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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캠페인]‘학습 준비물 예산’ 교육부 지침, 잘 지켜지고 있나

opengirok 2009. 11. 30. 10:17

1명당 2만원 ‘학습 준비물 예산’


그날도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인 큰딸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 목소리에선 걱정과 미안함이 배어났습니다. “아빠, 내일 학교에 수채물감, 팔레트, 붓, 물통을 가져가야 되는데 깜박했어요. 집에 올 때 사올 수 있어요?” 직장에 다니는 아내도 퇴근 뒤 갓난아기를 보느라 정신이 없던 터였습니다.


이미 밤 9시였고, 일을 마무리하려면 1시간은 더 필요했습니다. 문구점은 문을 닫았을 테고, 집 근처 대형마트가 밤 12시까지 한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사무실에서 경기도 안산시의 집까지 가는 데는 두 시간쯤 걸립니다. 서둘러 일을 마치고 마을버스와 지하철로 갈아탔습니다. 안산에서 대형마트 앞에 내리니 자정 5분 전이었습니다. 마구 달려 딸의 준비물을 겨우 살 수 있었습니다. 임무를 완수하고 한숨 돌린 뒤에야 회사 동료가 사무실을 나서는 제게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애들은 학교 안에 ‘문구점’이 하나 있다던데. ‘학습 준비물비’를 따로 마련해두라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예산 지침이 있대. 애들 1명당 2만원이라던가. 우리 애 다니는 학교는 2만5000원인가 해서, 애들이 맨몸으로 학교에 가.”


교과부의 지침이라는데, ‘지침’이다 보니 지키는 곳도 있고 지키지 않는 곳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동료는 서울 강남구에 살고 있습니다. 물감이야 소모품이니 계속 사야겠지만, 팔레트·붓·물통은 학교에서 한 번
사면 선후배들이 함께 쓸 수 있을 겁니다. 그날 저는 준비물에 2만원 넘게 썼습니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학교 급식비가 밀린 아이들도 많다던데, 그런 집에선 학교 준비물도 큰 부담일 겁니다. 진정한 ‘무상교육’이라면 아이들이 아무 걱정 없이 배우고 먹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이들 앞으로 학습 준비물비가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정보공개청구제도로 확인하고 싶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감시로 우리 아이들이 조금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재훈 건축설계사(세 아이의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