 그 지원금액만 총 143억 400만 원이다. 다만 서울시의 경우 전체 공무원 수가 약 1만 명(2020년 기준 서울시 본청 공무원 현원 총 1만 973명*)으로 17개 광역시도 중 가장 많은 공무원 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지원이 많아 보이지만, 이를 서울시 본청 공무원 수에 비해 보면 서울시 공무원 중 약 1% 정도가 5년간 국외 훈련을 진행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난 5년간 143억 400만 원의 상당한 예산이 사용된 만큼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한데도 표절로 얼룩진 보고서를 통해 국외 훈련 제도의 부실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강원도의 경우 84명의 공무원이 국외 훈련을 진행했으며 총 50억 원의 훈련 비용이 지원되었다. 자치단체 중 공무원 현원이 많은 수준은 아닌 강원도는 타 지역에 비해 많은 비율이 국외 훈련을 진행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강원도 전체 공무원(2020년 기준 강원도 본청 공무원 현원 총 2321명*) 중 약 3% 정도가 지난 5년간 국외 훈련을 진행한 것으로 드러나 16개 단체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특히 강원도의 경우 지난 5년간 석·박사과정을 지원하는 학위 과정은 단 한 건도 없었으며 모두 해외 사례 등을 연구하는 직무훈련 과정으로 평균 11개월짜리 국외 훈련이었다. 많은 직원에게 다양한 국외 훈련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강원도 역시 훈련보고서가 표절 의혹에 휩싸여 비판을 피할 길은 어려워 보인다. 

*서울시 및 강원도 본청 공무원 현황 :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인사통계(2020년 12월 31일 기준) 현원 기준

훈련 내용이나 업무 연관성 검증 안돼

▲ 광역시·도 장기국외훈련 현황(2017~2021년) 정보공개청구 결과 ⓒ 정보공개센터

장기 국외 훈련에서 1인당 평균 지원금액이 높은 단체는 대전, 경남 순으로 대전의 경우 국외 훈련자 1인에게 월평균 760만 원 정도의 훈련비를 지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대전을 비롯한 대부분의 광역시·도단체는 장기 국외 훈련보고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지 않아 훈련의 내용이나 업무 연관성 등은 검증 자체가 안 되는 실정이다.  

또한 홈페이지에 장기 국외 훈련보고서를 공개하고 있는 서울, 강원, 울산, 충남 모든 지역에서 훈련보고서 표절 현황이 드러난 것으로 밝혀졌다. 나머지 지역의 경우 장기 국외 훈련보고서가 제대로 작성되었는지 확인조차 할 수 없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지방공무원 교육훈련 운영지침'에는 장기 국외 훈련보고서를 기관 홈페이지 등에 게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운영지침조차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나마 장기 국외 훈련보고서 표절 현황이 드러난 서울과 강원의 경우 자체 감사위원회에서 조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강원도의 경우 장기 국외 훈련 계획 심의 강화, 보고서 표절검사 의무화 및 성과평가 시행 등 대대적인 개선방안을 제시하여 장기 국외 훈련 제도가 더욱 실질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했다. 비록 훈련보고서 표절이 드러났지만, 늦게라도 이러한 긍정적인 개선 방향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보고서 자체가 사전에 공개되어 언론이나 시민들의 검증받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장기 국외 훈련은 공무원 개인의 개발을 넘어 지방자치단체의 업무 수행과 직무 능력 향상을 위해 만들어진 교육 과정이다. 비록 심사과정이 존재하긴 하지만 특정 공무원에게만 세금으로 지원되는 제도이기 때문에 훈련 과정에서 발생한 경험들은 공유되어야 하며, 그 훈련이 목적과 취지에 맞게 수행되었는지 검증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장기 국외 훈련을 시행하는 지방자치단체는 반드시 훈련보고서와 더불어 국외 훈련과 관련된 계획, 현황, 심사위원회 등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한다. 

대부분의 광역시·도단체가 공무원의 장기 국외 훈련을 진행하고 그 예산 역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여러 논문과 연구보고서를 그대로 반영할 정도로 작성되고 있는 훈련보고서 표절 정황만 보더라도 굳이 세금을 들여 해외 교육이 필요한지에  근본적인 의문이 드는 상황이다. 

공무원의 장기 국외 훈련제도가 필수적인 제도라면, 지방자치단체는 장기 국외 훈련제도가 공무 수행이나 행정에 얼마만큼의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지 투명한 공개를 통해 그 필요성을 스스로 입증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그 정보가 알고싶다'시리즈에도 연재되었습니다. 

* 17개 광역시도 정보공개청구 결과(바로가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