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꽃도, 스케이트장도 필요 없다. 광장을 시민에게

opengirok 2009. 12. 2. 15:28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사무국장

몇 년 전 독일과 체코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 두 나라를 방문하면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역시 맥주였다. 너무나 시원하고 쌉쌀한 맥주 맛에 체류기간 내내 줄기차게 마셨던 기억이 난다.

그 다음으로 나를 감동시켰던 것은 바로 광장 문화였다. 작은 도시 마을이든 큰 도시든 시가지에는 광장이 있었다. 광장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재잘거리는 아이들, 악기를 연주하면서 아름다운 화음을 내는 사람, 사랑을 속삭이며 포옹을 하고 있는 연인들, 맥주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화가, 누워 있는 노숙자, 그리고 무엇인가 항의를 하면서 집회를 하고 있는 무리들.

다 각자의 방법대로 광장을 즐기고 있었다. 광장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매우 즐겁고 유쾌했다. 거기에는 아름다운 꽃밭도 없었고, 화려한 장식물도 없었으며, 하늘 높이 올라가는 분수도 없었다. 유럽의 광장은 소박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얘기하고, 즐기는 곳 이었다. 유럽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광장이라는 공간이 도시에서 왜 중요한지 몰랐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서울시에도 광장 바람이 불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시장이었을 때 서울광장을 만들었고, 오세훈 시장은 광화문 광장을 만들었다. 특히 광화문 광장을 만든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매우 기분이 좋았다.

차들의 전유물에 불과했던 광화문을 시민들에게 돌려준다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을 일인가?
서울시 가장 중심부에 있는 광화문 광장에서 유럽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벌어진다고 하니, 상상만 해도 기분 좋을 일이었다.


                                                                                       <사진출처:노컷뉴스>

하지만 광화문 광장이 완공되었을 때 내 눈을 의심했다. 우선 광장을 가려면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다. 양쪽으로 차가 달리고 있고, 광화문 광장은 그 안에 포위되어 있는 것이다. 광장을 가기 위해서 한참을 신호등을 기다렸다가 건너야 광장을 들어갈 수 있다. 이 어색한 장면이 서울시 한 중간에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세계적으로 양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너야 갈 수 있는 광장이 존재 하는 지 궁금하다. 문제는 그 뿐만 아니다. 근엄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경찰들이 곳곳에서 삼엄한 감시를 하고 있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한두 명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는 것은 본 적이 없지만 광화문 광장처럼 삼엄하게 경찰들이 서 있는 광장은 본적이 없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시민단체에서 광장 조례 개정 촉구를 위해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하다가 활동가들이 유치장 신세를 진적도 있다. 그들은 그 어떤 위협적인 행동도 한 적이 없고, 자신들의 정당한 주장을 시민들에게 얘기했을 뿐인데 유치장에 갇혀 있어야 했다. 이렇게 사람이 주체가 되어서 하는 행사에는 광화문 광장은 매우 인색하다.

하지만 사람 주체가 아닌 구경거리를 만드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한겨울에도 분수는 계속 올라가고 있고, 계절마다 억 단위를 돈을 들여 꽃을 갈아 치운다. 게다가 최근에는 그 꽃도 없애고, 겨울철을 맞이해 스케이트장을 만들고 있다. 광장에 전시회는 왜 그리 많은지, 월마다 전시회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시설 위주로 만들다 보니 관리비가 많이 지출되는 것은 당연하다. 얼마 전 필자가 일하고 있는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광화문 광장 한달 관리비용이 2억 6천만원 정도 지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상당수가 인건비와 수도광열비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이는 곳에 정규직 직원이 18명이나 있다는 것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광화문 광장 뿐만 아니라 서울광장도 문제투성이다. 광화문 광장처럼 온갖 시설로 채워져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곳은 사람들은 주체가 되지 못한다. 관 중심의 큰 공연이나 행사들은 허가가 잘 나지만 조금이라도 시위나 집회 냄새가 나면 바로 허가가 나지 않는다.

그곳에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서 공연을 하거나, 토론을 하는 모습을 찾기 힘들다. 그 곳은 광장이 아니라 잔디로 채워져 있는 빈 공터일 뿐인 것이다.

앞에서 언급 한 것처럼 서울을 대표하고 있는 두 광장은 철저히 사람이 배제되어 있다. 대신 그 자리에 각종 시설과 볼거리와 행사로 채워져 있다. 광화문 광장은 흡사 도심 속 놀이공원 같기도 하고, 전시회 공간 같기도 하며, 가끔은 거대한 중앙분리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서울시 광장은 마치 비어있는 축구 경기장을 보는 듯하다. 유럽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광장 문화를 서울에 있는 광장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도시에는 아고라(agora)라고 하는 광장이 있었다. 이 낱말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란 뜻이다. 아고라는 도시의 중심부나 항구 옆에 있었는데, 나중에는 시장(市場)을 뜻하게 되었다. 고대 로마의 포룸(forum)도 아고라같이 시민의 사회생활의 중심이 되는 광장이었다. 이 광장은 기능이 세분화되면서, 사법광장, 상업광장 등으로 분화되었다.

이와 같이 광장은 철저히 사람을 위해 만들어져야 하는 곳이다. 광장은 구경거리가 있는 놀이공원이 아니라 지친 도시생활인들의 휴식처가 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지금 광장 문화는 모든 것을 다시 바꾸어야 한다. 광장은 도시인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곳이 되어야 한다.

현재 광장을 시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취지로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와 야당에서는 서울시 광장 조례개정운동을 벌이고 있다.

서울광장사용조례에 따르면 서울 과장은 서울시장의 허가를 받은 행사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광장은 서울시의 관제행사장으로만 이용되고 있다. 서울광장은 헌법으로 보장된 모든 종류의 행사가 가능하도록 허가제를 신고제로 조례를 바꾸자는 주장이다. 게다가 광화문 광장은 허가제일 뿐 아니라 교통 혼잡이 예상되는 경우 경찰에도 허가를 받도록 되어있다. 사람이 모이는 것 자체가 허가 대상이라는 뜻이다. 이 말도 안되는 조례를 개정해 광장을 시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때가 왔다.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부터 이 문제는 논의되고,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언제쯤이면 서울광장과 광화문 광장을 사람이 중심 되는 공간으로 변화될 수 있을까?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이 물음에 진지한 토론과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