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보수언론, 유엔도 좌파라고 우길텐가?

opengirok 2009. 12. 29. 13:45

투명사회를위한 정보공개센터 하승수 소장 (변호사)








 


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조례 내용은 국제조약의 구체화일 뿐



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조례 초안이 발표된 이후에 논란이 뜨겁다. 일부 보수언론은 '좌파', '좌편향' 같은 용어를 써가며 조례에 대해 색칠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 초안을 좌편향이라고 한다면, 유엔이 좌파이다. 왜 그런지는 아래에서 소상하게 밝힐 것이다.



한편 필자가 왜 이 글을 쓰게 되었는지도 밝혀야 할 것 같다. 필자는 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조례 초안 작성을 위한 연구용역(2009년 10월~12월초순까지 진행)에 참여했던 사람이다. 연구용역팀이 제출했던 조례 초안과 이번에 발표된 조례 초안에는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틀이나 핵심내용은 유사하다. 따라서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부당한 비난을 보면서, 필자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논쟁에 참여하고자 한다.



암울한 학생인권현실과 학생인권조례


참고로 필자는 '좌파'라서 연구용역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일찍부터 학생인권문제에 관심이 있었던 법률가라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의심스러운 분은 필자가 쓴 책(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1999년에 출판된 <교사의 권리, 학생의 인권>(사계절 펴냄)을 찾아보기 바란다.

10년 전에도 그리고 그 이전에도, 우리나라의 학생인권 현실은 암울했기 때문에 1999년에  <교사의 권리, 학생의 인권>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던 것이다.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이 책을 쓸 당시의 기본전제는 '교사의 권리'와 '학생의 인권'이 상호충돌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책을 쓴 이후에 우리의 학생인권 현실은 더욱 암울해진 느낌이다. 학생들은 행복하게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라 과도한 경쟁에 시달리고 비합리적인 규율에 눌리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에 따르면 학생도 국민인 것은 분명한데 헌법에서 보장된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지난 10년 이상 동안 법률가로서 내가 가졌던 문제의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경기도 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추진한다기에 환영했었고, 연구용역작업에 참여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 사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이전에 광주광역시에서도 추진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2003년 무렵에는 경기도 부천시, 군포시에서 '아동(청소년)인권조례' 제정이 추진된 적도 있었다.

이렇게 조례 제정이 추진된 것은 유엔아동권리협약이라는 국제조약에 우리나라가 1991년에 이미 가입했는데도 이 국제조약의 내용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조약에 따르면 정부는 어른들과 아동들에게 조약의 내용을 널리 알리도록 하고 있는데, 정작 이런 조약이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게 우리 현실이었다. 그래서 조례제정을 통해 어른과 아동·청소년 모두가 이 조약의 내용에 대해 알고 실천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례 제정은 장벽에 부딪혀 성사되지 못했고, 이번에 경기도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추진하면서 다시 조례제정움직임이 탄력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학생인권에 대해 색깔론을 펴는 것은 반인권적·반문명적



그런데 이번에 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조례 초안이 발표된 이후에 논의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물론 의견차이가 있어서 논쟁이 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인권이란 대의에 공감하더라도, 세부적 쟁점으로 들어가면 충분한 토론이 필요한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일부 언론과 세력들이 색깔론으로 몰고가는 것에 있다.

학생인권, 나아가 아동·청소년 인권 문제에 대해서까지 이념이나 색깔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아동·청소년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은 국제적인 흐름이고 요구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한민국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한 국가이고, 세계 191개국이 가입한 국제조약인 '유엔아동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 of the Child)'에 따라 설치된 기구인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의장(성균관대 이양희 교수가 현재 의장을 맡고 있다)이 속해있는 국가이다.

그런데 이런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학생인권의 문제에 대해 좌-우의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만약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논란을 일으킨다면 정말 일부 보수언론과 단체들은 대한민국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반국가세력'으로 볼 수밖에 없다.

왜 이런 표현까지 사용하느냐 하면, 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조례 초안은 국제조약인 '유엔아동권리에 관한 협약'에 기초한 것이고, 그 내용들 중 상당수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우리나라에 권고해 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조례 초안이 좌파적인 것이라면 유엔이 좌파이고 한국인 교수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기구인 유엔아동권리위원회도 좌파인 셈이 된다. 이런 어거지가 어디 있는가?



쟁점별로 살펴봐도 별 문제가 없는 조례 초안


그러면 좀더 차근차근 문제를 짚어 보자. 일부 보수언론에서 특히 문제를 삼고 있는 내용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첫째, 일부 보수언론은 조례 초안 제16조에서 "학생은 사상·양심의 자유를 가지며, 특히 자신의 사상·양심에 반하는 내용의 반성문, 서약서 등 진술을 강요당해서는 안된다"라는 부분을 문제삼고 있다(동아일보 12월 19일자 사설).

이 조항의 앞 부분, 즉 "학생은 사상,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유엔아동권리에 관한 협약' 제13조에서도 이를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뒷부분은 학생이 자신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는 것이나 스스로 반성하도록 지도하는 것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반성도 하지 않는데 반성문만 쓰게 하는 식으로 지도를 하는 것에 있다. 그것은 교육적 효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양심의 자유와도 상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강요'만 하지 말라는 것인데, 그게 무슨 문제인가?

둘째, 일부 보수언론은 조례 초안 제17조에서 "수업시간 외에는 평화로운 집회를 개최하거나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다만 학교의 장은 교육목적상 필요한 경우 집회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정한 조건을 부가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글로벌 스탠다드로 본다면, 이 조항도 지극히 당연한 내용을 규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15조에서도 아동에게 평화적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교의 장이 교육목적상 필요한 경우에는 일정한 제한을 가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 뿐만 아니라, '집회의 자유'는 대한민국 헌법에 의해서 모든 국민에게 보장된 기본권이다. 일부 보수언론은 '학생은 국민도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인가?

셋째, 일부 보수언론은 조례 초안 제20조 제1항에서 "학생은 학교운영 및 교육청의 교육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한 것도 문제삼고 있다. 그러나 학생의 참여를 보장하라는 것은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우리나라에 권고하고 있는 사항이다. 그리고 아동·청소년의 참여를 강조하는 것은 국제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참여를 통해 민주주의 경험을 쌓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소통, 다른 의견에 대한 관용을 체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 부분을 문제삼고 있는데, 조례 초안에서는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학생에게 선택권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강제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사실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을 강제하는 것은 교육적이지도 못하다. 형식적으로 동의서를 받으면서 실질적으로는 '동의'가 아니라 '강제'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일을 보면서 학생들이 무엇을 배울 것인가?



출발점은 학생도 성인처럼 인권의 주체라는 것



그 외에도 일부 보수언론이나 단체들이 여러 주장들을 하고 있지만, 인권의 관점에서 따져보면 납득할 수 없는 주장들이 많다. 체벌금지만 하더라도,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우리나라에 계속 권고해 온 내용이다.

그리고 아직도 학생을 미성숙한 존재로만 보는 일부 보수언론의 시각은 문명화된 국가에서 발전해 온 아동인권의 흐름을 부정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가 가입한 국제조약인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부정하는 것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조례 초안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일부 보수언론이나 단체분들께 부탁하고 싶다. 이번 기회에 유엔아동권리협약의 내용과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우리나라에 권고한 내용부터 충분히 읽어보기 바란다. 국가인권위원회 홈페이지에 가 보면, 한글로 번역된 자료들이 올라와 있다.

마지막으로 경기도 교육청도 일관성을 지키라고 말하고 싶다. 조례 초안이 공격받으니까 교권보호헌장을 제정한다고 하는데, 교권과 학생인권을 연결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 그동안 학생인권이 보장되기 때문에 교권이 침해당한 것인가? 그건 아니다. 교사의 교육권을 위협하는 것은 교육청의 관료적인 행정, 불필요한 공문, 교육부의 비합리적인 교육정책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교권보호를 말하는 것은 논점만 흩트리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기회에 논쟁이라도 제대로 되었으면 좋겠다. 수십 년 전의 인권현실이 그대로 되풀이되는 곳은 학교밖에 없는 것같다. 그리고 학생인권이 보장되는 교육을 하는 것은 교육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자신의 인권을 존중받지 못한 사람에게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라고 할 수 있는가? 10대에 모든 참여의 기회를 봉쇄해 놓고, 20대에 갑자기 '책임있는 민주시민'이 되라고 할 수 있는가? 따라서 학생인권이 보장되는 교육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미래, 그 사회의 미래, 아동·청소년들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비록 그 길이 낯설다고 해서 피해서는 안 된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