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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사설]기록물 관리 제대로 해야 국격 높아진다

opengirok 2010. 10. 29. 10:23




정부와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가 엉망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지난달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사학분쟁조정위가 상지대 분규와 관련한 회의록을 폐기했다고 해 논란이 된 적이 있지만, 행정안전부의 기록물관리실태 감사에서 드러난 기록물 관리 부실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일례로 강원 인제군과 전남 강진군은 기록물평가심의위원회 심의 과정을 생략하고 문서를 폐기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인제군이 버리기 위해 마대에 담아놓은 서류에는 보존연한이 10년, 30년, 심지어는 준영구·영구인 기록도 포함돼 있었다. 무슨 문서를 작성하고 폐기했는지 보고조차 하지 않은 기관이 수두룩하고, 규정대로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을 배치한 기관도 전체의 69%에 불과했다. 공공기록물관리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기록물 관리가 총체적으로 주먹구구식임이 드러났다.

공공기록 보존의 목적은 공공기관 행정 기록을 체계적으로 관리, 국정운영의 전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함으로써 정책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데 있다. 국가기관은 물론 지방자치단체, 정부투자기관 등 전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공문서뿐 아니라 회의록, 비공식보고서, 비밀기록, 메모노트까지 보존하도록 법으로 정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가장 책임있게 기록을 관리해야 할 공직자들이 관리 절차를 귀찮은 일로 여기고 의무를 방기하고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렇게 기록들이 부실하게 관리되고 마구 버려지면 감사원이나 검찰이 무엇을 근거로 공공기관을 감사·수사하며, 언론과 시민단체는 어떻게 권력을 감시할 수 있겠는가. 기록물 폐기 규정을 무시하고도 처벌받지 않으니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우리는 이 같은 공공기록물 관리 부실이 우연히 나온 게 아니라고 판단한다. 현 정부는 올 들어 공공기록물 관리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관련 규정의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보존기간이 1년 또는 3년인 기록물의 평가·폐기시 기록물평가심의위원회의 심의 생략이 가능하도록 하고, 전문관리 요원의 자격도 관련학과 석사학위 이상 보유자에서 학사 학위자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는 법제정 취지에 어긋나는 일이다. 정부는 이런 행정편의주의적인 법규 개정에 매달릴 게 아니라 현행 기록물관리 규정이 엄격히 지켜지도록 해야 한다. 기록물의 관리보존은 한 나라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도 된다. 말로만 국격을 높이자고 할 게 아니라 이런 데서부터 내실을 다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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