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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경향][사회]열린 공공정보, 지식자산 활용 시험대

opengirok 2010. 11. 4. 15:09


ㆍ과천시의회-투명사회정보공개센터 ‘지방의회 2.0’ 협약식

“먼저 국민의례가 있겠습니다. 모두 일어나서 정면 국기를 향해주시기 바랍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 공공기관에서 열리는 여느 행사와 다르지 않다. 10월 19일 경기도 과천시의회. ‘개방·공유·참여를 위한 지방의회 2.0 협약식’이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공동대표 이승휘·서경기·김영희, 이하 정보공개센터)와 과천시 의회가 전국에서 최초로 거버먼트2.0으로 가기 위한 협약식이 열리는 자리다.




“과천시의회가 큰 결정을 내렸다.” 과천시의회 서형원 의장의 인사말이 끝나고, 이승휘 정보공개센터 공동대표가 운을 뗐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터넷 시대이기 때문에 정보를 가질 수 있는 수단이 모든 시민에게 주어져 있다. 정치권에서 정치인 개인이 트위터 등을 통해 나름 소통의 기재를 활용하고 있지만, 정치권력 조직이 스스로 정보를 공유하겠다고 나온 경우는 보지 못했다.”

기술·아이디어 결합으로 파급 효과
이날 행사에 참여한 과천시의회 의원들의 고민은 어떻게 자신의 활동을 유권자인 지역민에게 ‘홍보’하느냐는 것. 안중현 의원은 블로그나 트위터 등 정보수단을 이용하는데도 세대차가 있다고 실토(?)했다. “시민들에게 자기 활동을 알리는 데에 요즘 나오는 인터넷 기술에 적응하는 것도 젊은 분들이 상대적으로 잘 하고 나이든 분은 늦게 적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어떻게 해보려고 해도 돈도 많이 들고, 그런 부분에 대해 정보공개센터가 도움을 준다면….”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인 황순식 부의장의 고민은 보다 구체적이다. “매주 활동보고를 블로그에 올리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올릴 때만 반짝하지 그 다음부터는 관심이 없다. 개인적으로 중앙의 인터넷 매체에 기고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책, 영화 이런 거 말고 동네 이야기를 써야 할지 고민이다. 동네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좋은데, 자칫 잘못하면 아무도 찾지 않는 또 다른 데이터 창고로 전락할 수도 있다.”

과천시의회는 전국의 지방의회 중에서 그나마 가장 많은 정보를 내놓는 곳 중 하나다. 기자는 과거 취재를 하면서 과천시의회 회의록을 참고해 기사를 작성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기자가 취재할 당시, 공개되어 있는 회의록의 조회 수는 저조한 수준이었다. 정보를 자발적으로 공개하더라도 찾아와 읽는 사람이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시의원들의 고민도 그것이다. 전진한 정보공개센터 사무국장은 최근 트위터 등에서 화제를 모은 휴대전화 앱인 ‘옐로 카드’를 예로 들었다. “사실 반찬 재활용 등 식품위생법을 위반한 업소 명단이 각 구청 홈페이지 등에 게시되어 있어도 찾아서 읽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에서 이 정보를 취합해 다시 지도와 결합해서 시각적으로 보여주니까 혹시 자신이 평소에 드나드는 식당이 있지 않나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아이디어와 기술과 정보가 믹스되면 반응은 폭발적으로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날 회의는 협약식, 그러니까 앞으로 이런 저런 사업을 하겠다는 양해각서를 주고받는 자리다.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 정보공개센터와 과천시의회는 앞으로 ▲시민들의 알 권리에 충실한 방향으로 과천시의 정보공개제도 개선 추진 ▲의회 관련 예산, 의회 운영정보 등의 투명한 공개를 위한 의회 운영 가이드라인 수립 및 이행 ▲시민들이 쉽게 정보에 접근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온라인·모바일을 활용한 소통·참여의 모델 수립 ▲개방적이고 시민 편의에 충실한 의회 자료실 설치·운영 ▲개방·공유·참여의 마인드를 확산하기 위한 조직문화 개선 등의 다섯 가지 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하승수 정보공개센터 소장은 “정보공개센터가 국내외 모범사례를 참고해서 제안 및 추천을 하고, 그런 방향에서 협의가 된 내용을 과천시의회가 이행하면, 그 결과를 다시 평가 모니터해서 외부에 발표하고 ‘모범적인 의회사례로 인증하는 형태’로 사업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5∼6월 정보공개 가시성과 기대

구현될 ‘거버먼트2.0’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경우다. 2009년 5월, 오바마 행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Data.gov. 당장의 목표는 ‘연방정부 산하 행정기관들의 데이터를 집적시키고 더 나아가 시민들이 공공정보의 창조적 이용을 확장’하는 것이다. 이 사이트에서는 미국 정부 및 산하기관이 생산한 정보를 원천정보(Raw Data) 수준까지 다양한 포맷으로 제공, 바로 보거나 다운로드하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에 데이터를 수집·분석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tool) 목록과 함께 지리정보 목록까지 열람이 가능하다. 영국도 올해부터 공공정보 통합포털인 Data.gov.uk의 서비스를 시작했다.

Data.gov에 들어가 한국과 관련된 정보를 검색하면 한국전쟁, 주한미군, 남북관계 등의 자료가 죽 뜬다. 최근 기밀해제된 한국과 관련한 정보도 열람할 수 있다. 과거 관련 연구자들이 이 정보를 열람하려면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를 방문해 일일이 복사해 와야 했다. 역사문제연구소에 관여할 당시 박원순 변호사는 미국 체류시 거금(?)을 들여 한국과 관련한 자료를 복사해 오기도 했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집안에 앉아 공개되어 있는 자료를 바로 다운로드해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영국에는 이런 사례도 있다. FixMyStreet. com에 들어가면 버려진 차량에서부터 낙서, 거리청소, 고장난 가로등, 애완견 배설물에 이르기까지 지역문제를 시민들이 논의, 제보하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 UK시민온라인민주주의의 인터넷 프로젝트팀 ‘마이소사이어티’와 ‘영 파운데이션’이 개발하고 영국 사법부 이노베이션 펀드의 지원을 받는 사이트다. 이런 것들이 앞으로 오게 될 ‘거버먼트2.0’을 예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한국은 어떨까. 대표적인 정보공개사이트로 open.go.kr이 있다. 각 정부 부처에서 내놓은 자료들을 통합해 검색하고 정보공개청구를 할 수 있는 사이트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거버먼트2.0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앞의 외국 사례들을 포함, 거버먼트2.0 정보공개제도 개선에 대한 논문을 낸 김유승 중앙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Data.gov의 경우는 ‘공유’, 즉 정보를 스스로 내놓는 정책에 기반한 사이트라면 한국은 청구해야만 해당 자료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차이는 크다”고 말했다. 게다가 자료의 분류나 중요한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는 도구 등의 마련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전진한 국장은 “open.go.kr의 가장 큰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정보들에 묻혀 꼭 필요한, 궁금했던 자료를 열람하기가 쉽지 않은 점”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정부기관은 아직 정보공개에 익숙하지 않다. 대표적으로 관련 법상 정보공개 대상 목록 등을 홈페이지 등에 게시하도록 되어 있지만, 아직 아무 것도 올리지 않은 정부 부처 홈페이지가 수두룩하다. (「Weekly경향」 869호 관련 기사 참조)

이번 과천시의회와 정보공개센터의 ‘실험’은 앞에서 거론한 외국의 ‘거버먼트2.0 사례’와 다르다. 풀뿌리에서 모범사례를 만들어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려는 모델이다. 김 교수는 “실제 거버넌스 개념으로 넘어가면서 공공정보를 재활용했을 때 경제적 편익도 상당히 크다는 연구사례도 많다”며 “이미 선진국으로 불리는 나라부터 시작한 세계적 ‘추세’이기 때문에 한국 당국자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형원 과천시의회 의장은 “아무래도 누군가의 요청에 의해 정보공개를 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내가 뭔가 잘못한 것은 없을까’ 하며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우리가 먼저 투명하게 개방한다면, 지방자치의 수준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고 시민참여 수준도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기대를 드러냈다. 정보공개센터와 과천시는 일단 내년 5~6월 정도면 실험의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