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세금으로 흥청망청하는 폐습, 바꾸자

opengirok 2009. 11. 27. 11:31

[시론] 하승수 제주대 법학부 교수

 
11월말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연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에게 연말은 한 해를 정리하고 그 다음해를 계획하는 때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에게도 연말은 중요한 때이다. 그 다음 해에 사용할 예산에 대한 심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때이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의 예산심의도,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심의가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4대강 사업뿐만 아니라, 잊을 만하면 바꾸는 동네 보도블럭 예산까지 지금 결정될 시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밥 먹고 살기도 바쁜데, 예산 같은 데 신경 쓸 여유가 어디 있느냐’고 하실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예산은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내가 돈 벌어서 내 삶을 가꾸는 것 못지않게, 공동체의 돈으로 내 삶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 그렇게 돼야만,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증과 불안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 정부가 예산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나를 포함한 우리의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 조선일보 11월25일자 3면


 
사실 상식적인 수준의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타당성도 검증되지 않은 4대강 사업에 20조원이 넘는 예산을 쓰고, 매년 관례적으로 도로 닦는 데 예산을 쓰는 것만 중단되면 많이 좋아질 것이다. 얼마 전 일본에서 민주당이 집권하면서 내세운 핵심 방향이 토건국가에서 탈피하겠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쓸모없는 도로와 댐을 건설하던 예산을 생활문제를 해결하는 데 돌리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서 그런 방향전환이 이루어질 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방향전환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중앙정부든 지방자치단체든 예산을 볼 때에 염두에 둘 핵심 포인트는 결국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흥청망청 낭비되는 문제이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고 해도, 밥 먹고 선물 돌릴 정부예산은 줄지 않는 게 현실이다. 왜 국민이 낸 세금으로 1인당 몇 만원이 넘는 비싼 밥을 먹고, 명절 때면 자기 돈이 아니라 국민세금으로 선물을 사서 돌리는 지 의문이지만, 우리나라 공공기관에서 그런 일들은 늘 벌어지고 있다.
이런 ‘눈먼 돈’들을 잘 찾아 먹는 사람들도 있다. 각종 단체에 지급되는 보조금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심지어 관변단체들의 경우에는 지방자치단체들로부터 보조금을 받아서 회관을 마련하기도 했을 정도이다. 대학교수들 중에는 매년 정부에서 용역 받는 것이 또 하나의 수입원으로 된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저렇게 관공서의 예산은 줄줄 새고 있다. 이 정도 되면 세금 꼬박꼬박 내면서도 ‘사는 게 바빠서’ 정부가 하는 일에는 신경 쓰지 못하는 평범한 시민들이야말로 바보인 셈이다. 
두 번째는 졸속으로 벌이는 사업이다. 큰 건물 지었다가 제대로 사용도 못하고 방치하는 경우들을 흔히 본다. 최근 논란이 된 성남시의 3천억 원짜리 청사처럼 과시성, 전시성으로 사용되는 예산들도 많다. 타당성이 의심스러운 사업을 일단 저지르고 보는 경우들도 많다. 이런 졸속 대형 사업들에 수많은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 물론 가장 나쁜 것은 예산심의도 하기 전에 미리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이 그런 예이다.
정부가 세금을 이런 식으로 쓸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시민들이 이런 사실들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정부가 예산을 어떻게 쓰는지를 속속들이 안다면 아마도 정부가 지금처럼 예산을 낭비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보니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들은 예산과 관련된 정보는 최대한 감추기에 바쁘다. 중앙정부의 예산서를 찾으려고 중앙부처 홈페이지를 뒤지다보면, 찾다가 지치기가 일쑤이다. 그나마 지방자치단체의 경우에는 예산안이 지방의회를 통과한 후에 홈페이지에 예산서를 공개하기는 한다.
    

▲ 하승수 제주대 법학부 교수

이런 상황에서 유일한 희망은 시민들이 예산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우선 자기가 사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부터 관심을 가져 보면 좋겠다. 내년에 지방선거도 있는데, 지방자치단체장이 어떻게 시민의 세금을 써 왔는지, 지방의원들은 어떻게 예산심의를 했는지부터 관심을 가져보면 좋을 것이다. 인터넷으로 지방자치단체 홈페이지나 지방의회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면, 자료들을 볼 수 있다. 보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정보공개청구를 해 보면 된다. 그게 아니면 자기가 사는 지역의 시민단체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세금으로 흥청망청 잔치를 벌이는 나쁜 폐습을 근절할 수 있는 주체는 ‘깨어있는 시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