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동 칼럼

355만 명의 삶을 결정하는 '밀실 회의' 이제 그만!

opengirok 2022. 4. 21. 17:11

정보공개센터 김예찬 활동가가 매달 은평시민신문에 기고하고 있는 정보공개 칼럼(링크) 입니다.

 


 

정부는 정책 결정과 사업 심의 등을 위해 매일 매일 수많은 회의를 엽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1년 6월 기준, 법률과 대통령령에 근거한 행정기관의 각종 위원회가 모두 622개에 달합니다.

그 중에서는 기상관측표준화위원회(기상청)나 기계식주차장사고조사판정위원회(국토교통부) 처럼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위원회도 있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대통령 직속)나 4차산업혁명위원회(대통령 직속), 사면심사위원회(법무부)처럼 가끔씩 언론에 떠들썩하게 등장하는 위원회들도 있습니다.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무슨 일만 생기면 위원회부터 새로 만든다는 부정적인 인식도 있지만, 어쨌거나 이런 위원회들이 정부 정책과 사업의 운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구조임은 부정하기 어려울 듯 합니다.

이렇게 각기 위원회들이 맡은 바에 따라 국가의 일을 하면서 시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한국 사회에 엄청나게 강한 영향을 줄 결정을 하는 위원회가 있습니다.

매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고용노동부)가 바로 그곳입니다. 최저임금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의 수는 2022년을 기준으로 355만명으로 추정되며, 이는 전체 임금노동자 2044만명의 17.4%에 달합니다.

물론 최저임금 결정액에 따라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만 355만 명이라는 것이고, 이들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사업체, 이들의 소득에 따라 생계에 영향을 받을 가족들, 노동시장 전반에 대한 영향 등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한국 사회 전체에 강력한 영향을 주는 위원회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최저임금 인상률 및 영향율 변동추이(e나라지표)

 


이렇게 광범위한 영향력을 가진 위원회인 만큼, 최저임금위원회의 논의 내용에 대한 관심도 매우 높습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매년 3월 말에 활동을 시작해, 90일 간의 심의 과정을 거쳐 최저임금을 결정합니다.

보통 이 기간 동안 최저임금에 대한 언론보도가 집중되는데, 최저임금 인상률에 대한 단순 예측부터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이 기업에 부담을 준다는 부정론과 최저임금 인상으로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는 긍정론이 맞부딪히기 마련입니다.

올 해에는 특히 대선 결과와 맞물려, 윤석열 당선자의 ‘최저임금 차등 적용’ 주장이 최저임금제도를 둘러싼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언론보도 역시 예년보다 더욱 요란해질 것이구요.

 

2021년 7월, 최저임금 보도의 편향성을 비판한 전국언론노동조합 토론회(링크)

 



문제는 이렇게 한국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그만큼 언론의 관심을 모으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정작 어떤 결정 과정을 거쳐 최저임금이 정해지는지 시민들이 알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최저임금위원회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최저임금위원회는 공익위원, 노동자위원, 사용자위원 각각 9명씩 모두 27명의 위원으로 전원회의를 구성합니다. 기본적으로 이 27명의 논의와 의결에 따라 최저임금 액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전원회의 자리에 위원 27명만 참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최저임금법에 따라 위촉된 관계 기관 공무원으로 구성된 3명의 특별위원에게도 발언권이 주어집니다. 법적으로 최저임금위원회 회의 자리에 참여하도록 정해져 있는 것은 이렇게 총 30명입니다. 그런데, 최저임금법에는 ‘의견청취’ 조항이 있습니다.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경우에는 관계 근로자와 사용자, 그 밖의 관계인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 조항에 따라 관례적으로 노측 위원과 사측 위원들이 각각 배석자를 동반합니다. 여기에 위원회 사무국 직원 등이 함께 하면, 보통 40~50명 가량이 회의장에 함께하게 됩니다. 그 외에는 방청도 허가 되지 않고, 회의 영상 촬영이나 기자들의 참관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최저임금이 어떻게 결정 되는지 온전히 살필 수 있는 사람은 이 수십 명에 불과합니다. 그야말로 ‘비공개’ 회의인 셈이죠.

2021년 6월, 희망제작소에서 펴낸 <최저임금 결정구조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이라는 리포트에는 2017년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 녹취록의 일부가 실려 있습니다. 최저임금위원회 회의공개를 둘러싼 노동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의 입장을 생생하게 전하는 자료입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밀실회의로 남아서는 안된다, 배석과 방청을 확대하고, 기자 취재와 TV 생중계를 논의해보자’는 노동자위원의 발언에 대해, 사용자위원은 ‘제대로 된 협상이 되기 위해서는 밀실협의가 되어야 한다’고 반박합니다. 

이와 같은 논박에서도 드러나듯이, 사실 최저임금법이나 그 시행령에는 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해야 한다는 내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최저임금위원회 운영규칙에 회의 결과를 대외적으로 밝히기 위해서는 위원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규정으로 정한 것이지, 법령으로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결국, 최저임금위원회 스스로 공개 여부를 결정하면 될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사용자 측 위원들의 강한 반대와 공익위원들의 외면으로 회의는 여전히 밀실 속에 잠겨 있는 것입니다.

만약 회의 자체를 공개하진 않더라도, 회의 속기록을 바로바로 공개한다면 의결 과정의 투명성 확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최저임금위원회는 속기록도 공개하지 않습니다. 홈페이지를 통해 심의 결과와 회의 과정을 서술한 회의록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이 회의록 역시 최저임금 결정액이 고시된 이후에나 한꺼번에 공개합니다. 회의가 끝나고 한 두달 후에야 그 과정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뒤늦게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색 맞추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은 한국 사회 전체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칩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달린 회의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회의인 만큼, 가능한 많은 시민들이 그 과정을 살피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회의를 공개해야 합니다. 

특히 노동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은 각각의 이해당사자를 대표해서 최저임금위원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그 대표성에 걸맞게 최저임금 심의에 임하고 있는지 자신들이 대표하는 이해당사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입장을 보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한 대표성의 문제에 대해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최저임금위원회는 ‘밀실’을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