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활동/서교동 칼럼

존경스런 여성 구의원은 결국 '물 먹었다'

opengirok 2010. 1. 11. 16:53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하승수 소장

서울에서 시민운동하는 사람이나 학자들을 만나면 이분들은 '큰 정치'만 이야기한다. 입을 열면 여의도 정치에 관한 이야기이고, 올해 지방선거 관련해서도 서울시장 같은 광역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주된 관심사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분들을 보면,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작은 활동에라도 참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기 지역의 기초의회(구의회나 시·군의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활동하고 있으며, 자기 지역의 정치지형이 어떤지도 잘 모를 것이다.

 이렇게 바닥을 모르는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정치이야기는 늘 '붕 뜨기' 마련이다. 현실과 밀착되어 있지 못하고 정치를 진짜 변화시킬 수 있는 비전도 이야기하지 못한다.

 매번 '붕 뜨는' 정치이야기

 그러나 바닥을 모르고서는 우리나라 정치를 진짜 변화시킬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진짜 정치를 보려면 기초지방의회(시·군·구의회)를 보아야 한다. '정치의 막장을 보여주는 곳'이고, 왜 '한국 정치가 기득권정치인지를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이 왜 기초지방의원 공천권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는지는 기득권 정당에 소속된 기초지방의원들의 활동을 보면 알 수 있다. 기초지방의원들은 선거 때면 선거운동의 일선에 선다. 평소에 중앙정치인들을 위해 지역구 관리를 한다. 그래서 한국 정치가 '지금 이대로' 가도록 하는 밑바탕이 된다.

 그 대가로 지방의원이라는 자리를 얻는다. 그리고 그 자리가 주는 여러 혜택을 누린다. 공식적으로는 의정비를 받고 목에 힘을 줄 수 있으며 비공식적으로는 여러 이권에 개입할 수 있다. 건설업 같은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왜 기초지방의원이 되려고 할까? 그 이유는 답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지역의 어려운 아동이나 청소년에게 관심이 있을까? 지역 환경이 가진 가치를 존중하고 그것을 지켜나가려 할까? 지역주민들의 복지정책을 위해 연구하고 대안을 개발할까? 그렇지 않다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이 보여준다.

 한국 정치가 왜 바뀌지 않고 희망이 없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정치의 밑바닥이 이 모양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치의 밑바닥이 '보수 기득권 일색'인데 정치의 위가 바뀌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지난 정권 때에 소위 개혁적이라고 하는 386 국회의원에게 관변단체에 대한 특혜를 없애라고 했더니, 그러면 '다음번 선거 때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정치의 밑바닥이 '보수 기득권'이다 보니, 입으로는 개혁을 외치는 정치인도 유권자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보수 기득권' 세력 눈치를 보는 것이다. 선거 때면 여당·야당을 불문하고 난개발 공약을 내세우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진정한 희망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썩은 곳에서 나온다는 진리를 생각한다면, 우리나라 정치변화의 새로운 힘도 기초지역정치부터 나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그리고 전국의 지역 곳곳에서 그런 희망을 가지고 풀뿌리에서부터, 기초지역정치부터 정치를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풀뿌리 좋은 정치네트워크'가 만들어진 이유

 

  
2006년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한 선거후보자의 연설에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 이종호

작년 12월 여러 지역 사람들이 모여서 '풀뿌리 좋은 정치 네트워크'라는 모임을 꾸렸다. 지역에서 풀뿌리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밑바닥 정치'부터 바꿔보자고 만든 모임이다.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세금부터 제대로 써서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 보자고, 지역의 환경을 지키고 더불어 사는 지역사회를 만들어 보자고, 가난하거나 어려운 아동과 청소년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지역공동체를 만들자는 생각을 가진 모임이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 지역의 정치부터 바꿔보자는 것이다.

 지금 강원도 속초, 서울의 마포구·도봉구·노원구·관악구·동작구, 경기도 부천·군포·과천, 대구, 경북 구미, 대전, 광주, 전남 여수 등에 있는 모임이나 개인이 참여하고 있다.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스스로 만들어진 움직임들이 연결된 것이다. 그냥 모임이나 개인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역에서 풀뿌리운동·시민운동을 하며 지역사회의 변화를 위해 노력해 온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주로 기초지방의원선거에서 '풀뿌리 좋은 후보'를 내려고 준비하고 있다. 이 지역 중에서는 당장 올해 지방선거에 후보를 내기 어려운 지역도 있다. 그런 지역은 다음번 지방선거에라도 낼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런 지역들에서 나갈 후보는 지역정치의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내는 '풀뿌리 좋은 후보'이다.

 소위 중앙의 명망가들은 기초지방의원 선거를 준비한다고 하면 '그렇게 해서 뭐가 바뀌겠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기초지방의원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나라 정치는 기득권 정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게다가 기초지역정치가 잘 되면, 정치를 통해 '삶의 질'이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유권자들과 함께 경험할 수 있다.

 형식적인 복지정책을 내실있게 바꾸고, 환경을 위해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실천부터 해 나가고, 지역에서부터 아동·청소년의 인권이 실현되고, 시민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경험을 하려면 기초지역정치부터 바꿔야 한다. 그 경험은 유권자들이 '정치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더 큰 변화의 주체로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기득권 정치에 파열구를 내자

 얼마 전 서울의 어느 단독주택가에 있는 지역아동센터를 방문했다. 2006년 지방선거때까지 구의원으로 활동하던 분이 지역의 뜻있는 분들과 함께 설립하고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였다. 저녁 8시인데, 몇 분의 여성이 모여 미술 치료하는 아이들 사례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보통 이렇게 토론을 하면 2시간쯤 걸린다고 했다. 가난 때문에 또는 가족의 상황 때문에 상처받은 아이들 한명 한명의 사례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이 그만큼 걸리는 것이다.

 이 지역아동센터의 설립·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분(여성 구의원 출신)은 지역토호들 중심의 남성의원들 사이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다가, 2006년 지방선거 때 기초의원 선거까지 정당공천제가 도입되면서 낙선했다. 무소속 후보였기 때문이다.

 의정 활동도 열심히 하고 선거운동도 열심히 했지만, 기득권 정당의 벽을 넘을 수 없었노라고 했다. 그리고 2008년부터 지역의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지역아동센터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 참 존경스러운 분이다. 다시 구의원 해 볼 생각 없느냐고 물어보면, 지금 아이들 만나는 일이 더 좋다고 한다. 물론 아쉬움은 있다고 말한다. 지방의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은데, 그 일들을 다 못해 본 것이 아쉽다는 것이다. 지역의 아동·청소년들에 대해 구청이나 구의회에서 관심이 많으냐고 물어보니까,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나는 이런 분들이 대표자가 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고 분노스럽다. 우리나라의 지역정치는 보수-진보도 아니고 기득권세력-시민의 구도이다. 여의도 정치에서는 보수-진보가 있을지 몰라도 지역에서는 대다수의 기득권 세력과 소수의 좋은 정치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지역주민들의 생활의 문제를 정치를 통해 풀고 싶고, 더불어 사는 지역공동체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있지만, 이 사람들은 기득권 정당들의 높은 벽에 가로막혀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이런 기득권 정치의 벽에 파열구를 내 보자. 기초지방의원 선거에서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보자.

 이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사진출처:세계일보>



'풀뿌리 좋은 후보' 선거운동을 돕겠다

 

마지막으로 전국 각지의 뜻있는 유권자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수동적으로 투표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풀뿌리 좋은 후보'를 발굴하고 이들을 의회로 보내는 운동을 하자. 기득권 정당들이 지금 지역정치에서 하고 있는 행태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새로운 대안을 스스로 만들어 보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는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해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정치 변화를 바란다면 중요한 것은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나는 올해 지방선거 때에 기초지역정치의 변화를 위해 신나게 발품을 팔 생각이다. 내가 가진 역량이야 보잘것없지만, 나는 발품을 팔아 '풀뿌리 좋은 후보'들의 선거운동을 도울 것이다. 소위 명망가라는 사람들이 발품을 팔지 않고 점잖은 척하면서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위선이다.

 

나는 내 발바닥과 내가 정말 존경하고 좋아하는 지역의 풀뿌리활동가와 건강한 유권자들을 믿는다. 자신이 꿈꾸는 변화를 위해, 그리고 자신이 믿는 사람들과 함께 발로 뛰며 거리를 누비는 것이야말로 신나는 축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