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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오픈리크스, 한국의 사회투명성에 활동 집중할것”

opengirok 2011. 7. 25. 10:27


한겨레가 만난 사람 위키리크스 전 공동설립자 돔샤이트베르크
* 오픈리크스 : <위키리크스와 결별 뒤 만든 새 폭로사이트>

» ‘위키리크스’의 공동 설립자이자 대변인이었던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가 반부패네트워크의 초청을 받아 지난 5일 서울을 방문했다. 그는 위키리크스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개념의 폭로 전문 누리집 ‘오픈리크스’(openleaks.org)를 준비하고 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한국은 정보공개 측면서 훌륭한 단체·자원들 지녀
제보자가 자료·지역·폭로단체 선택하면 매개역할
외교전문 외에 세상의 수많은 작은 부패들 다룰것

권력자들이 내부고발자 입막음하는 방법으로
위키리크스 어산지가 날 막으려 해 아이러니
‘최후의 심판’ 암호 공개돼도 새 내용 없을 것

키가 180㎝를 훌쩍 넘는 그는 등을 덮고도 남는 큰 가방을 메고 나타났다. “출국이 몇시간 남지 않아 짐을 챙겨 왔느냐”는 질문에 “노트북을 보이지 않는 곳에 두면 안심이 되지 않기 때문에 늘 지니고 다닌다”는 답이 돌아왔다.

미국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일지, 국무부 외교전문 등 엄청난 비밀문서들을 폭로해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위키리크스’의 공동 설립자이자 ‘2인자’였던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를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해 9월 위키리크스의 최초 설립자인 줄리언 어산지와 결별해 현재는 위키리크스를 떠난 상태다.

“한국 음식의 좋은 점이 뭔지 알아요? 모두 같이 나눈다는 점이죠.” 그는 미숙한 젓가락질을 익히면서도 한국 밥상에서 ‘공유’ 개념을 잡아냈다. 올 2월 그가 “지금까지 출판된 책 가운데 가장 높게 평가한다”는 책도 조제프 프루동이 지은 <소유란 무엇인가>이다. 프루동은 “재산은 훔친 것이다”라는 말로 유명한 대표적 무정부주의자다.

돔샤이트베르크는 참여연대와 전국공무원노조, 정보공개센터 등이 결성한 반부패네트워크가 ‘부패방지법 제정 1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반부패 국제심포지엄에 초청을 받아 한국을 찾았다. 첫 아시아 지역 방문이다. 그는 “줄리언이 나를 배신자로 부르며 자신이 비판했던 권력자들과 같은 수법으로 내 입을 다물게 하려 한다”며 답답한 심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새로운 개념의 폭로 사이트 ‘오픈리크스’(openleaks.org) 창립에 매진하고 있다고 들었다. 오픈리크스에 대해 소개해달라.

“위키리크스는 일종의 실험이었다. 시작할 때 어떻게 할 것이라는 설계가 없었다. 하나의 조직에 제보 접수, 검증·분석, 공개·출판 기능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러다보니 점차 너무 큰 권력을 쥐게 되었고 조직 투명성을 잃어갔다. 오픈리크스는 이 기능들을 분리해 설계됐다. 위키리크스가 중앙집중형이었다면, 오픈리크스는 분권형이다. 제보자-검증자-출판자를 나눴다. 제보자가 자신의 자료를 어느 지역, 어떤 단체가 폭로할지 정할 수 있다. 오픈리크스는 자료를 검증·전달하고 제보자 신원을 보호하는 중간 매개의 역할만 수행한다.”


오픈리크스는 다음달 구체적인 형태와 세부 기능을 발표할 예정이다. 현재 참여하고 있는 단체는 3곳의 언론사와 3곳의 비정부기구(NGO), 모두 6곳이다. 이들과 함께 운영 방식을 실험한 뒤 세계 각지의 크고 작은 언론사, 비정부기구, 노동조합 등과 협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위키리크스는 충격적인 폭로로 대중에게 알려지고 이를 통해 다시 민감한 정보를 얻는 선순환 구조로 영향력을 키웠다. 오픈리크스가 그런 기능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심심한 단체다. 위키리크스와 같은 상징이 되고 싶지 않다. 왜 불의와 부패에 동의해선 안 되는지 사람들에게 설득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굳이 상징을 만드는 방법일 필요는 없다. ‘폭로 전문 사이트의 탄생’이라는 점에서 위키리크스는 중요했다.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공익제보자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러나 더 이상 메시아를 기다려선 안 된다. 대중이 모두 ‘감시의 눈’, 상징이 되어야 한다. 미 국무부 외교전문도 중요한 자료지만 그것 말고도 세상에는 수많은 작은 문제들이 있다. 우리는 이런 작은 부패들에 집중할 것이다. 지역공동체와 지방정부의 문제들까지 다룰 수 있는 조직이 오픈리크스다.”

-당신이 펴낸 책 <위키리크스: 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을 보고 짐작건대 오픈리크스는 당신이 원했던 위키리크스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위키리크스의 창립자인 줄리언 어산지와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가?

“책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 대한 이야기다. 내 의견일 뿐 오픈리크스의 입장은 아니다. 책을 쓴 이유는 내가 위키리크스의 대변인이었기 때문이다. 그 단체가 사람들의 신뢰를 얻고 막강해지는 데 나도 도왔다. 지금은 후회한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할 책임감을 느꼈고 ‘위키리크스의 내부고발자’가 되기로 했다. 줄리언과는 전혀 접촉하지 않고 있다. 그의 변호사가 나에게 보내는 편지가 전부다. 2쪽 분량으로 늘 같은 이야기다. ‘너는 배신자다. 어떤 언론과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공개적 비판을 멈춰라. 아니면 고소할 것이다.’ 이빨 없는 개가 짖는 소리에 불과하다. 나는 떳떳하기 때문에 상관 않는다. 권력자들이 그의 입을 막으려고 했던 수법을 그가 똑같이 나에게 쓰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내부고발자가 입을 다물도록 하는 수법이기도 하다. 사회 투명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자기 자신이 먼저 투명해야 한다.”

-현재 위키리크스는 예전 같지 않아 보인다. 무엇이 문제인가?

“위키리크스는 기능을 멈췄다. 지금 위키리크스는 단지 위키리크스 때문에 바쁠 뿐이다. 마치 쳇바퀴를 도는 것과 같다. 어떤 의미있는 일도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금은 돈을 버는 데 집중하고 있어 보인다. 마스터카드 광고를 패러디한 위키리크스의 비디오를 봤는가. 그 영상에서 줄리언은 ‘마스터카드’가 위키리크스의 후원금을 전달해주지 않기 때문에 1500만달러를 잃었다고 주장한다. 가장 많은 후원금이 들어온 날을 기준으로 해서 잡은 ‘뻥튀기’ 액수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메스껍다.

그는 또 후원금 가운데 100만달러를 자신의 사적인 문제(스웨덴에서 있었던 성폭행 혐의)의 변호사 비용으로 썼다. 위키리크스를 위해 써야 하는 돈인데도 말이다. 거짓말을 하고 돈을 벌고 있는 셈이다.”

-줄리언 어산지가 궁지에 몰리면 ‘최후의 심판’ 암호를 공개하지 않을까? 또 당신이 책에서 위키리크스를 떠날 때 아직 남아 있다고 했던 수천개의 내부고발 문서들은 어떻게 된 것인가? (‘최후의 심판’은 구성원의 안전에 문제가 생길 경우 암호를 공개하겠다며 위키리크스가 암호를 걸어 세계에 뿌린 파일이다. 핵폭탄급 기밀이 담겨 있는 것 아니냐는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내가 아는 한 그 암호화된 파일에 새로운 것은 없다. 정제되지 않은 원본 문서들은 들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미 알려진 내용들일 것이다. 파일 내용은 모르지만 경험에서 우러난 추측으로 짐작건대 그렇다. 수천개의 파일들은 대부분 줄리언이 접근할 수 있다. 몇몇 주요 구성원이 위키리크스를 떠날 때 그가 접근할 수 없게 된 파일들이 있지만 지금 되돌려주는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왜 공개하지 않는지는 모르겠다.”

-혹자는 <워싱턴 포스트>가 지난 30년 동안 한 특종보다 더 많은 특종을 위키리크스가 3년 동안 해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위키리크스가 이룬 업적을 어떻게 평가하나?

“위키리크스가 세계에 거대한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다. 바로 새로운 운동을 일으킨 것이다. 위키리크스 뒤에 세계는 사회적 투명성을 어떻게 높일지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모든 폭로 문서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를 바꾸고 다른 미래를 가져오는 힘이 될 것이다. 위키리크스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아주 쉽게 폭로를 할 수 있는 최초의 플랫폼이었기 때문이다. 그 전에도 몇 가지가 있긴 했지만 인터넷에 ‘친숙한’ 사람들끼리나 알던 것이었다. 그러나 위키리크스는 나나 당신 그리고 당신의 할머니 같은 사람들까지 생각한 첫 플랫폼이었다. 그것이 성공의 이유다.”

-지금 유통되는 정보 가운데 각국 정부와 자본 등 권력자들이 통제하고 있는 비율은 어느 정도나 된다고 보는가?

“답하기 쉽지 않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모든 것을 들여다볼 수 있는 하나의 조직은 없다는 점이다. 여러 조직들이 자신들의 이해를 가지고 각자 뛰고 있다. 서로 같이 일하지 않는다. 다만, 미국은 대부분의 정보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상당히 확신한다. 정말 많이 본다. 대부분 인터넷 기술 회사들과 구글과 같은 서비스 제공자가 모두 미국에 속해 있다. 한가지 좋은 소식은 우리가 생산하는 데이터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만큼 감시는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가령, 유튜브가 생기면서 한 사람이 생산하는 데이터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정보를 모니터하기 위해서는 패킷(네트워크로 전송하는 데이터의 단위)마다 들여다봐야 되는데 100패킷이라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100만패킷이라면 감시가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국가들의 정보 통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예컨대 이탈리아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음악과 영화를 공유해 저작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정부가 모든 공유 사이트를 감시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꿨다. 만약 한 회사에서 불만이 접수되면 영장 따위 없이 해당 사이트를 바로 검열할 수 있다.”

-국가의 정보 통제는 더 강해지는 경향이 있는가? 또 실제로 성공하고 있는가?

“그렇다. 인터넷을 이런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텔레비전, 라디오 등 대중매체의 플랫폼에서 당신은 단지 소비자에 불과하다. ‘이것이 당신에게 좋은 정보예요’라며 주면 받을 수밖에 없다. 마치 중세시대에 책을 낼 수 없었던 대다수 사람과 같다. 오직 수도사나 부자들만 책을 쓰거나 복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정보를 통제할 수 있었다. 이런 구조에선 누구에게 어떤 정보를 줄 것인지 통제가 쉽다. 그러나 인터넷이 판도를 바꿨다. 인터넷 세상에서 당신은 소비자일 뿐만 아니라 생산자다. 직접 글을 쓰거나 방송해 주변에 알릴 수 있다. 힘이 분산되고 있다. 권력은 자신의 힘을 유지하고자 하는 속성이 있다. 즉, 인터넷에 대한 통제가 강해지는 것은 권력이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일 뿐이다. 인터넷은 권력에게 위협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은 어떤 미래를 맞을 것인가를 두고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때다. 늘 그래 왔듯 권력이 지위를 유지할 것인가, 또는 대중이 더 많은 힘을 쥘 수 있는 열린 세계가 올 것인가. 이런 현실을 알려야 한다. 인터넷은 데이터가 교환되는 거의 모든 영역에 쓰이고 있지만 작동 방식은 모호하기 때문에 대부분이 기술적인 면은 잘 모른다. 전화 통화를 해도 데이터 전달 과정의 한 부분은 인터넷으로 들어간다. 라디오 송출탑 사이도 인터넷으로 연결된다. 텔레비전도 인터넷을 통해 전송되고 있다. 즉, 오늘날 우리가 보는 거의 모든 통신기술은 반드시 인터넷을 통하는 부분이 있다. 누군가가 만약 인터넷을 통제하는 기술을 고안한다면, 세계는 정말 거대한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몇 세대는 지나야 될 것이다.”

-언론의 역할과도 관련이 있는 주제 같다. 당신은 프리랜서 언론인이기도 하다고 들었다. 전통 언론미디어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미디어는 언제나 있었다. 그러나 미디어가 무엇인가 하는 정의는 늘 조금씩 바뀌어왔다. 가령, 블로거가 쓴 글 같은 경우 일부는 수많은 독자들이 읽는다. 하지만 전통 매체 기준에서 블로그는 언론이 아니다. 지금은 우리가 미디어라고 부르는 것이 무엇이냐는 개념이 바뀌는 시기다. 더 많은 이들이 미디어에 참여하는 ‘미디어 민주화’ 시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전통 미디어의 역할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기존의 언론사들은 전문 언론인, 배급망, 보도준칙 등 출판을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미디어와 뉴미디어는 같이 가야 된다.”

-정보공개와 사회투명성과 관련해 한국 상황을 어떻게 보나?

“오픈리크스는 여러 친구들과 함께하는 프로젝트이지만 앞으로 한국과 브라질에 활동을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 개인적인 목표다. 두 나라는 경제적 잠재력이 크게 부상하고 있고 정보공개 측면에서 훌륭한 단체와 자원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시아 지역과 라틴아메리카에서 본보기가 될 수 있다. 독일의 경우 한국보다 약 40년가량 빠른 민주주의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전자정부 측면에서는 뒤진 상태다. 한국이 앞으로 발전 단계에서 독일과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위키리크스의 단짝’에서 ‘적’으로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의 말을 빌리자면 줄리언 어산지(사진 왼쪽)와 그는 ‘단짝’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기인 해커’와 독일 출신의 ‘신뢰받는 보안 전문가’, 둘은 2007년 12월 만남 뒤 ‘위키리크스’를 지탱하는 두 기둥으로서 빠르게 가까워졌다. 돔샤이트베르크는 자신을 “줄리언이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고 표현했다.

8살 때 컴퓨터를 처음 접한 돔샤이트베르크는 학업을 마친 뒤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다국적기업 ‘일렉트로닉 데이터 시스템스’의 정보기술(IT) 보안 전문가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생활하던 그는 위키리크스를 만난 뒤 직장도 버리고 180도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스위스 최대 사설은행 ‘율리우스 베어’, 베일에 싸인 종교 ‘사이언톨로지’, 그리고 ‘슈퍼파워’ 미국까지 들어오는 내부 폭로들은 권력에 굴하지 않고 공개한다는 원칙을 구현했다. 그는 위키리크스와의 만남을 “인생 최고의 일”로 꼽는다.

그러나 가장 큰 적은 내부에 있었다. 권력의 심기를 건드리는 각종 폭로가 이어지면서 어산지는 조직 내부의 보안에 강박적인 노력을 기울였고, 돔샤이트베르크는 “구성원들을 부속품처럼 취급하지 말라”며 날선 비판을 했다. 모든 고발 자료에 대해 판단을 최소화하고 순서대로 전부 공개한다는 원칙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산지는 점차 그를 ‘배신자’로 취급했고, 돔샤이트베르크는 그를 ‘폭군’으로 여겼다.

둘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참전 기밀문서 7만7000건 폭로(지난해 7월)와 이라크 기밀문서 40만건 공개(지난해 10월)가 숨가쁘게 이어지던 지난해 9월 결국 각자의 길을 걷기로 한다.